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성남주 기자] 집으로 가는 길, 터널이 무너졌다. 자동차 영업대리점의 과장 정수(하정우)는 큰 계약 건을 앞두고 들뜬 기분으로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 안에 홀로 갇히고 만다. 그가 가진 것은 78% 남은 배터리의 휴대폰과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의 생일 케이크가 전부다.

사고 대책반의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은 꽉 막혀버린 터널에 진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구조는 더디게만 진행된다.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은 정수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통해 남편에게 희망을 전하며 그의 무사생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지지부진한 구조 작업은 결국 인근 제2터널 완공에 큰 차질을 주게 되고 정수의 생존과 구조를 두고 여론이 분열되기 시작하는데…

일상적인 공간에서 사고현장으로

매일 우리는 도로를 달리고 터널을 지나며 출퇴근을 한다. 영화는 안전을 의심하지 않았던 그곳이 무너져 내린다는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무너진 터널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구조를 기다리는 것뿐이라면 당신은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영화 <터널>은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한 남자와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의 이야기를 그린 리얼 재난 영화다. 주인공 ‘정수’는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의 직장인이자 아내와 딸이 있는 평범한 가장이다. 평소와 다를 바 하나 없던 어느 날, 매일 지나던 터널이 무너져 내리고 일순간 그의 일상도 함께 무너져 내린다.

<터널>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인물이 예기치 못한 재난에 처하게 되는 모습을 통해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을 주며 관객들을 하나로 만들어버린다. 터널 안에 갇힌 ‘정수’는 우리의 친구이자 오빠이고 남편이며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대형사고 앞에 드러난 사회의 어두운 단면
한시가 급한 생명구조…깊어가는 사회갈등

터널 안에서 ‘정수’가 버티고 있는 동안 ‘정수’의 구조를 둘러싼 터널 밖의 상황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종·단독 보도에 혈안이 된 언론들과 부실 공사로 물의를 일으킨 시공 업체, 실질적인 구조는 뒷전인 채 윗선에 보고하기 급급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까지, 현실 세태를 리얼하게 풍자한 스크린 속 모습은 씁쓸한 웃음과 답답함을 자아낸다.

또한 제대로 된 대처 매뉴얼 없이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터널 밖 사람들의 모습은 터널 안에서 1년 같은 1분을 견디며 생사를 다투고 있는 ‘정수’와 극명하게 대조되며 보는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별다른 성과 없이 지지부진한 날들이 이어질수록 터널 안에 갇힌 ‘정수’에게 점점 무관심 해지는 국민들의 반응 역시 낯설지 않다.

충무로 ‘대세’ 배우 총출동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감독이든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들”이라는 김성훈 감독의 말처럼 <터널>은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의 캐스팅 소식만으로도 영화계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탁월한 연기력은 물론, 몸을 사리지 않은 열정으로 각 인물이 처한 복잡미묘한 재난 상황을 그려냈다.

하정우는 아내와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자 무너진 터널에 갇힌 ‘정수’로 분해 가족의 품으로 살아 돌아가려는 남자의 치열한 생존기를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정수’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는 아내 ‘세현’ 역을 맡은 배두나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고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강인한 아내의 모습을 호소력 있게 표현했다. 감정이 과장되는 것을 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위기에 처한 아내의 상황과 심경을 담담하게 그렸다.

‘정수’를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구조본부 대장 ‘대경’으로 변신한 오달수는 그만의 개성이 녹아든 캐릭터를 선보인다. 오달수라는 배우의 친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친구 같은 구조대원 캐릭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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