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에서 시작해… MB정권 특혜의혹까지 제기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롯데그룹이 사실상 경영 마비상태에 빠졌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검찰의 칼날이 ‘신동빈호’를 꽁꽁 묶어 놓고 있다. 호텔롯데 상장은 사실상 무산됐고, 롯데케미칼은 미국 석유화학 회사 인수합병 계획을 철회했다. 해외 면세점과 호텔 인수는 포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롯데 잠실면세점은 재개장이 불투명해졌다. 재계는 몸을 움츠렸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다.

◇시작은 ‘형제의 난’

롯데 사태는 지난해 7월 ‘형제의 난’이 기폭제가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 측에 한·일 관계사들의 지분 구조 현황을 제출토록 요구했고, 이를 통해 한국 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 99%를 일본 측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지난해 12월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측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업무방해와 재물은닉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제출한 자료들이 이번 수사의 결정타가 됐다.

롯데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와 첨단범죄수사1부는 지난 10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롯데그룹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롯데호텔을 비롯해 롯대쇼핑과 롯데홈쇼핑, 롯데건설, 롯데케미칼, 롯데칠성음료, 코리아세븐, 대흥기획 등 주요 계열사를 거의 망라하는 대규모 압수수색이었다. 여기에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집무실, 비서실 비밀공간, 개인금고, 그룹 핵심부서인 정책본부, 신격호 총괄회장 부자 측근들의 자택까지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이같은 검찰의 단기간에 걸친 대규모 압수수색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3월 포스코에 대한 수사에서 포스코건설을 압수수색하기까지 3개월여가 소요됐고, 2013년 CJ그룹 수사 때도 본사 압수수색 후 서울지방국세청과 신한은행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쳐 8일이 지나서야 이재현 회장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또한 검찰은 이번 롯데그룹 압수수색에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비밀금고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단 번에 금고를 찾아냈다.

업계는 믿을 만한 제보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검찰도 “장시간에 걸친 준비를 통해 관련한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하면 그룹의 전반적인 구조와 사주 일가의 재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그룹 내부 관계자의 제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형제의 난’을 통해 동생 신동빈 회장과 대립각을 세운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제보자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MB정권 정조준

검찰은 역대 정권과 롯데그룹 간의 긴밀했던 관계를 주목하고 있다. 특히 롯데는 MB정권 당시 많은 특혜를 받으며 급성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산롯데타운은 시작부터 특혜의혹에 휩싸였고 맥주사업 진출도 MB정권 지지를 받아 별 무리 없이 진행됐다.

면세점은 시장 점유율 50%를 넘어 독과점 논란을 빚었음에도 불구,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았고 경남 김해유통단지, 대전시 롯데복합테마파크, 경기 유니버설스튜디오 등이 특혜설에 휘말리면서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최측근 소환 임박, 오너 일가로 향한 칼끝
MB정부 ‘친구게이트’ 불안한 제2롯데월드

롯데호텔은 ‘제2의 청와대’로 불리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을 전후로 해 ‘베이스캠프’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2007년 말 46개사에 불과했던 롯데그룹 계열사 수는 2011년 말 79개사로 크게 늘었다. 2008년 초 43조6790원이던 보유 자산 총액은 2012년 초 83조3050억원으로 늘었다. 5년새 2배가 불어난 셈이다.

MB정부 권력이 절정이던 2009년부터 2010년 사이 성장폭은 더 크다. 2009년 계열사 54개, 자산총액 48조9000억원이었던 롯데그룹은 1년 뒤인 2010년 계열사 60개, 자산총액 67조2000억원으로 몸집을 불렸다. 재계 순위는 6~7위권에서 단숨에 5위권으로 뛰어 올랐다.

최대 현안은 역시 제2롯데월드다.

10여년 간 지지부진했던 제2롯데월드 건설은 이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2롯데월드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라”고 밝히면서 초고속 신축허가가 났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공군의 반대도 활주로 각도를 3도 정도 틀면 안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밀어붙였다. 성남 공군기지의 비행 안전성 문제로 제2롯데월드 건립을 극렬히 반대하던 김은기 당시 공군참모총장이 경질되기도 했다.

