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지 못한 제과왕의 꿈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해태그룹은 식품업을 모태로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성장한 ‘해방동이’다. 그 과정에서 주력사업인 제과 외에도 전자와 종합상사, 중공업 등 다양한 사업으로 진출하며 사세를 확장해 재계 순위 24위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해태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했고, 계열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 회사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해태그룹의 시초는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전 영강제과에서 근무하던 박병규와 민후식, 신덕발, 한달성 등 4명은 `해태제과 합명회사‘를 광복 직후 설립했다.

이는 민족 자본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내 최초의 식품회사로 해태그룹의 모기업인 해태제과의 전신이다. 현재 크라운제과의 본사로 사용되고 있는 용산 사옥도 영강제과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운 것이다.

해태제과 합명회사는 1960년 사명을 해태제과 공업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해태제과는 초기에 ‘해태 카라멜’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카라멜과 웨하스, 제리, 풍선껌 등으로 1950~1960년대를 풍미하고, 70년대에는 식품업계 불후의 명품인 부라보콘, 맛동산을 탄생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과정에서 감귤냉장판매를 설립해 농수산물의 수집‧가공처리 사업에도 진출했다.

기반을 다진 해태제과는 1967년 강력한 라이벌인 롯데가 등장하자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다

원조 ‘해방동이’…민족자본 식품회사
강력한 라이벌 등장…사업다각화 시작

먼저 해태제과는 유업계 진출을 위해 미국의 베아트릭스사와 손잡고 1973년 대한식품공사를 인수한다. 당시 해태제과는 인수를 위해 베아트릭스사와 합작투자 회사인 메도골드코리아를 설립했다. 이후 대한식품공사는 해태유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동시에 낙농제품의 제조·가공과 국내판매, 쳥량음료제조, 목장경영, 축산물판매까지 손을 뻗치면서 몸집을 불렸다. 이밖에도 1973년 해태음료㈜와 78년 해태상사㈜, 79년 해태전자㈜를 설립해 사업부문 다각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1980년대에는 그룹으로써 외형을 갖춰 나갔다. 특히 이시기에는 낙농과 축산업, 음료 등 식품관련 분야로 진출했던 이전과 달리 그룹 운영에 필요한 사업을 펼치기 시작한다.

1981년 광고대행업체 코래드를 설립해 마케팅을 강화한 것과 해태유통을 통해 유통망을 보강했다. 또 그룹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계열사 간 인수합병도 진행했는데 1988년 해태음료의 해태농수산 인수가 대표적이다. 

해태제과식품을 필두로 해태유업, 해태주조, 해태관광, 해태농업개발, 해태상사, 해태유통, 해태 타이거즈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해태그룹이 탄생하게 됐다.

◆새로운 리더의 등장

1977년 故 박병규 회장이 타계하자 1981년 3인 동거체제는 끝이 나고 박병규 회장의 아들인 박건배 회장이 33세의 젊은 나이로 해태제과와 음료, 상사 등 3개사를 맡아 1997년 부도로 그룹이 해체될 때까지 이끌었다.

박 전 회장은 취임후 그룹의 탈식품을 선언하고 전자와 건설, 유통사업을 주력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1994년 인켈, 1995년 나우정밀을 잇달아 인수해 1996년 해태전자에 합병시키는 등 전자. 통신에 힘을 쏟았다.

이같은 박 전 회장의 경영은 초기에는 성공하는 듯 보였다. 1997년 해태그룹은 제과, 음료 사업에서 호조를 보였고, 전자도 상반기에 흑자로 전환하면서 상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호황을 누렸다.

실제 전성기였던 1997년 해태그룹은 해태제과를 모기업으로 총 15개의 계열사에 1만4000여명의 임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1996년 말 기준으로 자산총액 3조3900여억원, 매출 2조7100여억 원으로 재계 2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인켈, 나우정밀 인수 등 전자사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와 미진금속을 모태로 설립한 해태중공업에서 지속적인 적자가 발생하면서 부채가 크게 증가해 자금난을 겪게 됐다.

더구나 1997년은 한보사태, 기아사태 등으로 자금시장이 경색된 상태였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던 시기였다. 

