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가, 동지인가

개봉: 2016. 9. 7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 공유, 한지민

[파이낸셜투데이=성남주 기자] ‘밀정’이란 단어는 남의 사정을 은밀히 정탐해 알아내는 자를 뜻한다.

서구적 개념인 스파이, 첩자 등의 단어가 생기기 전인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 경찰은 독립운동 세력의 내부에 끊임없이 밀정을 심었다.

항일 인사들 사이에서도 변절자가 나오는 등, 이념과 체제의 대립인 냉전시대가 드리운 것보다 더 짙은 그늘이 나라를 잃은 같은 민족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항일과 친일 사이, 경계선에 선 인물들은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 속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교란했다.

<밀정>은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대였으나 동시에 서양 문물이 들어오던 역동적인 시대였던 이중적 의미를 가진 1920년대를 배경으로,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로 친일을 선택한 인물 ‘이정출’과 그가 작전 대상으로 삼게 된 항일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새로운 리더 ‘김우진’을 큰 축으로, 이들 사이 펼쳐지는 암투와 회유 작전을 그렸다.

이념이 민족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기 전, 외세에 의해 이미 첩보전의 토양이 싹 튼 비극적인 시대, 드라마틱했던 일제강점기를 택한 <밀정>은 늘 새로운 장르를 한국 관객에게 소개했던 김지운 감독답게, ‘밀정’이란 인물의 정체성 자체에 내재한 서스펜스와 긴박한 사건 전개가 압권인 스파이 영화의 장르적 쾌감을 선보인다. 

나라를 잃은 비극적인 시대, 경계선 위에서 외줄 타듯 살아갔던 인물들의 내면을 쫓아가는 역동적인 드라마 속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1923년 경성. 일제 통치의 상징과도 같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으로 인해 일대 동요가 일어난다. 전 민족이 떨쳐 일어났던 3.1 만세 운동의 패배 직후, 무력감에 휩싸였던 조선 민중은 신출귀몰하며 추적을 따돌린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김상옥 의사의 도주를 응원했다.

그가 사망한 직후,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은 조선 총독부를 비롯한 일제의 거점 시설을 파괴할 2차 거사를 계획한다. 국내에서는 파괴력이 뛰어난 폭탄을 제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헝가리 혁명가인 폭탄 제조 전문가와 손잡고 상해에서 폭탄을 대량 제조, 경성으로 들어오려 했다.

안둥과 신의주를 거쳐 폭탄을 들여오는 과정에 한때 독립운동 진영에 속했으나 변절한 후 일제 고등 경찰인 경부로 일하고 있던 황옥이 의열단의 새로운 리더인 김시현과 함께 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황옥은 의열단의 2차 거사를 저지하기 위해 일제가 심은 ‘밀정’이었다는 설과, 일본 경찰을 가장한 의열단원이었다는 설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실제 정체와 의도가 밝혀지지 않은 채 역사 속 의문의 인물로 남았다.

<밀정>은 친일파인 일제 경찰과 항일의 최전선에 있었던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원이라는 극과 극의 정체성을 지닌 황옥과 그와 함께 거사를 도모한 김시현, 그리고 폭탄반입사건을 극화해, 일제강점기의 드라마틱한 순간과 사람들을 스크린으로 불러온다.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그려낸 시대극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스크린으로 불러내다

<밀정>은 송강호와 공유. 서로 다른 이미지의 두 배우를 한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는 첫 영화다. 언제나 최신작을 대표작 리스트에 업데이트 해 온 괴물 같은 배우 송강호와 사회고발극 <도가니>, 액션 <용의자>, 정통 멜로 <남과 여>, 흥행 폭주 중인 재난영화 <부산행>까지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공유. 조선인 일본 경찰과 의열단의 새로운 리더라는 공존이 불가능한 극과 극의 인물로 만나 의심과 회유, 의리와 우정까지 넘나드는 두 사람의 입체적인 관계 변화는 두 진영 사이에 감도는 서스펜스와 일촉즉발의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로 극을 끌고 간다.

임무를 위해 속내를 감추고 접근한 두 남자, 송강호와 공유는 예상치 못 했던 케미스트리로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장악한다. 역시 실존 인물인 여성 의열단원 현계옥을 모델로 한 의열단 핵심 멤버 ‘연계순’으로 분한 한지민은 단아한 미모와 여린 체구에서는 연상할 수 없는 곧고 단단한 강단으로 의열단의 최선봉에 서는 전위다운 면모를 강렬하게 관객의 뇌리 속에 박아 넣는다.

일본으로 귀화한 조선인 일본 경찰인 ‘하시모토’ 역의 엄태구는 확신에 차 일제에 충성하는 인물로 분해 먼저 공을 세우겠다는 욕망으로 송강호의 ‘이정출’을 견제하고 의심하며 극의 한 축을 단단히 책임졌다.

신성록은 댄디한 외모에 어울리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의열단 자금책 ‘조회령’으로 분해 공유의 ‘김우진’과 함께 의열단의 멋과 스타일을 완성했다. 서로 충돌하고 어울리는 강한 개성과 연기력. <밀정>의 앙상블은 탄탄하고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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