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격…고금리 확정상품 부담에 투자수익률도 떨어져

[파이낸셜투데이=김승민 기자] 국내 생명보험사들 대부분의 보험금 지급 여력이 지난해보다 꽤 떨어진 상황이 새삼 도마 위에 올랐다.

보험사의 부채와 보험금 지급 여력을 더 까다롭게 따지는 새 회계기준이 올 하반기와 2020년에 걸쳐 도입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생보업계에서는 부채 부담이 기존보다 훨씬 커지는 것은 물론 파산위기를 겪는 곳도 나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19일 금융감독원 금용통계정보시스템에 공시된 생명보험사의 자본적정성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3월 31일) 기준 생명보험계의 지급여력비율(RBC)은 284.7%로 전년동기(320.1%) 대비 35.4%포인트 하락했다.

국내 생보사계 RBC로 보면 286.7%로 지난해 같은기간(323.6%) 대비 36.9%포인트 떨어졌으며, 외국계 생보사계 RBC는 269.3%로 23.0%포인트(292.3%) 내려갔다.

RBC는 보험계약자가 일시에 보험금을 요청했을 때 보험사가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수치화한 것이다.

보험사의 요구자본에서 가용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자본건정성을 측정하는 대표적 지표며 금융감독원은 150% 이상 유지를 권고한다. 100% 이하 시 자본금 증액 요구 등 적기시정조치를 받게 된다.

◆지난해 기준 ‘우수수’ 떨어져

보험사별로 따져봐도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RBC가 늘어난 곳은 손에 꼽으며, 대부분이 두 자릿수 이상 줄었다.

국내 보험사 중 RBC가 증가한 곳은 57.3%포인트 상승세를 보인 IBK연금보험(197.4→254.7%)을 포함해 ▲39.2%포인트의 현대라이프생명(134.5→173.7%) ▲34.9%포인트의 DGB생명보험(168.2→203.1%) ▲7.6%포인트의 하나생명보험(212.4→220.0%) 등 네 곳뿐이다.

IBK연금보험 관계자는 “2014년 금융당국이 RBC 규제강화를 발효한 후 IBK연금보험은 선제적 대응을 했다”며 “지난해 7월 자본증자를 통해 리스크유형별 대응책을 마련했으며 그 결과 RBC도 증가하게 됐다”고 전했다.

반면 교보라이프플래닛을 필두로 총 11개 업체는 줄줄이 하락한 RBC를 보였다. 삼성생명이나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빅3 생보사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은 다른 국내외 보험사들과 비교해 올해 1분기 RBC가 3945.8%로 수치 자체가 독보적으로 매우 높았다. 지난해 동기(7565.2%)와 비교해 줄어든 폭도 3619.4%포인트를 기록해 비교불가일 정도로 매우 컸다.

이밖에 RBC 감소세를 보인 보험사들은 ▲KDB생명 76.0%포인트(232.1→156.1%) ▲농협생명 51.3%포인트(258.0→206.7%) ▲미래에셋생명 47.7%포인트(316.6→268.9%) ▲삼성생명 43.2%포인트(393.2→350.0%) ▲ING생명 39.4%포인트(356.5→317.1%) ▲한화생명 33.8%포인트(322.2→288.5%) ▲흥국생명 31.8%포인트(221.3→189.5%) ▲신한생명 29.2%포인트(235.6→206.4%) ▲동부생명 21.0%포인트(211.2→190.2%) ▲교보생명 16.0%포인트(278.8→262.8%) ▲KB생명 15.6%포인트(356.5→317.1%) 등 순이다.

외국계 보험사 중에는 단 두 곳만 RBC가 증가했다. PCA생명보험은 올해 1분기 들어 399.6%를 기록해 전년(393.9%)보다 5.7%포인트 상승했다. 알리안츠생명은 198.0%를 나타내며 0.2%포인트(197.8%)의 미약한 성장폭을 이뤘다.

나머지 7개 업체는 모두 전년보다 떨어졌다.

회사별로 보면 푸르덴셜생명이 65.9%포인트(347.7→281.8%)의 낙폭을 보이며 국내 전체 생보사 중 두 번째, 외국계 중에서는 첫 번째로 큰 하락세를 기록했다.

그 외는 ▲에이스생명 40.0%포인트(326.9→286.9%) ▲메트라이프생명 28.2%포인트(269.5→241.3%) ▲AIA생명 20.4%포인트(293.8→273.4%) ▲동양생명 12.2%포인트(257.4→245.2%) ▲BNP파리바카디프생명 10.8%포인트(329.1→318.3%) ▲라이나생명 6.4%포인트(358.8→352.4%) 등 순으로 떨어졌다.

◆생보사 부채 높이는 새 회계기준

최근 생명보험사의 RBC가 주목받는 이유는 2020년 보험사 전체에 새롭게 적용될 국제회계기준인 IFRS4 2단계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보험사들의 부채 부담이 크게 확대된다. 장래 이익에 해당하는 계약서비스마진이 보험부채로 평가되고, RBC 산출 때도 가용자본에서 제외된다.

또한 보험부채를 계약시점의 ‘원가’가 아닌 매년 결산시점의 ‘시가(공정가치)’로 평가해, 보험사가 매해 보험가입자들에게 보험금 지급의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지 좀 더 명확히 보여주게 한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변화에 대비해 올해 말부터 3년간 단계적으로 보험부채를 원가 대신 시가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부채적정성평가 제도를 강화할 계획을 잡고 있다.

이같은 새로운 회계기준은 특히 생보업계에 더 큰 부담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 회계기준을 생보업계의 2014년 말 기준 가용자본에 적용하면 가용자본 규모가 67조원에서 23조원으로 급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6월 초 발행한 ‘가용자본 산출 방식에 따른 국내 보험회사 지급여력 비교’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전달하면서, 생보사들이 1990년대 대량 판매한 연 5% 이상 고금리 확정형 상품이 부채를 키우는 주요인이라고 지목했다.

현재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과거 판매했던 고금리 확정형 상품에 대해 받은 보험료보다 돌려주는 보험금이 많아져 생보사 부채가 늘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저금리에 따라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운영해 얻는 투자운용수익률도 줄어들면서 생보사는 악재가 겹치는 형국이 됐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세계 경제가 불확실과 불안정에 민감한 상황에서 저금리 흐름이 심화될 것이라는 시각도 생보업계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보험업계에서는 회계기준이 바뀌면서 RBC가 100~150% 적정 기준치에 이르지 못하는 생보사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급기야 과거 일본처럼 파산업체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흘러나온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1990년 후반~2000년대 초반 동안 금리 하락 여파로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 부담과 보험계약 해약 급증을 겪었으며, 그 결과 생보사 7곳이 파산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IBK연금보험 관계자는 “새 회계기준이나 저금리 기조에 대해 현재 구체적 방안이나 방향까지는 나오지 않았다”며 “하지만 관련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논의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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