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산업은행발 낙하산 파문이 점입가경이다. 대우건설 사장 인선 절차가 마지막 단계에서 두 번이나 중단된 것. 첫 번째는 내부인사 사장 선임을 막으려는 정치권의 입김 때문에 파행됐고, 두 번째는 사추위(사장추천위원회)의 강력 반발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산업은행에서 투하된 낙하산이 사추위의 거미줄 포격에 발이 묶인 모양새다.

대우건설 사장 인선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은 박영식 현 대우건설 사장과 이훈복 대우건설 전무로 압축됐던 사장 선임 과정이 지난달 10일 돌연 중단되면서 시작됐다. 4일 뒤 사추위는 “외부 인사를 포함해 다시 사장 공모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고, 지난 13일 후보자를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과 조응수 전 대우건설 플랜트사업본부장(부사장) 2명으로 압축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당시 사추위 회의에서는 고성이 오갔을뿐만 아니라 사추위원 한 명이 문을 박차고 나가는 일도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외부 인사를 사장 자리에 앉히려는 외부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대우건설 안팎에서는 ‘대우조선이 내부 출신 사장들의 분식회계로 문제가 된 만큼 대우건설은 외부에서 영입을 해 와야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가 “외부에서 후보를 찾으라”는 주문을 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대우건설 노동조합은 강력 반발했다. 노조는 박창민 전 사장을 정치권이 낙점한 낙하산 인사로 보고 사장 선임을 반대하고 있다.

대우건설 노조는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셩명을 내고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민간기업의 사장 인선에 개입하려 하고 있다”며 “사장 후보인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은 자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반발을 의식해서 일까, 20일 최종면접과 프레젠테이션이 또 불발됐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전 10시 최종 사장 후보 1명을 확정하기 위해 열린 대우건설 사추위 위원 간 의견이 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대우건설은 조만간 사추위를 다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산업은행 측은 “여러 의견이 많아 숙려기간을 조금 두려한다”고 이유를 밝혔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날 사추위 파행의 이유는 낙하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특정 후보에 대해 일부 사외이사가 반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우건설 사추위는 권순직 전 동아일보 주필, 박간 해관재단 이사, 지홍기 전 영남대 교수 등 대우건설 사외이사 3명과 대우건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 측 인사인 전영삼 부행장, 오진교 산업은행 사모펀드 실장 등 총 5명으로 구성돼 있다. 20일 열린 사추위에는 이들 중 4명이 현장 참석했고, 지홍기 교수는 중국 출장으로 스피커폰을 통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측 인사들은 금융당국 지침을 받아 ‘박창민 카드’를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우건설 사외이사 3명은 박 전 사장을 후보로 선정하는 것에 대해 “거수기 노릇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며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사외이사가 오랜만에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은행에서 밀고 있는 박 전 사장은 국내 아파트 시장 전문가다. 현대산업개발에서 재개발재건축 담당 상무, 영업본부장, 사장을 거쳐 2012년 한국주택협회 회장도 지냈다. 그러나 해외사업 경험과 능력은 타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떨어진다.

대우건설은 국내 시공 능력 평가 3위에, 해외 매출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대한민국 대표 건설사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식견만으로는 대우건설 사장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사장 선임 일정에 파행을 거듭하면서 국민들의 시선이 대우건설에 쏠리고 있다”며 “산업은행은 법과 규정, 절차에 따라 원칙대로 사장 선임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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