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전용 상품 ‘전무’

 

올해 한반도에 규모 5.0 이상 강진이 3차례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지진 피해를 보상해주는 보험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지만, 국내에 지진 전용 상품은 없다. 일부 화재보험과 풍수해보험이 보상하기는 하지만 가입률은 0%대에 그친다. 지진보험 개발과 활성화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민간보험사들의 표정은 복잡하다. 개발 작업은 물론 보상책임이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정부 지원이 바라는 눈치지만, 정부도 갑작스런 지진 대비책을 고심하느라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렇듯 부실한 체계로 여전히 강진 여파에 흔들리고 있는 한국 지진보험 시장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파이낸셜투데이=김승민 기자] 최근 역대급 강진이 두 차례 발생하면서 지진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실상은 매우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진전용의 단독 보험은 전무한데다, 지진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일부 보험에 대한 가입률도 매우 저조했다.

보험업계에서는 기업이 직접 전용보험을 개발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며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강진 이후 종합적인 지진방재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정부 주도 지진보험 개발이나 체계 검토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23일 기상청에 따르면 5.1과 5.8 규모의 지진이 지난 12일 경북 경주시 인근에서 약 1시간 간격을 두고 연이어 발생했다. 첫 번째 지진은 1978년 기상청 관측 이래 역대 5위 강도, 두 번째는 최강 강진으로 기록됐다.

지난 7월 울산 동구에서도 규모 5.0 지진이 발생했다. 첫 관측 이후 규모 5.0 이상 지진이 현재까지 총 9번 확인된 가운데 3번이 올해 일어난 셈이다.

기상청은 지난 12일 열린 당정회의에서 이번 지진은 이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많지만, 향후 규모 5.8에서 6.0 초반대 지진은 한반도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 경북 경주에서 규모 5.1과 5.8의 지진이 발생한 지난 12일 오후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관계자가 지진 발생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처럼 강진 빈도가 갈수록 늘어나고, 향후 발생 위험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국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와 함께 지진보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지진전용의 단독 보험은 전무하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보험을 통해 지진에 따른 재산상 피해를 보상 받는 방법은 일부 대형 손해보험사의 화재보험이나 주택종합보험에 특약을 추가하거나, 정책성보험 풍수해보험의 기본계약이나 특약을 이용하는 것이다.

삼성화재의 ▲풍수해보험 ▲패키지보험(공장 등의 화재 등 보상) ▲기술보험(건설공사 재해 보상) ▲화재보험(일반주택, 건물 화재 등 보상), 현대해상의 화재보험, 재산종합보험 등이 여기 해당된다. 풍수해보험은 위 두 회사를 비롯해 동부화재, KB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 등에서 가입할 수 있다.

지진 때문에 신체가 다치거나 죽은 경우에는 사고당사자가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의 ▲질병상해보험 ▲실손의료보험 ▲해외여행보험 등에 가입돼있으면 치료비 등을 보상받을 수 있다. 단 이같은 보험들은 약관에 따라 차이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지진·분화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손해는 보장하지 않는다.

이처럼 전용상품이 없어 일부 보험과 특약을 활용해야 지진 피해를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민간의 활용률은 매우 저조하다.

재산상 피해 보상 관련 보험 가입 현황만 따져 봐도, 2014년 기준 민간보험사의 전체 화재보험 계약 153만건 중 지진 특약 가입 건수는 2187건에 불과하다. 가입률은 0.14% 수준이다.

풍수해보험 가입률은 더 낮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풍수해보험은 가입 계약이 1만2036건, 보험료는 115억6000만원에 그쳤다. 국내 개인주택이 총 1592만호임을 고려하면 가입률이 0.1%에도 못 미친다.

일부 화재·정책성보험 보장하지만 가입률 ‘0%대’
보험사 “위험율 산정 어렵고 감당할 손해 너무 커”
  ◆업계 "지진전용보험 출시는 난색" 표명

업계에서는 저조한 가입률 배경으로 내진설계 누락 또는 노후 건물에 대한 지진피해 담보 보험가입이 의무화돼있지 않은 점과 지진 위험에 대한 소비자의 낮은 인식을 꼽았다.

하지만 최근 잦아진 지진 빈도와 이번 경주 지진 사태가 계기가 돼 지진보험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그간 지진 발생 가능성이 태풍, 집중호우, 화재 등 다른 재해에 비해 현저히 낮아 지진보험에 대한 고객 수요가 없었던 상황”이라며 “최근 전례 없는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고, 추가 발생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지진보험의 필요성은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지진 발생 이후로 특약 형태로 지진 피해를 보상해 주는 상품은 다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지진전용 단독보험 개발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현행 관련 법률이 지진보험을 국가가 아닌 민영보험사의 자율 영역으로 두고 있지만, 정작 회사들은 지진에 대한 경험이 없고 지진 위험발생률을 따져야 하는 부분도 부담이 너무 커 상품 개발이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일으키는 손해는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발생하며, 그에 따른 위험률도 막대해 기업들이 해당 시장에 뛰어드는 것 자체를 꺼리는 상황이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국내는 지진에 대한 경험치가 부족할 뿐더러 지진보험 영역을 정부가 아닌 민영보험사에 전부 맡겨버려 개별사가 일일이 위험요율을 산정하기 어려워 전용보험 개발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들 역시 “지진 같은 천재지변, 전쟁 등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손해는 담보 범위에서 제외한다”며 “위험률이 크기 때문에 관련 상품 개발 계획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 지난 12일 오후 경북 경주시 일대에 규모 5.1과 5.8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경주시 석잔동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과 학교 관계자 수백 명이 학교운동장으로 대피해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재보험 체계 마련시급

