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빨라지는 광폭행보, 하반기 이정표는 어디로?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월 4일 오전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그룹 신년 하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2015년 8월 14일 새벽 0시 5분께 최태원 회장은 상의 옷깃에는 SK그룹 배지를 달고, 왼손에는 성경을 들고 의정부교도소를 나섰다. 2년 7개월, 926일만의 귀환이었다. 그 후 지난 1년 동안 최 회장의 경영은 광폭 행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출소 3일만에 그룹 주요 경영진과 ‘확대 경영회의’를 열었고, 대규모 투자를 승인하고, 투자확대를 주문했다. 이후 숨돌림 틈 없이 국내 사업장은 물론, 해외 사업장을 방문했다. 그야말로 ‘환골탈태’라고 볼 수 있는 SK그룹의 지난 1년간의 변화를 들여다 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8월 14일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출소 후 휴일 내내 출근하면서 경영에 조기 복귀했다. 첫 공식 행보는 출소 3일 뒤인 8월 17일 주력 계열사 사장단과 경제활성화 방안 등을 논의하는 ‘확대 경영회의’였다. 회의 직후 SK그룹은 반도체 분야에 46조원을 투자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최 회장은 우선 투자가 시급한 반도체 중심으로 현재 건설 중인 공장의 장비 투자, 2개의 신규공장 증설 등에 46조를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에너지화학·정보통신 분야도 투자를 확대할 것을 요청했다.

최 회장은 “어려울 때 기업이 앞장서서 빠른 투자를 하고 계획보다 확대하는 것이 경제활성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라며 “디딤돌과 비상(飛上) 프로그램 같은 혁신적인 청년일자리 프로그램이 확산되도록 확실히 챙겨 달라”고 주문했다. 또, “내가 앞서서 풍상을 다 맞을 각오로 뛰겠으니 전 구성원이 대동단결해서 매진해 달라”고 말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최 회장은 스스로 밝힌 각오에 걸 맞는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해에만 SK하이닉스 이천사업장, 대전R&D센터,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 대전·세종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방문한 데 이어 올해는 SK하이닉스 청주공장, SK머티리얼즈 영주공장, SK인천석유화학, SK바이오팜 판교연구소 등의 현장을 잇달아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 지난해 9월 스페인을 방문한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이 조수 존 이마즈 Repsol CEO를 만나 환담을 나눈 뒤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글로벌 경영도 주목할만 하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위치한 우한 에틸렌 공장 방문, SK루브리컨츠와 스페인 석유업체 렙솔리 합작해 만든 윤활기유공장 준공식 참석, 북미 에너지 사업을 챙기기 위해 휴스턴에 위치한 SK에너지 트레이딩센터와 산호세의 SK하이닉스 미국 본부 방문 등 해외 곳곳을 누볐다.

최 회장과 SK그룹이 내세우고 있는 미래비전은 ‘따로 또 같이’다. ‘따로 또 같이’ 경영전략은 계열사들의 독립경영과 지주회사를 연결시킨 것으로 스스로가 ‘따로’ 독립해서 잘 성장하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같이’ 하자는 개념을 말한다. 계열사들의 자열적인 경영 시스템을 존중하면서 사업의 안정화를 꿰하고, 신사업에는 각 계열사들이 힘을 모아 역량을 집중하자는 얘기다.

국내외 현장시찰 강행군, 계열사 실적개선 밑거름
46조 통 큰 베팅, 선제적 투자와 생산기지 확충

SK그룹은 현재 통신과 정유화학, 반도체 부문 등 기존 사업의 안정적인 실적을 바탕으로 신사업 육성에 적극 나선 상태다. SK그룹이 확대를 노리는 신사업 분야는 IT서비스, 정보통신기술(ICT), 액화천연가스(LNG), 바이오·제약, 반도체 소재·모듈 등 5개다.

SK그룹 신사업 육성은 지난해 SK C&C와 SK㈜의 합병으로 탄생한 새 SK㈜가 이끌고 있다. 당시 자산 13조원 규모의 대형 지주회사로 새 출발을 한 SK㈜는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전략적, 다각화된 지분투자에 나서고 있다.

우선 기존사업의 경우 국내 정유업체 1위 SK이노베이션은 과감한 M&A와 해외 합작 등 선제적 투자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페루 가스수송 자회사 TgP의 지분 전량과 포항, 인천 유휴부지 등을 처분하면 8조원에 달했던 순부채 규모를 2조원대 후반까지 낮추는 등 비핵심 자산을 처분함과 동시에 미래 유망 먹거리 사업에는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풀가동도 모자라 추가 증설

가장 집중하고 있는 핵심 사업은 전기차의 심장인 중대형 배터리 부문이다. 충남 서산에 세운 배터리 공장에서는 지난해부터 기아 쏘울 전기차 등에 배터리 공급을 시작했고, 내년부터는 벤츠 차량에 탑재될 배터리를 생산할 예정이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이온전지분리막(LiBS)에 대한 투자도 강화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분리막 공장 9개 생산라인이 100% 풀가동 중인 가운데, 2018년까지 2개 라인을 추가 증설해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사상 최대 반기 실적을 기록했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7.3%나 증가한 1조9643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1.2% 줄어든 19조7384억원에 그치면서 영업이익률은 5.32%에서 4.64% 급증한 9.95%를 기록했다. 당기순이익도 34% 가량 늘어난 1조1921억원으로 나타났다.

