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드러나는 박근혜의 ‘옛 인연’

▲ 박근혜 대통령.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은성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옛 인연’이 또 다시 여의도 정가를 휩쓸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박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고(故)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 씨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청와대와 여당은 곤혹스런 표정이다. 더욱이 이 재단에 국내 대 재벌들이 저마다 돈다발을 싸 들고 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권력 개입설’은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다. 국정감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야당은 이번 의혹을 앞세워 공격의 칼날을 다듬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불리는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 씨가 설립부터 운영까지 관여했다는 의혹이 정국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 대통령 임기 말 레임덕으로 이어지는 메가톤급 파장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한겨레 신문은 지난주 두 재단과 정권의 유착가능성을 단독 보도했다. 한겨레는 대통령 직속인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지난 7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모금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해 내사를 벌였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특별감찰관은 우병우 민정수석 감찰과 관련해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한 내용이 보도되면서 사표를 제출했다.

한겨레는 또 특별감찰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안 수석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기업들에 출연을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비위 첩보가 입수돼 지난 7월 내사를 진행한 사실이 있다”고 보도했다.

또 “그것은 단순히 통화한 사실 자체나 우병우 수석을 감찰한 데 대한 불만의 표출이 아니라고 본다. 특감이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두 재단을 내사한 데 대한 (박 대통령의) 극도의 당혹감과 불쾌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관계자의 말을 덧붙였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최 씨가 K스포츠재단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야당이 국정조사와 특검을 거론하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는 만큼 청와대의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K스포츠재단 건물 입구. 사진=뉴시스

◇‘돈다발’ 싸들고 간 재벌들 

미르재단은 문화재단, K스포츠재단은 체육재단이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초 각각 전경련 주도로 설립됐다. 재단본부가 위치한 곳도 서울 강남구 논현동 247번지와 274-8번지로 거의 같다.

미르재단이 기부 받은 자산은 486억원이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삼성그룹에서 125억원을 낸 것을 비롯해 ▲현대자동차그룹 85억원 ▲SK하이닉스 68억원 ▲LG그룹 48억원 ▲포스코 30억원 ▲호텔롯데 28억원 ▲GS그룹 26억원 ▲㈜한화 15억원 ▲KT 11억원 ▲대한항공 10억원 ▲㈜LS 10억원 ▲CJ E&M 8억원 ▲㈜두산 7억원 ▲대림산업 6억원 ▲금호타이어 4억원 ▲아시아나항공 3억원 ▲아모레퍼시픽 2억원 등이다.

재단법인 K스포츠가 기부 받은 액수도 270억원에 달한다. ▲삼성그룹 79억원 ▲현대차 43억원 ▲SK그룹 43억원 ▲LG그룹 30억원 ▲롯데케미칼 17억원 ▲㈜GS 16억원 ▲한화생명 10억원 ▲KT 7억원 ▲㈜LS 6억원 ▲CJ제일제당 5억원 ▲신세계그룹 5억원 ▲두산중공업 4억원 ▲부영주택 3억원 ▲아모레퍼시픽 1억원 등이다.

삼성그룹이 2015년 그룹 내 최대 재단인 삼성생명공익재단에 기부한 액수는 448억원이다. 같은해 문화활동을 하는 삼성문화재단에 기부한 돈은 450억원이다. 이 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한 돈이 204억원이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재단에 별도로 기부를 하지 않고 있다. 이 재단은 정몽구 회장의 사재로만 운영된다. 현대차그룹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한 액수는 128억원에 달한다.

사단법인과 재단법인은 등록절차가 까다롭다. 특히 기업 후원금(기부금)을 받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지정기부금단체로 승인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승인요건은 과거 활동 경력이나 미래 활동에 대한 세부 계획이다.

이 두 단체는 신생 재단법인으로 지난 5월과 6월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및 프랑스 순방에서 현지 행사에 참여했다. 미르는 옛말 ‘밀(물)’에서 비롯됐고, 용(龍)이나 왕 즉 최고지도자를 뜻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1952년에 태어난 용띠다.

◇‘베일 속’ 최순실은 누구?

