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에 ‘고립무원’ 시간이 ‘독’이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롯데 총수일가 전원이 차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음에 따라 재계 5위 롯데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마무리 수순에 돌입한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롯데그룹은 총수 부재에 따른 장기 경영공백 사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롯데그룹은 지난 1년여간 경영권 분쟁에 이어 검찰 수사를 겪으며 투자와 경영활동에 잇따른 차질을 빚어 왔다. 여기에 총수 부재까지 이어질 경우, 아예 경영 전반이 올스톱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지난 20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들여 2000억원대 횡령·배임혐의 등에 대해 조사했다.

신 회장은 18시간이 넘는 고강도 검찰 조사를 받고 21일 오전 4시경 검찰청사를 나와 준비된 차를 타고 서울중앙지검을 빠져나갔다. 이날 검찰 조사에서 신 회장은 롯데건설 비자금 조성 등 관련 의혹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를 마치고 나온 신 회장은 ‘혐의와 관련해 억울한 점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성실히 답변했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심경이나 억울한 부분에 대한 소명 여부 등 추가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검찰은 신 회장을 상대로 롯데호텔의 제주·부여 리조트 헐값 인수 의혹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정에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을 조사했다. 계열사 간 지분 거래를 통한 그룹의 비자금 조성을 직접 지시하거나 공모했는 지 등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

이밖에 신 회장은 롯데케미칼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법인세 등 270억원을 부정환급 받았다는 부분에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으며 별다른 활동없이 롯데 일본 계열사들에 등기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100억원대의 급여를 부당하게 받아 챙겼다는 의혹도 있다. 검찰은 신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분이 서미경씨 등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6000억원대 탈세 혐의에도 관여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총수 일가 나란히 재판장 서나?

신 회장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되면 롯데그룹 총수 일가 모두가 재판을 받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롯데면세점과 백화점 입점 대가로 35억원을 받고, 장남이 소유한 명품 유통업체의 회사 자금 40억원가량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7월 26일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지난 1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았으며 신 총괄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총 세 차례의 방문 조사를 받았다. 신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인 서미경씨는 국내 재산이 압류 조치되는 등 검찰의 강도 높은 압박을 받고 있지만 일본에 머물며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 관련 의혹 대부분 부인
‘오너리스트’ 직격, 시총 2조원 증발

서씨는 자신의 딸과 신영자 이사장과 함께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를 증여받는 과정에서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롯데홀딩스 지분 1%의 평가가치가 최소 1000억원 정도로 추산돼 신 총괄회장 일가의 탈세액은 최소 62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법무부 등을 통해 서씨에 대한 강제 송환 절차에 들어간 상태지만 통상 2~3달이 걸리는 만큼 조사 없이 일단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결국 향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롯데그룹 총수 일가 삼부자와 장녀, 부인까지 총 5명이 법정에 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내 재벌 역사상 5명의 오너 일가가 비슷한 시점에 재판장에 서게 되는 것은 최초다.

지난 6월 10일 롯데그룹 본사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이번 검찰 수사로 롯데그룹의 주요사업은 적지 않은 차질을 빚고 있다.

롯데그룹이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받게 되면서 입은 첫 타격은 6월 13일 호텔롯데 상장철회다. 이날 호텔롯데는 금융위원회에 상장 철회 신고서를 제출,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뜻을 전했다.

◆물 건너간 IPO

신 회장은 이틀 뒤 “(호텔롯데) 상장 부분에 대해서는 무기한 연기가 아니고 연말 정도까지는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호텔롯데는 지난 1월 28일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심사 유효기간은 6개월 이내, 7월 28일까지 상장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롯데면세점 입점 관련 로비사건까지 더해지면서 그룹 전반으로 검찰수사가 확대됐고 이에 상장을 접은 것이다. 이

호텔롯데 상장 철회는 롯데면세점이 글로벌 1위로 등극하기 위한 미국 면세점 인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비전 2020’을 발표, 5년 내 세계 1위 사업자로의 도약을 선포한 바 있다. 롯데면세점의 한 해 매출은 38억8465만달러로, 1위 듀프리(스위스·54억6692만달러)와 2위 DFS그룹(미국·42억2700만달러)에 이어 세계 3위다.