SK이노베이션 외에도 SK그룹 에너지부문 계열사들의 실적은 양호했다. SK가스는 올해 상반기 매출 2조4069억원, 영업이익 105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1.1%, 182.3% 급증했다. 영업이익률은 전년 동기(1.99%) 보다 2.29%포인트 높아진 4.28%로 나타났다.

SK케미칼은 매출 4조543억원, 영업이익 122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보다 각각 25.9%, 323.9% 뛰었다. 영업이익률은 1.20%에서 4.02%로 2.82%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SK텔레콤과 SKC, SK하이닉스의 실적은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 4530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3750억원)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SK텔레콤과 SKC의 영업이익도 4074억원, 853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각각 1.3%, 25% 줄었다.

위안거리는 3분기에는 실적 개선이 전망된다는 점이다. 증권업계는 SK하이닉스가 3분기 이후 성수기 진입과 신규 스마트폰 출시에 따라 실적을 점진적으로 개선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노무라, 골드만삭스 HSBC, 그레딧 스위스, 다이와 등 외국계 투자기관에서도 SK하이닉스의 3분기 이후 실적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모든 D램 제품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 ▲재고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점 ▲하반기 신규 스마트폰 출시가 이어진 다는 점 ▲3D낸드 생산이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점 등을 들며 하반기 실적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SK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전략육성기업들은 모두 호실적을 내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SK머티리얼즈는 올 상반기 매출 2138억원, 영업이익 73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2.1, 66.0% 급증했다.

SK머티리얼즈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태양광 등에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특수 가스를 제조·판매하는 전문기업으로 지난 2월 SK그룹이 지분 인수를 마무리 지으면서 그룹에 새롭게 편입됐다.

10월 ‘하반기 CEO 세미나’ 혁신안 마련 주문
연이은 M&A로 주목, 새로운 후보군 물색 주력

SK머티리얼즈 호실적 배경에는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하는 납품매출 증대와 지난 4월 인수한 SK에어가스 매출 인식, 그리고 특수 가스의 판매 호조 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SK머티리얼즈는 경북 영주에서 반도체 등의 제조공정에 발생하는 잔류물을 제거하는 데 쓰이는 특수 가스인 삼불화질소(NF3) 생산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SK바이오랜드의 실적 강세도 눈에 띈다. SK바이오랜드의 올 상반기 매출은 506억원, 영업이익은 8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3.5%, 13,2% 증가한 수치다.

SK바이오랜드는 화장품 원료인 생약물질 추출물을 판매하는 회사다로 지난 2014년 SK그룹에 편입됐다. 이 회사는 오는 2018년 상반기를 목표로 중국에 연간 1억장 규모의 마스크팩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다.

원료의약품 생산회사 SK바이오텍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 150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2배에 달하는 실적을 거뒀다. SK바이오텍은 지난 2월 SK㈜가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자회사로 편입된 바 있다. SK바이오텍은 지난해 11월 세종시 명학산업단지에 증설 부지를 확보해 현재 16만L 생산규모를 2020년까지 80만L로 확장할 예정이며 글로벌 유망 업체와의 M&A도 적극 검토 중이다.

SK㈜의 신약개발 자회사 SK바이오팜은 독자개발중인 뇌전증(간질) 치료제 ‘YKP3089’가 올해 미국 식품 의약국(FDA)로부터 약효를 인정받아 임상 3상 없이 신약 승인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뇌전증 치료제는 연간 매출 1조원 이상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SK그룹은 2020년까지 바이오·제약 사업에서 2조5000억원의 매출과 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과감하고 빠른 변화 주문

하반기 최 회장의 경영 행보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연이은 M&A로 주목을 받았던 SK그룹의 헬로비전 인수가 공정거래위원회의 합병 불허로 결국 좌절된 상황에서 또 다른 후보군을 물색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미 SK네트웍스는 동양매직 인수전에 참여하기 위해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상태다.

최 회장은 지난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사업, 조직, 문화 등에서 기존 SK의 틀을 깨자”며 ‘뉴SK’를 역설한 뒤 “오는 10월 하반기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자”고 당부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앞서 5월에는 “현재 경영환경에서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데스(Sudden death, 돌연사)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SK그룹 각 계열사는 현재 하반기 혁신안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올 상반기 어느 그룹 회장보다 활발한 경영행보를 보인 최 회장이 하반기에는 어떤 모습으로 그룹을 변화시킬지 주목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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