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건물에 얽힌 기업이야기⑧]-고려대학교 上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전국 유명 대학교에는 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건물들이 하나씩은 있다. 기업들이 기부와 이미지제고, 홍보 등 다양한 목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하거나 직접 지어주는 조건으로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대학교 입장에서도 새 건물을 증축하는 데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어 ‘윈윈’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건물들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해당학교 관계자나 일부 학생들만이 알고 있을 뿐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대학과 기업의 ‘합작’ 건축물들을 직접 찾아가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 알아봤다. 8번째 주인공은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한 고려대학교다.

지난달 30일 늦은 오전 기자는 고려대역 1번 출구로 나와 고려대학교 정문으로 향했다. 시험을 2주 앞둔 캠퍼스는 비교적 한산했다. 완만한 언덕을 100m정도 올라가자 웅장해 보이는 고려대 정문이 보였다.

정문에 들어서자 탁 트인 중앙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 아시아 최고의 운동장이라 불렸던 대운동장이 있었던 자리여서 그런지 정말 넓었다. 광장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뒤로한 채 캠퍼스 안내판 앞으로 다가가 사전에 조사해온 리스트와 비교해 본격적인 동선을 짰다.

◆ 수려한 인테리어

고려대학교에는 100주년 기념 삼성관과 LG·포스코경영관, 현대자동차경영관, CJ법학관, 해송법학도서관, 동원글로벌리더십홀 등 기업들의 기부를 통해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하다. 기업들의 상호명이 건물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안내판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정문을 기점으로 제일 가까운 100주년 기념 삼성관을 첫 방문지로 선택하고 ‘대장정’을 시작했다.

고려대 본관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200m정도를 이동하자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100주년 기념 삼성관이었다. 캠퍼스에 건물수가 많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순조롭게 시작했다.

100주년 기념 삼성관은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지은 건물로 다양한 유물과 고려대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05년 5월 지어진 이 건물은 연면적 2만3383㎡에 지하 2층, 지상4층 규모로 LG·포스코경영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100주년 기념 삼성관은 삼성그룹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지어졌다. 건물 내부에는 국제원격회의실과 국제기구자료실, 정보 검색실, 멀티미디어 열람실 등 다양한 학술 관련 시설이 위치해 있다.

100주년 기념 삼성관은 최근 완전히 탈바꿈한 고려대 건물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띈다. 겉모습은 고전적 건축양식을 띠고 있어 고려대의 다른 건물들과 잘 어울리며 내부는 은빛이 감도는 금속성 분위기를 살려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건물은 크게 박물관과 아트리움, 학술정보관 등 3부분으로 나뉜다. 이 건물들은 각각 고려대학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징한다.

아트리움은 건물 중심에 있는 원형 라운지로 고려대학교의 100주년 역사 중 중요한 역사를 담은 시계모양의 연표로 장식돼 있다. 시계는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개교년도인 1905년에서 시작해 고려대학교가 100주년을 맞이한 2005년을 끝으로 하고 있다.

아트리움을 기준으로 좌측에 위치한 학술정보관(CDL·Centennial Digital Library)은 국제원격회의실과 국제기구자료실, 정보검색실, 멀티미디어 열람실 등과 함께 대규모의 열람실이 위치하고 있는 종합스터디 홀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아트리움 우측에 위치한 박물관은 1934년에 설립되어 국내 대학 박물관의 효시가 된 곳 이다.현재 고고·역사·민속·고미술·현대미술·교사자료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총 10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주요소장품으로는 국보 제 177호인 분청사기 인화문태호와 국보 제 249호인 동궐도, 만원권 지폐 뒤에 그려져 있는 천체시계인 국보 제 230호 혼천시계 등이 있다.

◆ 열손가락 모자랄 정도

100주년 기념 삼성관을 빠져나와 건너편에 있는 경상대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상대학에는 LG·포스코경영관과 현대자동차경영관이 자리 잡고 있다.

LG·포스코경영관은 진정한 21세기 전문 경영인 육성을 목적으로 2003년 10월 완공됐다. 이 건물은 연면적 1만4121㎡에 지상 6층 규모로 캠퍼스 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LG·포스코경영관의 공사비용은 총 280억원으로 LG그룹과 포스코가 각각 100억원씩 부담하고 나머지 80억원은 교우회에서 후원했다. 건물인테리어는 호텔신라가 담당해 상당히 고급스럽다.

실제 경영관 건물 내부는 전체가 대리석으로 깔려 있고 라운지와 교수휴게실은 호텔로비, 비즈니스룸과 흡사한 스타일로 구성돼 있다.

