한 발 물러선 황태자, 다시 전진할까?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만간 구원투수로 등판한다. 이 부회장은 패색이 짙어진 삼성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몸 풀기에 들어갔다. ‘불량제품 화형식’을 단행한 뒤 애니콜의 품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듯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른 이 부회장의 위기 속 경영능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오는 27일로 예정된 삼성전자 임시 주주총회에서 책임경영의 법적 의무를 지게 되는 사내 등기이사로 선임된다.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이 출시 2개월 만에 리콜에 이은 단종 사태를 맞는 등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한 삼성전자를 이 부회장이 어떤 경영 리더십으로 사태 수습과 신뢰회복에 나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갤노트7은 2016년 하반기 가장 기대되는 제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지난 8월 2일 미국 뉴욕에서 최초 공개됐다. 시장과 미디어의 호평을 받은 갤노트7은 예약판매를 거쳐 8월 19일부터 한국과 미국 등 전 세계 10개국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5일 만에 찾아온 악몽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국내 출시 간담회에서 “삼성에 냉소적이었던 미국 언론들도 올해 최고의 패블릿, 기대를 뛰어넘는 제품, 가장 아름다운 제품이라고 평가를 해줬다”고 표현한 바 있다.

▲ 갤럭시노트7 사태 일지. 사진=뉴시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출시 닷새 만인 8월 24일 인터넷 커뮤니티인 뽐뿌에 갤노트7이 불에 타 훼손된 사진이 올라왔고, 갤노트7이 충전 중에 폭발했다는 주장이 나온 탓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해당 주장에 대해 조작일 것이라는 지적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과 미국에서 배터리 발화 사례가 잇따라 보고됐다. 일부 소비자들이 공개한 사진에는 공통적으로 갤노트7 화면 왼편이 불에 그을려 심하게 손상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터리 부분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환과 환불 요청이 잇따르자 삼성전자는 8월 31일 국내 이동통신 3사에 갤노트7 입고 일시 중단을 요청했다. 9월 1일에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삼성전자에 조사 결과를 요청하기도 했다.

27일 등기이사 선임, 위기 극복 리더십 주목
갤노트7 불명예, 품질 경영으로 반전 노린다

결국 9월 2일 삼성전자는 배터리 문제 결함을 인정하고, 제품 전량 리콜을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말인 3~4일 AS센터와 콜센터를 연장·추가 운영하고 임시폰 대여, 삼성전자의 다른 스마트폰 기종 교환 등 절차를 밟았다.

새로운 갤노트7 제품 교환은 9월 16일부터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한국, 미국 등 전세계 시장에서 이어졌다. 지난 1일부터는 유일하게 한국 시장에서 갤노트7 일반 판매도 재개했다. 신형 갤노트7은 재판매 첫 날 2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상황은 수습 국면에 접어드는 듯 했다. 국재 재판매 당일 서울 송파구의 사는 소비자의 새 기기에서 발화사건이 발생했지만 한국SGS는 “외부 충격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도 비슷한 조사 결과를 내놨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그러나 발화 사고는 이어졌다. 지난 5일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기 내에서 갤노트7이 발화해 승객들이 대피했고, 미국 일간 USA투데이는 지난 8일 교환한 갤노트7이 발화해 13세 소녀가 화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대만 타이베이와 미국 미네소파주 파밍턴,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텍사스주 휴스턴 등에서도 새 기기가 발화했다는 제보가 연달아 접수됐다.

버라이즌, AT&T, T-모바일, 스프린트 등 미국 4개 이통통신사는 판매·교환을 자체 중단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10일 한국거래소 조회공시 요구에 “최근 갤럭시노트7 소손 발생으로 정밀한 조사와 품질 관리 강화를 위해 공급량 조정이 있는 중”이라며 새 기기 생산을 중단했다. 하루 뒤인 11일에는 갤노트7 글로벌 판매·교환·생산을 정면 중단했다. 단종이다. 세상에 나온 지 불과 54일 만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갤노트7 판매 중단에 따라 생산도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빨리빨리’로 자초한 리콜

삼성전자가 유례없는 시련을 겪으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등판일정이 당겨졌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선임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삼성전자는 갤노트7 리콜과 동시에 지난달 12일 이사회를 소집하고 이재용 부회장을 등기이사로 선임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부회장은 갤노트7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왔다. 지난달 21일 전량 리콜이 진행 중인 ‘갤노트7 골드’를 왼손에 들고 서울 서초사옥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보였고, 27일에는 서초사옥을 방문한 마르크 루터 네덜란드 총리와 함께 삼성전자 딜라이트 홍보관을 찾아 갤노트7 등 삼성 스마트폰에 대한 설명을 직접 맡기도 했다.

