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투데이=김승민 기자] 영국과 중국, 일본의 중앙은행들이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돈 풀기 카드를 고려하고 있는 태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신흥국 경기 하강 때도 중앙은행들의 이같은 역할 덕분에 세계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는 만큼 중앙은행의 이번 움직임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만성화된 돈 풀기가 기업 투자나 소비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자산값만 끌어올려 시장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5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에 따르면 브렉시트발 충격으로 급격히 악화되는 경제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기준금리를 기존 0.5%에서 0.25%로 끌어내렸다. BOE의 322년 역사상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이미 제로(0) 수준에 가까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는 것만으로는 ‘약발’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자산매입 프로그램 양적완화(QE) 재가동과 회사채 매입 등 ‘플러스 알파’도 함께 내놨다.

국채 매입을 통한 QE를 재개하면서 그 규모도 4350억파운드로 확 늘렸다. 기존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영국 기업의 파운드화 표시 투자등급 회사채도 다음달부터 향후 18개월간 100억파운드 규모로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은행들이 BOE에서 기준금리에 가까운 저리로 4년간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최저대출제도(TFS)’도 시행하기로 했다. 기준금리 인하로 인해 악화된 은행 수익성을 만회할 수 있도록 해줘 민간기업과 가계에 더 적극적으로 대출하도록 독려하는 조치다.

마크 카니 BOE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BOE는 필요한 조치는 무엇이든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 인하와 TFS 규모 확대, 매입 자산 종류와 규모 확대 등 다양한 차원에서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률이 정체 상태에 빠진 중국에서도 금리 인하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거시경제정책 주무부처로 한국의 기획재정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지난 3일 홈페이지에 올린 ‘투자의 경제성장 촉진 작용을 발휘해야’라는 보고서에서 금리 인하 필요성을 강조해 이목을 끌었다.

보고서는 “상반기 민간투자 증가율이 2.8%에 그쳐 작년 동기(11.4%)에 비해 8.6%포인트 떨어졌다”며 경제 성장을 위한 투자 활성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특히 제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과잉생산 설비 해소와 함께 적시에 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낮출 것을 제안했다.

중국은 지난해 다섯 차례 금리를 내리고, 네 차례 지준율을 인하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지난 3월 지준율을 한 차례 인하한 게 전부다. 현재 중국의 대출 기준금리는 4.35%, 지급준비율은 17%다. 다만 경제부처가 통화정책을 언급하는 이례적인 행보에 나선 데 대해 인민은행을 과도하게 압박해 금리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발개위는 이날 오후 추가 금리·지준율 인하 필요성을 적시한 문장을 삭제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지준율은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받아들인 예금 중에서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비율로, 지급준비율이라고도 한다.

시장에서는 발개위가 인민은행과의 정책 갈등을 걱정해 이들 문안을 삭제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문장을 삭제했더라도 경제주무부처가 금리 인하 등 추가적인 통화 완화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는 점에서 인민은행이 이에 화답할 개연성이 크다는 게 시장 분석이다.

올해 1월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결정했던 일본은행(BOJ)도 지난달 상장지수펀드(ETF) 매입량을 두 배로 늘리는 소규모 금융 완화를 추가로 단행했다.

ETF는 코스피200, 코스피50과 같은 특정지수의 수익율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된 지수연동형 펀드다. 2002년 처음으로 도입됐으며 거래소에 상장돼 일반 주식처럼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BOJ는 오는 9월에 추가 양적 완화나 마이너스 금리 확대를 저울질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BOJ가 그동안 사들인 국채를 나중에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시장에 내다팔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보유할 것이라는 점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헬리콥터머니 정책을 실행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소비·투자 확대를 통해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서는 민간 이자 부담을 최소한으로 낮춰줘야 하는 만큼 중앙은행이 유동성 확대에 나서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리스 등 유럽 재정위기, 중국 등 신흥국 경기 하강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은 것은 중앙은행들의 역할 확대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정부의 재정 확대나 구조개혁은 미진한 채 손쉬운 중앙은행 유동성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효과는 점점 반감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BOJ가 올해 1월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결정하고, 지난달 ETF 매입량 증액을 발표했음에도 엔화값은 오히려 강세로 전환되고, 물가상승률은 넉 달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중앙은행 유동성 확대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도 추가 금리 인하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에도 금리를 다섯 차례 내렸지만 경기부양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설비 과잉 업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와중에 금리를 내렸다가는 자칫 좀비기업들의 수명만 연장해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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