두 재단이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최순실 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최 씨는 과거 박 대통령의 멘토였던 고(故) 최태민 목사의 딸이다. 2014년 청와대 문건파동의 당사자인 정윤회씨의 전 부인이기도 하다. 현재는 최서원으로 개명했다.

문건 파동 당시 박관천 경정이 권력 지형에 대해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최씨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승마협회를 상대로 자신의 딸과 관련된 사안을 조사·감사할 당시 박 대통령을 통해 담당 국장, 과장을 경질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알려진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우 수석의 청와대 민정비서관 발탁과 (헬스트레이너 출신의) 윤전추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 배경에 최 씨와의 인연이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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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총공세

더민주와 국민의당 등 야권은 이번 사건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개인 비자금 모금 방식과 유사한 ‘제 2의 일해재단’으로 보고 진상 규명에 나섰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기부금 모금을 둘러싼 특혜의혹을 ‘권력형 비리’로 규정하고 국정조사와 특검도입까지 거론하며 총공세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는 다음주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야권 내에서는 두 재단을 둘러싼 의혹이 올해 국감의 핵심이슈가 될 것이라는 관측 속에서 소관 상임위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당의 두 원내대표는 나란히 이번 사태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국회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국감에서 의혹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나아가 “청와대가 발뺌하고 솔직히 밝히지 않는다면 국정조사 또는 검찰 고발, 특검으로 정권 말기에 있는 권력 비리를 철저히 밝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고 최태민 목사의 딸인 최 씨가 K스포츠재단 인사에 개입했고, 최 씨가 청와대에서 ‘비선 실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증폭시키며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조응천 더민주 의원은 최 씨에 대해 “대통령이 착용하는 브로치와 목걸이, 액세서리도 최 씨가 청담동에서 구입해 전달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제가 특별히 아는 바는 없지만 대통령의 브로치 논란 등에 대해 의구심이 쭉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가세했다.

그는 “여성 대통령의 의복과 장신구는 어느 나라에서나 대중의 관심”이라며 “그동안 박 대통령의 의복을 어디서 만들었는지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윤호중 더민주 정책위의장은 이날 불교방송 라디오에 나와 “최 씨를 증인으로 채택할 저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도 요청을 하고 있다”며 “여당이 동의를 안 해주고 있는데, 상임위에서 표결해서라도 증인으로 출석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은 다른 증인들에 대한 채택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교문위 소속인 오영훈 더민주 의원은 “안종범 청와대 정책수석 및 재단 관계자들, 출연금을 낸 대기업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요청했다”며 “새누리당이 이들을 한 명도 채택할 수 없다고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최소한의 증인채택마저 거부하면 원칙과 신뢰를 슬로건으로 내건 박근혜 정부 최대의 의혹사건으로 남게 되고퇴임 후까지 문제를 안고 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쉬쉬하는’ 청와대, 배경은?

청와대는 ‘최순실 의혹’에 대해 대응을 삼가고 있다. 정연국 대변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언급할 만한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다.

청와대가 표면적으로 무대응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은 국정감사를 앞둔 야당이 박 대통령의 직접 해명까지 요구하면서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두 야당은 최순실 씨의 청와대 인사 개입 의혹에 우병우 민정수석을, 미르재단 설립과정 의혹에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을 연결시키며 이번 의혹을 정권 차원의 ‘게이트’로 규정하려는 태세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가 공식 대응에 나서면 여야 간 전면전이 예상되는 국감을 통해 일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뜩이나 처가의 부동산 매매 의혹으로 시작된 우 수석의 거취 논란이 길게 지속되는 상황에서 2년 전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떠올리게 하는 비선실세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럼에도 이같은 청와대의 반응은 2014년 정윤회 씨가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등과 결탁해 비선 실세 노릇을 했다는 의혹에 강력히 대응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라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민경욱 새누리당 의원은 언론 보도로 의혹이 불거지자 “정윤회 의혹으로 보도된 내용은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불과한 것이고 사실이 아니다”라며 “(언론사 대상) 고소장 제출 등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경 대응했다.

박 대통령도 직접 나선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는 수많은 루머와 각종 민원이 들어온다. 그런 사항들을 기초적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외부로 유출시킨다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진다”며 “이번 문건 유출도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철저 수사를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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