그러나 단종이라는 뼈아픈 결단을 내린 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에 대한 잠정 실적을 하향조정했다. 삼성전자는 12일 연결기준으로 매출 당초 49조원에서 47조원으로, 영업이익은 7조8000억원에서 5조2000억원으로 각각 잠정 실적을 정정 발표했다. 이는 “갤럭시노트7 단종에 따른 각종 비용을 반영한 것”이라고 삼성전자 측은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경영은 곧 이 부회장의 ‘위기 속 경영능력’ 시험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삼성전자가 ‘빨리빨리’에 갇혀 품질이라는 기본을 소홀히 했다”면서도 “확실한 액션플랜 제시와 품질 혁신, 지배구조 개선, 신뢰 회복에 나선다면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 시절부터 전 사업에서 ‘품질 경영’을 강조해왔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3년 6월 7일 당시 삼성 제품에 대한 품질 논란이 커지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장단과 그룹 주요 임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며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을 지시했다.

1994년 전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휴대폰 ‘애니콜’을 첫 선보일 당시 제품 불량률이 10%를 넘어서자 이건희 회장은 애니콜 15만대, 500억원어치를 모두 태워버리는 ‘화형식’을 열고 소비자들에게 새 폰으로 바꿔주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비자들은 애니콜에 대한 폭발적 호응을 내놓았고 삼성전자의 휴대폰은 비약적 발전을 이뤄냈다.

전문가들도 단기적인 손실액 등에 연연해 차기작 출시를 앞당기면 비슷한 위기를 겪을 것이라며 중장기적인 브랜드 이미지 회복을 위해 신뢰도 높은 품질을 확보하는 게 먼저라고 조언했다.

삼성 고위 경영진 조기 인사 칼바람 맞나
이재용 대내외 주요 인사 만나며 광폭 행보

13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달 12일 등기이사 등재가 결정된 이후 대내외 행보를 늘리며 직접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15일 인수를 방문해 나렌드라 인도 총리를 만나 삼성전자가 모디 총리의 제조업 활성화 정책에 부응하고 있음을 강조했다고 삼성전자 측은 전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만나 2시간여 동안 사물인터넷(IoT)과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조기 인사를 통해 분위기를 쇄신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올해 인사는 ‘갤럭시노트7 리콜’ 이슈 관련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규모가 대폭이 되고 시기도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삼성 측이 “지금은 수습이 최우선인 상황”이라고 밝힌 만큼 현 체제에서 갤노트7 사태가 몰고 온 파장을 마무리한 다음 정상적 평가 이후 신상필벌에 따른 인사를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삼성전자는 임원 승진 규모를 줄여나가는 추세다. 지난 2012년 사상 최대 규모인 501명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한 후 2013년 485명, 2014년 475명, 2015년 353명 등으로 승진 임원을 축소해 왔다. 올해에도 갤노트7 발화 이슈로 촉발된 리콜 사태로 인해 이 같은 추이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벌벌떠는 무선사업부

특히 갤노트7 리콜 이슈와 가장 밀접한 삼성SDI는 지난해 2분이 영업손실 37억2100만원으로 적자 전환한 데 이어 올해 2분기에서 영업손실 542억원을 이어가며 부진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인사 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기 역시 올 2분기 영업이익 15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3.9% 하락한 데 더해 올해 3분기 역시 갤노트7 영향으로 고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인사 칼날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 4월 이 부회장은 인사 시즌이 아님에도 2013년 12월부터 회사를 이끌어온 박동건 사장 대신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을 겸직하도록 한 바 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내 인사에서 갤노트7 리콜 사태 책임을 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제2리콜이 시작된 13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SK텔레콤 매장에서 한 고객이 갤노트7을 교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전자 갤노트7 단종 공식화…교환·환불 어떻게?>

삼성전자는 지난 13일부터 갤노트7에 대한 교환과 환불을 시작했다.

갤노트7 기기를 매장에 가져가면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고 삼성 브랜드 외에 타사 제품으로도 교환할 수 있게 했다. 삼성전자는 자사 스마트폰으로 교환할 경우, 3만원 상당의 모바일 이벤트몰 할인 쿠폰을 제공할 예정이다.

교환과 환불은 연말까지 최초 구매한 매장에서 진행된다. 오픈 마켓 등에서 무약정 단말기를 산 고객은 개통 매장에서 통신사 약정을 해지한 후 구매처에서 환불을 받을 수 있다. 갤노트7을 살 때 받았던 기어핏2 등 사은품은 반납하지 않아도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고객과 파트너에게 큰 불편과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며 “매장별 준비 상황이 다르니 방문 전에 전화로 상황을 확인해 불편을 줄이기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