해태그룹은 1997년 11월 1일부로 해태제과를 비롯한 해태그룹 3개 계열사가 부도를 냈다. 보유 부동산과 투자주식 일부를 매각하는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부도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해태그룹은 해태제과와 해태음료, 해태상사, 해태유통 등 주력 4개사에 대해서는 화의를, 해태전자와 해태중공업, 해태산업 등 3개사는 법정관리를 각각 신청한다.

그룹 해체 이후 해태산업의 제과사업부문과 해태가루비는 해태제과에 흡수·합병됐고, 해태상사, 해태중공업, 대한포장, 해태텔레콤, 해태I&C 등은 파산했다.

몸집 키우기에만 급급…차입금만 싸여
너도나도 ‘각자도생’…주인은 ‘제각각’

◆ 해태의 뿌리는 ‘식음료’

살아남은 계열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재는 그룹의 주축이었던 해태제과와 해태음료만이 재기에 성공했고, 나머지 계열사들은 흔적만 겨우 찾아볼 수 있는 상태다.

해태제과는 1999년 해태산업의 제과사업부문과 해태가루비를 흡수·합병했다. 이후 복잡한 절차를 걸쳐 최종적으로 크라운제과에 인수됐다. 처음에는 해태제과 채권단이 벨기에의 ‘Korea Confectionery Holdings NV’에 회사를 넘겼지만 이를 다시 크라운제과가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채권단이 기존 주주들을 털어내기 위해 신규회사를 설립해 해태제과의 모든 유형자산과 그에 준하는 액수의 부채를 이전했다. 사명도 신규회사가 해태 로고와 해태제과식품 이름을 사용하고 기존 해태제과는 하이콘테크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됐다.

크라운제과는 해태제과를 인수한 뒤 바로 합병하지 않고 별도법인으로 존속시키면서 이전 해태제과의 로고와 이를 간략화한 신규로고, 구 해태제과의 연혁을 홈페이지에 기재했다. 

구 해태제과의 주주들 중 일부가 자신의 주식이 현 하이콘테크가 아닌 해태제과식품의 주식임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해태제과는 2014년 허니버터칩의 대성공으로 해태그룹사 중 가장 빨리 재기에 성공했다.

▲ 해태제과가 과거의 영광을 되 찾을 수 있게 만든 허니버터칩. 사진=해태제과

해태제과와 그룹의 또 다른 주축으로 활약했던 해태음료는 현재 LG생활건강 산하 계열사로 사명이 해태htb로 변경됐다.

해태음료는 LG생활건강의 품에 안기기까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2000년 해태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해태음료는 일본 히카리 인쇄그룹이 지분 51.0%를 인수해 최대 주주에 올랐다.

또 2004년에는 해태음료 지분 20.0%를 보유하고 있던 아사히맥주가 히카리그룹으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으며 주인이 바뀌었다. 이후 오랫동안 아사히맥주가 최대주주로 있다가 2010년 LG생활건강이 국내 음료시장 3위에 올라 있던 해태음료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LG생활건강은 아사히맥주 등 주주들로부터 해태음료 지분 100%를 단돈 1만원에 사들였다. 2008년 국내 2위 음료업체인 코카콜라음료를 인수했던 LG생활건강은 해태음료를 인수함으로써 국내 2, 3위 음료 업체 모두를 자회사로 두게 됐다. 현재 써니텐과 강원평창수 등 리부 제품의 브랜드권이 코카콜라 컴퍼니로 넘어간 상태다.

이밖에 주류를 생산하던 해태주류는 국순당에 인수됐고, 해태유통은 이랜드그룹에 흡수돼 해태슈퍼가 킴스클럽마트로 운영됐다. 현재는 신세계그룹에 재매각돼 ‘이마트에브리데이’로 운영 중이다. 프로야구팀인 해태타이거즈는 기아타이거즈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여담으로 1990년 해태그룹으로부터 독립한 해태유업은 외환위기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해태그룹과 관련이 있는 기업으로 착각해 경영이 어려워졌다. 결국 해태그룹이 해체되면서 해태유업도 부도를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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