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불필요’ vs 국회 ‘필요’…‘정면대치’

[파이낸셜투데이=이은성 기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잠재울 뚜렷한 실마리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은 ‘국회 비준’을 두고 정면충돌하며 싸움을 키우고 있다.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한 사안인지 아닌지를 두고 정부 측이 하나같이 ‘불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국회에서 갑작스레 ‘필요하다’는 해석이 튀어나오면서 불난집에 부채질을 한 모양새가 됐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국내 배치를 두고 국회 입법조사처가 사실상 국회 비준동의 사안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놔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해 정부‧여당은 ‘국회 비준동의 불필요’, 야당은 ‘비준동의 필요’를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어 입법조사처 해석이 향후 사드 배치 관련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입법조사처에 ‘사드 배치의 국회 비준동의 대상 여부’를 질의했고, 그 결과 사드 배치가 사실상 국회 비준동의 사안이라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 출처=뉴시스

입법조사처는 “사드 배치 합의를 기존에 국회 비준동의를 받은 두 조약(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지위협정)을 시행하기 위한 이행약정으로 체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두 조약이 규정된 대상에 새로운 무기체계(사드 등)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의문”이라는 의견을 냈다.

아울러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국가주권을 덜 침해하는 방향’으로 조약을 해석‧적용해야 한다는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의 법리와 정면으로 충돌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사드의 국내 배치가 한미가 앞서 체결한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지위협정’만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입법조사처는 두 조약의 범위와 국제법 등을 근거로 사드 배치의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무게를 실어줬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상호 합의에 의해 미국 영토(주한미군 영토) 내 배치할 것이 예정된 대상은 ‘미국의 육군‧해군‧공군’으로 군에 배치되는 새로운 무기와 장비다. 하지만 여기에 사드에서 예정하고 있는 ‘미사일기지’와 ‘미사일 방어체계(MD)’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입법조사처의 해석이다.

입법조사처는 “주한미군지위협정은 주한미군의 한국 내 부지와 시설 이용에 대한 군수 지원 관련 규정일 뿐 사드에서 예정하는 미사일 기지의 국내 반입, 한국 내 MD 도입 여부는 별도의 합의가 필요한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제법상 조약의 정의 안에는 주권의 제약을 가져오는 사항과 정해진 예산 외 재정적 부담을 발생시키는 사항에 관한 국가 간의 합의는 조약의 형태로 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사드 배치는 기존 한미 정부가 체결한 조약이 아닌 별도의 합의가 필요한데, 이런 합의를 담은 조약은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유권해석과 함께 입법조사처는 유사 해외 사례로 네덜란드 내 미국 핵무기 배치 관련 사례를 소개했다. 네덜란드는 기존에 미국과 체결한 모(母)조약이 있었지만 자국 영토 내 미국의 핵무기 배치와 관련한 조약의 체결에 대해서는 의회 승인을 받았다.

▲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지난 14일 춘추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 강경입장 고수

반면 정부는 사드 배치가 국회 비준 사항이 될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모두 한 목소리로 입법조사처의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국회 입법조사처가 사드배치는 국회 비준동의 사안이 될 수도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국회 동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 대변인은 사드배치 결정이 “(국회가 비준동의권을 가지는) 헌법 제 60조 1항 상의 일부 조약과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외국 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 이런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법제처 역시 사드 배치와 관련해 “별도의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혀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제정부 법제처장은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드의 국내 배치가 국회 비준동의 사안이냐는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또 법제처가 사드의 국내 배치 건이 국회 비준동의 사안인지를 검토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공식적으로 저희에게 넘어온 것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실무적 차원에서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군 역시 이같은 정부의 입장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방부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입법조사처의 해석을 정면 반박했다.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은 지난주 국민의당이 주최한 ‘국민의 동의 없는 사드 배치 올바른 결정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주한미군의 무기체계 배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이뤄져 왔으며, 국회 동의를 받을 사안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류 정책실장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우리 정부는 미국에게 우리 영토 안에 전력을 배치할 권리를 부여했다”며 “이에 따라 주한미군 사드 배치도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미는 ‘주한미군 전력운용 통보·협의절차’에 따라 협의를 진행해왔다”고 덧붙였다.

국방부에 따르면 1953년 10월 1일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 4조(배치권리·허여)는 “상호합의에 의해 결정된 바에 따라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린 청와대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 결정과 관련해 후속대책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 대통령, “논쟁 그만”

이같은 분열 분위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강한 어조로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박 대통령은 “지금은 사드 배치가 관련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안보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이해당사자 간에 충돌과 반목으로 정쟁이 나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정치권의 반발 등 국론 분열이 우려되자 국민적 단합을 호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지역 선정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는 야권의 지적과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위중한 국가 안위 문제’로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 과정이 워낙 위중한 국가 안위와 국민 안전이 달린 문제라서 공개적으로 논의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어 “다양한 선정 지역을 가지고 논의를 광범위하게 하지 못한 것은 위중한 사안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며 “앞으로 사드 배치 지역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야 지도부를 포함해 의원들의 관심과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면서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을 위한 협력을 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비준, 과거 사례 어땠나

이번 사드 배치의 국회 비준 여부를 두고 가장 많이 비교되는 사례는 2004년 용산미군기지이전(YRP)협정이다.

당시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용산 미군 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 이전협정과 이행합의서를 통과시킨 뒤 바로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았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에 대해 “당시엔 대규모 부지를 주는 사업이라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야권은 한미행정협정의 일부분인 ‘시설과 구역의 공여’에 해당하는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았다면 사드도 비준 동의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2년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 역시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았다. 연합토지관리계획은 주한미군에게 한국이 4100여만평 토지를 돌려받는 대신, 신규 토지 154만평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또 한국이 대체시설 건설과 추가 공여, 토지 매입 등 소요 비용의 45%인 1조4900억원을 부담해야 하는 사업이었다.

반면 중대한 국방 현안임에도 국회 비준 동의를 얻지 않은 전례도 있다.

2010년 정부는 한미 전시작전권 전환 일정을 2015년으로 조정하는 ‘전략동맹 2015’를 체결했는데, 당시 법제처가 체결에 국회 동의권이 필요 없다고 판단해 반발에 부딪혔다.

당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등이 이듬해 “국회의원 심의·표결권 침해”라고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으나, 헌재는 “개별 구성원인 국회의원은 국회를 대신해 동의권 침해를 주장하는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고 각하했다.

헌법 60조는 국회가 상호 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체결·비준 동의권을 갖는다고 명시한다.

전례에 따르면 정부의 안보 정책의 영향력과 재정 부담은 물론, 해당 결정이 조약·협정에 해당하는지가 국회 비준 동의 여부를 판가름했다. 여야는 사드 배치 결정이 정식 조약·협정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조약·협정을 처리할 때 법제처가 국회 비준 동의 필요성을 유권해석을 해온 관행 상, 이미 법제처가 사드 배치는 조약이 아니라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해석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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