롯데면세점이 인수를 추진하던 면세점은 미국 최대 규모이자 글로벌 12위의 ‘듀티프리아메리카(DFA)’로 한 해 매출은 12억6697만달러다. 롯데면세점이 DFA 인수에 성공하면 매출이 52억5162만달러로 뛰어올라 단번에 세계 2위 면세점에 등극한다. 또한 1위 듀프리면세점과의 매출 차이는 불과 2억1530만달러로 줄일 수 있었다.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확보한 4조6400억~5조7000억원의 자금 중 1조7000억원 가량을 롯데면세점의 해외 면세점 인수와 명품 브랜드 인수에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비전은 호텔롯데 상장 무산으로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6112억원의 매출을 올려 서울 시내 면세점 중 3위를 차지했던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6월 30일 문을 닫았다. 지난해 7월 시작된 롯데그룹 형제의 난 등의 여파로 그해 11월 면세 사업자 심사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 면세점은 1989년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문을 열어 2014년 지금의 월드타워점으로 옮기는 등 27년간 영업해왔다.

물론 월드타워점은 올해 4월 관세청이 중소·중견 면세점 1곳을 포함한 4곳의 서울 시내 면세점을 12월에 추가 선정하기로 하면서 회생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과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까지 겹치면서 재승인은 물거품이 될 분위기다.

한국과 일본 롯데의 공동 출자로 관심을 모은 태국 방콕 롯데면세점은 애초 6월 오픈할 계획이었지만 매장 공사 지연과 공항 인도장 확보 문제 등으로 하반기로 개장이 미뤄졌다.

지난 6월 프라임타임 6개월 방송 중단 처분을 받은 롯데홈쇼핑의 향후 행보도 안개속이다. 당초 9월28일부터 예정됐던 프라임시간대 영업정지는 법원이 지난 7월 롯데홈쇼핑이 미래창조과학부를 상대로 낸 업무정지 처분에 대한 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사상 최악의 위기를 피했으나, 이번 판결의 여파가 오는 2018년으로 예정된 재승인 심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어 안심하긴 이른 상황이다 2018년 상반기로 예정된 롯데홈쇼핑 재승인 여부 결정권자가 미래부이기 때문이다.

◆엑시올 인수 포기

롯데케미칼도 암초를 만났다. 호텔롯데 상장 철회 소식과 동시에 롯데케미칼의 미국 화학기업 엑시올 인수 포기 소식이 전해진 것.

롯데케미칼은 6월 7일 엑시올 인수를 위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엑시올은 염화수소와 염화비닐 및 방향족 제품과 창호, 몰딩, 파이프, 파이프피팅 등의 다양한 건축용 내·외장재의 생산·판매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은 4조원 수준이다.

롯데케미칼은 6일 뒤인 6월 13일 미국 엑시올 인수를 위한 제안서를 제출했으나, 성사되지 않아 인수 계획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롯데케미칼은 인수 철회 이유에 대해 대외적으로는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날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은 “인수 경쟁이 과열된 점과 롯데가 직면한 어려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쉬움이 크지만 현재의 엄중한 상황을 감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 회장도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검찰 수사 이후 출국 금지로 지난 7월과 8월에 진행된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못했고, 이달 2~4일 일정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동방경제포럼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호텔롯데 상장 연기…미국 면세점 인수 직격탄
삼부자, 장녀, 부인까지…'줄줄이 사탕?'

이러는 동안 롯데그룹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시총)은 2조원가량 증발했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월 9일부터 이달 21일까지 롯데그룹 8개 상장게열사(롯데손해보험, 롯데푸드,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롯데하이마트, 롯데정밀화학)의 전체 시총은 25조4024억원에서 23조5278억원으로 1조9746억원 줄어들었다.

향후 신 회장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롯데의 경영 공백 사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재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신 회장 구속을 포기하더라도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구속 수사하는 방식으로 롯데그룹을 압박해 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의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롯데그룹이 경영 공백을 맞을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며 “검찰이 사상 최대 인력을 투입해 시작한 수사인 만큼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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