이렇다 보니 지진 전용보험 개발이나 관련 상품 강화를 위해서는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지진 발생위험률을 산정하고, 정책성보험 개발에 나서거나 민간보험사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국가재보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성보험은 정부의 정책목적 달성을 위해 법률에 의해 제도적으로 도입·운영하는 보험이다. 대부분 가입이 의무화돼 있으며,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보험계약자에게 보험료를 지원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손해를 정부가 보장하는 경우도 있다.

재보험은 한 보험사가 인수한 계약의 일부를 다른 보험사에 인수시키는 것으로 일종의 보험을 위한 보험이다. 보험사의 보상책임을 분담해주는 제도인 셈이다. 국가 재보험은 말 그대로 보험사의 보상책임을 국가가 분담하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진보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정책성보험 형태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 손보사 관계자도 “지진보험은 국가재보험 형태로 가는 것이 가장 좋다”며 “그래야 민간보험사들도 위험률이나 손해에 대한 부담을 덜고 관련 보험 개발과 판매 등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진이 자주 발생하거나 이미 지진보험 시장이 잘 자리 잡힌 해외에서는 정부 역할이 커 정책성보험이 잘 갖춰져 있다. 민간보험사는 주로 보험판매와 보험료 수납, 보험금 지급 등의 사업대행업무와 재보험 수재업무를 맡고 있다. 민간보험사가 지고 있는 보상책임 자체도 안정적으로 분산돼있다.

대표적인 지진 다발 국가 일본은 민간보험사가 지진보험을 모집하고, 보험 리스크를 손보사, 재보험사, 지진재보험사, 정부 등이 분산해 보유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일본은 2014년 기준 지진보험 가입 건수가 1만6489건, 가입 보험 금액은 약 143조엔(1557조원) 규모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의 지진보험 가입률은 지난해 기준 60%를 돌파했다.

미국 역시 민간보험회사에 보험 모집을 위탁하고 지진 리스크를 주정부가 모두 인수하는 형태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진국이 보험사에 보험 모집을 위탁하면, 주정부가 지진 리스크를 CEA를 통해 모두 인수하는 것이다. 미국의 지진 보험 가입 규모는 지난 2013년 기준 보험료 기준 약 16억달러(1조7721억원)에 달한다.

터키는 모든 주택에 지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지진보험 리스크를 터키지진재보험풀을 통해 운영하고 있다.

일본·미국·터키, 국가재보험 활용해 보상책임 분산
국민안전처 “현재 최선은 풍수해보험 이용하는 것”

이같은 체계를 갖춘 나라들의 국내총생산 대비 지진보험 시장 비율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44배며 미국은 9배, 터키는 10배에 이른다.

이밖에 노르웨이와 스페인, 프랑스 등은 지진, 분화, 폭풍 등 자연재해를 포괄해 보상하는 보험 제도를 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국내 지진보험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이러한 해외 사례를 참고하라는 설명이다. 덧붙여 지진 발생 빈도가 높지 않다는 특성을 감안한다면 보험과 기금을 더한 형태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한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정책성 지진보험을 운영하는 미국과 지진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터키, 재보험사를 통해 지진보험을 관리하는 일본의 사례 등을 검토해 국내에서도 관련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발생 빈도가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보험과 기금을 더한 형태로 운영하며 보험사가 모집·손해사정·보험금 지급 등의 업무를 대행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이 지난 21일 경북 경주시청을 방문해 경주시 관계자들로부터 지진피해 수습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 정책, 아직 정해진 것 없어

업계의 이같은 요구에 대해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경주 지진 사태 이후 국민안전처에서 범정부 지진방재개선대책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조기 마련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 과정에 정책성보험이나 국가재보험 체계 등의 논의 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는 얘기다.

필요하다면 당연히 종합대책 중 하나로 논의되겠지만,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사안인 만큼 부처 간 협의와 전문가들의 의견 참고 등을 거치면서 사안 검토 여부나 논의 방향이 잡힐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범정부 지진방재개선대책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마련해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책성보험이나 국가재보험 체계 같은 부분도 필요하다면 함께 검토되겠지만 정해진 것은 없다”며 설명했다.

이어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사안인 만큼 논의되려면 부처 간 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도 참고해서 사안 검토나 논의 방향 등이 고민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안전처는 또한 건물 등이 지진으로 입은 피해를 보상하는 보험을 찾고 있다면 이미 판매 중인 정책성보험인 풍수해보험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현재 지진으로 인한 재산상 피해를 보상받는 최선의 방법은 풍수해보험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진에 대한 주택이나 온실 등의 피해를 기본으로 담보한다”며 “최근 지진 발생 이후 보험사들에게 풍수해보험 가입 독려를 요청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