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솔로몬] 고향이 지방인 직장인 A씨는 서울에 직장을 얻게 됐습니다. A씨는 주거비용을 조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B씨와 같이 동거하기로 하고 임대료, 공과금 등을 반씩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임대차계약은 A씨 명의로 체결했고 A씨가 임대료, 공과금 등을 납부하면 월말에 B씨가 그 금액의 반을 A씨에게 입금해주기로 했습니다.

 

▲ 강진영 변호사

사건의 발단은 A씨가 많이 바빴던 관계로 임대료 및 공과급 지급기일 놓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B씨가 임대료와 공과급 납부를 대신 해주겠다고 제안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몇 개월 동거를 하면서 신뢰관계도 쌓였기에 A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B씨에게 자신의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보안카드도 복사해 B씨에게 건네줬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B씨는 갑자기 집을 나가 연락이 두절됐고, 얼마 뒤 A씨에게는 수많은 대출업체로부터 대출금상환 요구통지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B씨가 A씨의 공인인증서를 이용해 인터넷으로 여기저기서 A씨 명의의 대출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A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저축은행을 포함한 대출업체들에 대해 명의도용으로 인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고, 저는 A씨에게 대출을 해준 한 저축은행을 대리해 위 소송을 담당했습니다.

A씨의 주요한 주장은 A씨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3자가 대출계약을 체결한 것이므로 A씨에게는 대출계약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정이 없다면 A씨의 주장은 타당했고 A씨가 명의도용 사실을 입증하자 변호사 없이 소송을 하던 몇몇 대부업체들은 소송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다른 대리인들은 A씨에게는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책임이 성립되므로 대출금을 변제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표현대리책임은 대리인이 권한을 넘어서 어떠한 행위를 했을 때 만약 상대방에게 그러한 사정을 믿은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본인에게 그 책임이 귀속된다는 것입니다.

대출업체의 변호사들은 A씨는 B씨에게 임대료 및 공과금을 대신 납부할 수 있는 권한을 줬으므로 B씨에게는 대리권이 있었고, 공인인증서는 전자서명법에 따라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고 그 발급절차도 본인이 아니면 도저히 발급받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엄격하므로 대부업체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적극 주장했습니다.

A씨의 변호사는 위 사건에서는 B씨가 A씨의 대리인이 아니라 A씨 본인처럼 행세한 경우, 즉 성명모용의 경우이므로 표현대리가 성립할 수 없다고도 주장했으나, 성명모용의 경우에도 표현대리가 성립한다는 것이 기존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1다29814 판결 등)의 취지였고 이러한 점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A씨에게는 표현대리책임이 인정됐고 A씨는 대출금을 모두 변제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공인인증서는 금융거래에 있어 본인 인증의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타인에게 공인인증서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면 그것만으로 표현대리책임이 성립할 수 있으므로, 절대 타인에게 공인인증서를 대여해서는 안 될 것이고 그 관리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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