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들지 않는 재벌들의 ‘현금 보따리’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국내 10대 재벌들의 ‘현금 보따리’가 또 불어났다. 한두 푼도 아니고 불과 1년 사이에만 7조5000억원이다. 정부가 연일 기업들에게 현금을 쌓지 말고 민간에 풀라는 주문을 계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삼성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두 배 넘게 보유 현금 규모를 늘려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국내 10대 그룹이 보유한 현금이 1년 새 7조5000억원이 넘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삼성그룹은 혼자서만 5조원이 넘는 급증세를 보이며 보유한 현금과 현금성 자산이 10조원을 넘어섰다. 불과 1년 새 두 배 넘게 불어난 규모다. 반면 한진그룹은 1조5000억원 가까이 보유 현금이 줄며 대비를 이뤘다.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분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국내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 88개 중 자산의 성격이 일반 회사와 다른 금융업체 10곳을 제외한 78개 회사들이 올해 1분기 말(3월 31일) 기준으로 보유하고 있는 현금·현금성 자산은 35조8808억원으로 전년동기(28조3403억원) 대비 7조5405억원(26.6%) 증가했다.

현금 항목은 말 그대로 원화와 외화 등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돈을 의미한다.

현금성 자산은 현금을 단기적으로 운용해 이익을 얻기 위해 투자한 것으로 현금과 거의 유사한 환금성을 갖는 자산을 말한다. 주로 단기 예금, 채권 등이다.

큰 거래비용 없이 현금으로 전환이 용이하고 이자율변동에 따른 가치변동의 위험이 중요하지 않으며 취득당시 만기나 상환일이 3개월 이내인 것을 현금성 자산에 포함시킨다.

즉, 현금·현금성 자산은 기업이 당장 쓸 수 있거나 빠른 시일 내에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을 의미한다.

◆삼성, 1년새 두 배…LG·롯데·SK도 1조 이상↑

실제로 10대 그룹 중 현금·현금성 자산이 늘어난 곳은 6곳으로 줄어든 사례보다 많았다.

그 중에서도 삼성그룹의 증가세가 단연 눈에 띄었다. 삼성그룹 소속 15개 상장사 중 금융사 4곳을 제외한 11개 계열사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현금·현금성 자산은 10조8778억원으로 전년동기(5조4348억원) 대비 5조4430억원(100.2%) 급증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아무 것도 설명할 것이 없다”고 말을 흐렸다.

조사 대상 계열사들 중 감소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을 정도로 일관된 증가세를 보였다.

삼성그룹에 가장 큰 수익을 안겨다 주는 삼성전자는 ‘현금 보따리’도 가장 크고 많이 불었다. 삼성전자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6조788억원으로 같은기간(4조276억원) 대비 2조401억원(50.7%) 늘었다. 삼성그룹 전체 증가분의 37.5%로, 3분의 1 이상이 집중됐다.

삼성중공업도 이 기간 현금·현금성 자산이 817억원에서 1조262억원으로 9445억원(1156.1%)이나 증가했다. 지난해 조선업계 부진 ‘쇼크’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유동성 안정에 주력한 결과로 해석된다.

대규모 합병으로 덩치가 커진 삼성물산도 2166억원에서 1조1191억원으로 현금·현금성 자산이 9025억원(416.7%) 늘었다.

삼성그룹 다음으로 현금·현금성 자산 증가세가 가팔랐던 곳은 LG그룹이었다. LG그룹 소속 12개 상장사의 올해 1분기 말 현금·현금성 자산은 5조1582억원으로 전년동기(3조9422억원) 대비 1조2160억원(30.8%) 증가했다.

LG그룹 계열사 중에서는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는 LG화학이 현금을 가장 많이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LG화학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1조9378억원으로 같은기간(1조1577억원) 대비 7801억원(67.4%) 늘었다.

이어 LG전자가 6943억원에서 1조2807억원으로, LG유플러스가 1877억원에서 4219억원으로 각각 5864억원(84.5%), 2342억원(124.8%) 늘며 현금·현금성 자산 증가폭이 컸다.

롯데그룹의 현금·현금성 자산도 LG그룹과 거의 비슷한 증가액을 기록했다. 롯데그룹 소속 8개 상장사 중 금융사인 롯데손해보험을 제외한 7개사의 올해 1분기 말 현금·현금성 자산은 2조4704억원으로 전년동기(1조2694억원) 대비 1조2010억원 증가했다.

롯데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화학 사업을 맡고 있는 롯데케미칼의 증가세가 눈에 띄었다. 롯데케미칼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1조1954억원으로 전년동기(6006억원) 대비 8948억원(149.0%) 늘었다. 유통의 중심인 롯데쇼핑도 3992억원에서 5516억원으로 1524억원(38.2%) 증가했다.

SK그룹도 1조원이 넘는 현금을 축적한 것으로 조사됐다. SK그룹 소속 15개 상장사 중 금융사인 SK증권을 제외한 14개사의 올해 1분기 말 현금·현금성 자산은 3조3793억원으로 전년동기(2조2055억원) 대비 1조1738억원(53.2%) 증가했다.

SK그룹 역시 최근까지 눈부신 실적으로 주목을 받은 SK하이닉스가 가장 많은 현금을 쌓았다. SK하이닉스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7592억원으로 같은기간(1531억원) 대비 6061억원(395.9%) 늘었다.

이밖에 SK이노베이션은 2891억원에서 5318억원으로, SK텔레콤은 1433억원에서 3766억원으로 각각 2427억원(84.0%), 2333억원(162.8%) 늘며, 나란히 2000억원 대의 현금·현금성 자산 증가세를 보였다.

