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관광 중개사업 철수 굴욕, 전기자전거는 규제 발목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한라그룹이 신사업 부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야심차게 뛰어들었던 의료관광 중개사업에서 철수했고, 전기자전거 사업 실적은 기대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반백년을 자랑하는 한라그룹이 앞으로 50년을 걱정해야한다는 얘기다.

한라그룹은 고(故) 정인영 명예회장이 1962년 10월 세운 현대양행에서 시작됐다. 1920년 강원 통천군 송전면 아산마을에서 6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정 명예회장은 일본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1947년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했다.

1950년 형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름을 받고 현대건설에 입사, 15년간 현대건설 대표이사를 맡으며 회사를 대한민국 굴지의 건설사로 키워냈다. 그러나 1976년 중동 진출을 놓고 형과 마찰을 겪었고 현대양행으로 홀로서기에 나섰다. 그해 창원공장(현 두산중공업) 건설을 시작했으나 1980년 중화학공업의 난립을 재편하겠다는 신군부에 의해 현대양행 창원공장과 군포공장을 뺐기고 말았다.

◆숱한 부침 겪으면서도…

이후 정 명예회장은 남아 있던 현대양행 안양공장을 만도기계로 바꾸고 재기에 성공, 10년 만에 재계 30대 안에 드는 그룹을 키워냈다.

정 명예회장은 1989년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당시 재계는 정 명예회장의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봤지만 “병을 이기는 것도 사업”이라며 휠체어에 앉아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정 명예회장에게 ‘휠체어 부도웅’ ‘재계의 부도웅’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만도기계의 급성장을 바탕으로 한라그룹은 1997년 재계 12위에 올라섰다. 그해 정 명예회장은 먼저 경영 수업을 받고 있던 장남 몽국 씨가 아닌 차남 몽원 씨에게 한라그룹의 지휘봉을 넘겼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취임 1년도 안 된 1997년 12월 6일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한라중공업 등에 대한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자금위기가 겹치면서 끝내 부도처리됐다. 정 회장은 모태기업인 만도기계 매각을 시작으로 한라공조, 한라개발, 한라시멘트 등의 계열사에 대한 매각과 구조조정에 나섰다.

2006년 정 명예회장 작고 후 정 회장은 뿔뿔이 흩어진 계열사들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정 명예회장이 타계 전 남긴 유언은 “만도는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 회장은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2008년 만도를 되찾아 왔다. 정 회장이 2008년 1월 홍콩에서 만도 인수 서류에 서명한 후 귀국하자마자 부친 선영을 찾아 ‘눈물의 인수 보고’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또 정 회장은 지난 2015년 경주 현대호텔에서 한라그룹 신입사원 131명과 가진 ‘회장님과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꼽아달라는 신입사원들의 질문에 “2000년대 초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2008년 만도를 다시 찾아왔을 때”라고 답한 바 있다.

실적 기대에 못 미쳐…빛 바랜 중기 계획
3000대 팔겠다너니, 고작 1500대 판매

한라그룹이 50주년을 맞은 지난 2012년, 정 회장은 만도 글로벌 R&D 센터에서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고 기념사를 통해 “지금까지의 50년을 ‘창업과 개척, 그리고 격동의 역사’로 규정하고, 앞으로 다가올 50년, 100년의 시간을 ‘번영과 공존의 시대’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앞서 신년사에서도 ‘지속가능한 기업’과 ‘지속가능 경쟁력 배양’을 화두로 제시하고, 5월에는 핵심계열사인 만도 임직원 앞으로 문제점을 꼬집는 내용의 ‘만도의 미래 생존을 위한 신출사표’ 담화문을 발송하는 등 제 2도약을 위한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해 왔다. 또 2015년 매출 17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중기 계획을 내놓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개발과 신사업 발굴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라그룹의 신사업은 전기자전거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만도는 2010년 체인이 없는 전기자전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정 회장은 만도의 전기자전거 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했다. 정 회장은 전기자전거 ‘만도풋루스’로 이동수단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오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만도풋루스는 페달링한 힘으로 배터리를 충전해 운행 거리를 늘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체인이 없다는 점도 다른 전기자전거와의 차이점이다.

◆전기자전거는 달리고 싶다

만도는 2012년 1세대 만도풋루스(폴딩형) 출시를 시작으로 지난해 2세대 만도풋루스 아이엠(일체형)을, 올해 1세대 만도풋루스(홀딩형) 업그레이드 버전을 출시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3세대 만도풋루스가 출시 예정이다.

만도풋루스의 초기 판매 목표치는 3000대. 그러나 지난해 1세대와 2세대 전체 판매량은 1500여대에 그쳤다. 높은 판매가격 때문이다. 만도풋루스 모델 대부분은 대당 300만~400만원대의 높은 가격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주행거리를 60km로 늘리고 가격을 286만원으로 낮춘 2세대 모델이 나왔지만 여전히 고가다. 여기에 정부의 규제도 발목을 잡는다.