건물 내부에는 교수 연구실과 강의실, 경영도서관으로 불리는 수당학술정보관 등 다양한 교육 시설들이 즐비하다. 특히 후원자들의 이름을 딴 강의실이 눈길을 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이름을 딴 ‘박현주 강의실’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이명박 라운지’,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의 이름을 딴 강신호 강의실 등이 대표적이다. 일정액 이상 기부한 경영대 교우 가운데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교우의 이름을 강의실과 세미나실에 붙인다는 것이 경영대의 방침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잡음도 끊이질 않고 있다. 학부를 졸업하지 않고 경영대학원 코스만 수료하기만 해도 이름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강 회장은 고려대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 1기를 수료한 것이 이 학교 경력의 전부다.

이에 일각에서는 올바른 기부문화 정착이라면 수용할 수 있지만 대학이 지나치게 기업에 읍소하고 장사꾼으로 변질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나오고 있다.

사학관계자는 “개인적으로 건물 이름에 기업명이 들어가고 세미나실에 기업인의 이름을 내건다는 것은 자본이 교육을 잠식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라며 “거대 자본이 교육을 장악하고 시장화 하는 것은 매우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LG·포스코관 취재를 마치고 바로 연결돼 있는 현대자동차경영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대자동차경영관은 기존 경영별관이 있던 것을 허물고 지은 건물로 2013년 9월 준공됐다. 이 건물은 연면적 1만5470㎡에 지하 4층, 지상 5층 규모로 경영대 본관 건물과 LG·포스코경영관 사이에 위치해 있다.

총 공사비용은 450억원으로 이 중 200억원이 경영대 89학번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기부금으로 부담했고, 나머지는 3600여명의 기부자의 후원을 통해 충당했다. 건물 내부에는 교수 연구실 28개와 강의실 16개, 그룹 스터디룸 50개 등이 들어서 있다.

현대자동차경영관의 가장 큰 특징은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건물 내부에 녹지를 조성하고 천정과 벽면에 햇빛이 들어오도록 설계해 아늑한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또 지열냉난방시스템을 장착,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에너지 자립형 건축물이다. 또 각종 기자재를 원터치 클릭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전자교탁과 통합 콘트롤러 등 첨단강의시스템도 갖췄다.

◆ 기부금도 나눠 내자

경영대학을 뒤로한 채 CJ법학관과 해송법학도서관이 있는 법학대학으로 이동했다.

CJ법학관은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기부로 지어진 건물로 석조 양식으로 지어진 캠퍼스 내의 여타 건물들과 다르게 밋밋한 외관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은 연면적 7810.9㎡에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로 법학관 신관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공사비용은 이 회장의 기부금 120억원으로 충당했다. 건물 내부에는 로스쿨생들을 위한 세미나실과 그룹학습룸, 휴게실, 고대법대 발전위원회실 등이 있다.

CJ법학관은 원래 자유전공학부에 배정될 예정으로 착공했으나 완공된 이후 로스쿨에 배정됐다는 후문이다.

해송법학도서관은 고려대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유치를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로 2007년 완공했다. 이 건물은 연면적 3670㎡에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동원글로벌리더쉽홀과 법학관 구관 사이에 위치해 있다.

공사비용은 약 57억3000여만원으로 이중 31억원을 정유근 대양상선 회장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이같은 연유로 정 회장의 호인 ‘해송’이 건물명으로 사용됐다. 나머지 금액은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이 부담했다.

이 건물은 법학도서실과 열람실 등을 두루 갖췄으며 법학도서실은 법학 관련 장서 3만8590권(단행본 2만5700권, 연속간행물 1만2890권)을 보유하고, 열람실은 좌석 수 450여석을 확보하고 있다. 또 2층과 3층에는 6개의 그룹스터디룸이 있으며 지하1층에 학술회의실과 자유토론실, 정보검색실이 마련됐고 1층에는 세미나실과 함께 국내 최초 법과대학의 100년 역사를 보여주는 사료전시실이 있다.

고려대 관계자는 “해송법학도서관 개관으로 고려대 법과대학은 법학전문대학원을 유치하기에 손색이 없는 기반시설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법학대학 취재를 마치고 문과대학 마지막 목적지인 동원글로벌리더십홀로 향했다.

동원글로벌리더십홀은 동원그룹의 지원으로 공사를 시작해 2007년 11월 준공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연면적 2235㎡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안암 캠퍼스 중앙에 위치해 있다. 공사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1년여 만에 마무리 지었다. 실제 준공식에도 김 회장이 직접 참여해 커팅식을 진행할 만큼 관심을 쏟았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1층에는 여학생휴게실과 여성학자료실, 양성평등센터 등 여성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고, 2층은 글로벌리더십센터와 인터내셔널 카페, 세미나실, 3층에는 국제지원센터 등으로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