최근 조선업 부진의 중심에 있었던 현대중공업그룹도 현금 보유를 늘리며 안정에 주력한 모양새다. 현대중공업그룹 소속 3개 상장사의 올해 1분기 말 현금·현금성 자산은 2조8629억원으로 전년동기(1조9780억원) 대비 8849억원(44.7%) 증가했다.

중심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의 현금·현금성 자산이 같은기간 1조103억원에서 2조1330억원으로 1조1227억원(111.1%) 늘며 그룹 전체 증가세를 견인했다. 반면 현대종합상사는 2430억원에서 1146억원으로, 현대미포조선은 7247억원에서 6153억원으로 각각 1284억원(52.8%), 1094억원(15.1%) 줄었다.

GS그룹도 GS건설을 중심으로 보유 현금 규모를 키웠다. GS그룹 소속 6개 상장사의 올해 1분기 말 현금·현금성 자산은 2조2664억원으로 전년동기(1조9827억원) 대비 2837억원(14.3%) 증가했다.

GS건설의 현금·현금성 자산이 같은기간 1조5979억원에서 1조8420억원으로 2441억원(15.3%) 늘었다. 이어 그룹 지주사인 ㈜GS가 576억원에서 1437억원으로 증가액(861억원·149.5%)이 많았다. GS글로벌도 183억원에서 986억원으로 803억원(438.8%) 늘었다.

10대그룹 현금·현금성자산, 전년比 7조5405억원↑
삼성, 10조원 돌파…‘나 홀로’ 5조4000억원 쌓아
LG·롯데·SK도 1조 넘게 비축…현대중·GS 등 증가
한진 1조5천억 ‘급감’…현대차·한화·포스코 등 감소

한진 1조5천억↓…현대차·한화도 ‘뚝’

이처럼 10대 그룹 절반 이상의 현금 주머니가 두둑해진 반면, 한진그룹은 큰 폭의 감소세로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진그룹 소속 5개 상장사의 올해 1분기 말 현금·현금성 자산은 6271억원으로 전년동기(2조1076억원) 대비 1조4805억원(70.2%) 감소했다.

무엇보다 그룹의 핵심인 대한항공에서 1조원 넘게 현금이 빠져나간 영향이 컸다. 대한항공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3335억원으로 같은기간(1조6243억원) 대비 1조2908억원(79.5%) 급감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기 구매와 차익금 상환 과정에서 금액이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해운업계 구조조정 논란의 중심에 섰던 한진해운의 현금·현금성 자산도 1732억원으로 같은기간(3663억원) 대비 1931억원(52.7%) 줄었다. 이런 여파에 그룹 지주사인 ㈜한진 역시 현금·현금성 자산이 809억원에서 541억원으로 33.1% 감소했다.

재계 서열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도 현금 보유를 줄여 이목이 집중됐다. 현대자동차그룹 소속 11개 상장사 중 금융사인 HMC투자증권을 제외한 10개사의 올해 1분기 말 현금·현금성 자산은 5조9007억원으로 전년동기(6조6058억원) 대비 7051억원 감소했다.

무엇보다 현대모비스의 현금 주머니가 크게 쪼그라들어 관심이 집중됐다. 현대모비스에서 줄어든 액수만 한진그룹 전체 감소분과 맞먹을 정도였다.

현대모비스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1조1591억원으로 전년동기(2조5339억원) 대비 1조3748억원(54.3%) 급감했다. 불과 1년 새 절반 이하로 쪼그라든 규모다.

현대글로비스의 보유 현금도 1년 새 절반 아래로 뚝 떨어졌다. 이 기간 현대글로비스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6621억원에서 2727억원으로 3894억원(58.8%) 줄었다.

반면 자동차 ‘쌍두마차’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일제히 현금을 쌓는 모양새다. 현대차는 4208억원에서 8529억원으로, 기아차는 4981억원에서 8082억원으로 현금·현금성 자산이 각각 4321억원(102.7%), 3101억원(62.3%) 늘었다.

한화그룹이 보유한 현금도 4000억원 넘게 줄었다. 한화그룹 소속 8개 상장사 중 금융사 3곳을 제외한 5개사의 올해 1분기 말 현금·현금성 자산은 3406억원으로 전년동기(7506억원) 대비 4100억원(54.6%) 감소했다.

이같은 감소분의 대부분은 그룹의 중심이자 지배구조의 정점인 ㈜한화에서 나왔다. ㈜한화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488억원으로 같은기간(3925억원) 대비 3437억원(87.6%) 줄었다. 한화케미칼 역시 2985억원에서 2172억원으로 813억원(27.2%) 감소했다.

그나마 증가세를 보인 계열사들의 변화폭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한화테크윈은 576억원에서 691억원으로,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20억원에서 55억원으로 각각 115억원(20.0%), 35억원(175.0%) 늘어나는데 그쳤다.

포스코그룹도 소폭이긴 하지만 보유 현금 규모가 감소세를 나타냈다. 포스코그룹 소속 6개 상장사의 올해 1분기 말 현금·현금성 자산은 1조9974억원으로 전년동기(2조637억원) 대비 663억원(3.2%) 감소했다.

전체 계열사의 3분의 2인 4곳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룹의 맏형인 포스코의 현금·현금성 자산이 1조6894억원으로 같은기간(1조8986억원) 대비 2092억원(11.0%) 줄어든 부분이 컸다. 포스코대우도 1025억원에서 815억원으로 210억원(20.5%) 감소했다.

포스코켐텍이 502억원에서 1507억원으로, 포스코ICT가 113억원에서 699억원으로 각각 1005억원(200.2%), 586억원(518.6%) 증가했지만, 포스코에서의 감소분을 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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