국내법상 전기자전거는 원동기로 분류돼 일반 자전거와 속도는 비슷하지만 자전거도로에서 달릴 수 없다는 규제에 묶여 있다. 또, 반드시 원동기 면허가 있는 사람만 운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국내 전기자전거 판매량은 1만7000대 정도로 전 세계 전기자전거 판매량인 4000만대의 0.04%에 불과하다.

중국 저가 전지자전거의 공세도 골칫거리다. 최근 중국 전자제품 업체 샤오미는 접이식 전기자전거 ‘미 치사이클’ 출시를 발표했다. 가격은 2999위안(약 53만원)으로 책정됐다. 평균 200만원에 가까운 국내 전기 자전거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샤오미는 지난해 12월에도 30만원대 전기자전거 ‘운마 C1’을 출시한 바 있다. 세계적 전기자전거 업체인 중국 테일지 역시 국내 유통업체인 이마트와 손을 잡고 국내에 보급형 전기자전거를 80만원대에 판매 중이다.

한라메디슨 출범 5년만에 해산 결정
한 때 재계 12위 “아 옛날이여”

내년부터 전기자전거도 자전거로 분류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부의 규제완화안은 같은 속도라도 발을 쓰지 않고 동력으로만 가는 쓰로틀 방식과 스로틀과 파스를 겸용하는 듀얼 방식은 배제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만도풋루스의 전 라인업은 듀얼 방식이다. 내년에도 현행법 상 규제를 고스란히 적용받게 된다는 얘기다.

한라그룹이 2009년 6월 범현대 계열사와 공동 투자를 통해 야심차게 뛰어들었던 의료관광 중개사업도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 한라그룹은 계열사인 한라아이앤씨와 현대해상화재보험 계열사인 현대씨엔알이 각각 지분율 85%, 15%로 20억원을 투자해 의료관광 중개업체인 현대메디스를 출범시켰다.

한 달 앞선 2009년 5월 정부는 의료관광을 신성장동력산업 중 하나로 낙점하고 외국인환자 유치 확대를 위해 의료기관 국가인증제 도입과 해외환자 유치채널 구축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 등을 추진키로 했다. 이 같은 규제 완화로 2009년 한해 동안 올린 외국인 진료 수입은 547억원, 외국인 환자는 6만명을 넘어섰다.

현대메디스는 설립 초기 해외 11개국에 20개 의료관광 에이전시를 확보하고, 국내에도 에이전시와 의료시관을 합쳐 총 58개 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특히 범 현대가의 해외 네트워크와 서울아산병원, 현대해상화재보험, 현대드림투어 등 의료·보험·여행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강점을 내세우기도 했다.

◆5년 만에 사업 철수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의료관광사업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기존 투자자들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현대메디스는 2012년 18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데 이어 2013년 5500만원, 2014년 1억2400만원 등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 말 대표이사를 신중일 한라 전무에서 홍석화 한라I&C 대표로 교체하는 등 반전을 도모했지만 실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현대메디슨은 지난해 7월 사업부진으로 인한 재기불능을 사유로 해산을 결정했다.

한라그룹은 2015년 매출 17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과는 달리 지난해 6조를 겨우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아이스하키 바라기’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 연임에 도전한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오는 27일 치러지는 제23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에 도전하기 위해 최근 협회장직을 사임했다. 협회 규정상 현 협회장이 다음 선거에 후보자로 등록하는 경우 회장 직무가 정지된다. 현재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김영진 부회장 직무대행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 회장은 2013년 1월25일 제22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으로 선출, 4년간의 임기를 보내왔다.

정 회장의 아이스하키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1994년 한라아이스하키단을 창단한 뒤 부도를 맞는 등 숱한 경영 위기를 겪으면서도 현재까지 아이스하키단을 지켜냈다. 협회장 취임 전 하키단 구단주 시절에는 안양 홈 경기가 열리면 아예 약속을 잡지 않고 경기장을 지켰으며, 해외 원정 경기도 거의 놓치지 않고 ‘직관’했다.

협회장 취임 직후에는 사재를 20억원 출연하며 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도왔다.

사임 직전인 지난달 23일 에는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훈련 중인 진천선수촌을 방문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한 준비에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으며, 같은달 안양시에 아이스하키 ‘사랑의 골’ 펀드 356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라그룹은 안양한라아이스하키단 선수들이 하키대회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10만원씩 적립하는 ‘사랑의 골’ 펀드를 조성, 저속득층 아동을 지원하고 있다. 기금은 안양시,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협력, 저소득층 아동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디딤씨앗통장 자금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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