특혜 시비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인물은 장경작 전 호텔롯데 사장이다. 장 전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로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때인 2005년 2월1일 언론인터뷰를 통해 제2롯데월드에 대한 첫 찬성 발언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2월 4일 장 전 사장은 호텔롯데 대표에 취임했다. 장 전 사장은 이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 2월에는 호텔롯데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 롯데는 정부로부터 제2롯데월드 건축허가를 받았다. 장 전 사장은 2010년 3월 회사를 나왔다. 당시 정치권은 ‘친구 게이트’라며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이병박 대통령 그만두고 몇 년 후 반드시 이 문제(제2롯데월드 인허가) 롯데 게이트로 발전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청와대는 관련 의혹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검찰이 롯데그룹 전반에 대해 수사에 나서면서 그간 묻혀 있는 제2롯데월드 인허가 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장 전 사장은 현재 이 전 대통령이 퇴임 뒤 만든 청계재단의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서 돈 벌어서 일본으로?

검찰은 롯데의 ‘국부 유출’ 논란도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13일 “롯데의 해외 거래 문제도 필요하면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

재벌닷컴이 최근 국내 롯데 계열사의 주주 현금배당 내역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롯데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일본롯데홀딩스 등 일본 법인들이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받은 배당 총액은 1832억36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들 법인은 2011년(378억7500만원)부터 지난해(355억1800만원)까지 매년 350억원 이상을 꾸준히 챙겼다.

면세점·호텔·화학 인수 무산…사업 줄줄이 좌초
‘형제의 난’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 핵심 제보자는?

롯데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롯데는 지난 12일 해명자료를 통해 “1967년 설립된 이래 경영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의 99%를 국내 사업에 재투자하고 있다”며 “2014년 전체 영업이익 3조2000억원 중 일본 주주회사에 배당한 금액은 341억원으로 약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롯데가 국부유출 논란에 민감한 것은 ‘일본 기업’ 이미지 때문이다. 앞서 신동빈 회장이 호텔롯데 상장에 나섰던 것도 일본 주주의 지분율을 낮추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호텔롯데 상장은 이번 검찰 수사로 인해 사실상 무산됐고, 롯데는 국부유출 논란을 벗어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얽히고설킨 지배구조

롯데그룹이 끊임없이 ‘일본기업’ 논란에 시달리는 이유는 불투명한 지배구조 때문이다. 일본 계열사의 지주회사 롯데홀딩스의 지분 구성을 보면 ▲광윤사 28.1% ▲종업원지주회 27.8% ▲관계사 20.1% ▲임원 지주회 6% ▲투자회사 LSI(롯데스트레티지인베스트먼트) 10.7% ▲가족 7.1% ▲롯데재단 0.2% 등이다.

최대주주인 광윤사는 신격호 촐괄회장과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네 명이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다.

L1투자회사로 알려진 LSI의 지분은 롯데홀딩스가 60%를 갖고 있고 LSI는 12개의 L투자회사를 100%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 등 롯데 총수 일가는 일본 롯데홀딩스를 중심으로 ‘롯데홀딩스↔LSI(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 ‘LSI↔패밀리’ 2개 상호출자와 ‘롯데홀딩스→LSI→패밀리→롯데홀딩스’, ‘롯데홀딩스→L2→LSI→롯데홀딩스’, ‘롯데홀딩스→롯데상사→롯데그린서비스→LSI→롯데홀딩스’ 등 4개 순환출자 고리로 일본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 일본 롯데 계열사들은 다시 한국 호텔롯데와 롯데알미늄 등 한국 롯데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국 롯데 계열사들은 지난해 말 기준 67개 순환출자 고리로 서로 엮여 있는 구조다.

◇신동빈 검찰 소환될까?

검찰이 롯데그룹 임직원에 대한 줄소환에 이어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돌입하면서 신동빈 회장이 소환 여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지난 10일 1차 압수수색에 이어 즉각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자금관리 담당 임원인 이밀민·류제돈 전무 등을 소환해 조사했다. 14일 2차 압수수색이 진행된 후에는 롯데그룹 임직원을 줄줄이 불러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주말(18~19일)에도 본사 정책본부에서만 4~5명의 재무 관련 팀장급 실무자들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신동빈의 남자’들에 대한 조사도 이미 시작됐다. 지난 17일에는 총수 일가의 자금 운용에 간여한 채정병 롯데카드 사장이 사장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소환돼 다음날 새벽까지 조사를 받았다.

▲ 롯데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계열사 간 자산 거래 과정에서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해 롯데건설을 추가로 압수수색한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롯데건설 본사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품이 담긴 상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3일에는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의 자금관리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현수 롯데손해보험 부사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김 부사장은 1987년부터 2014년까지 그룹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 산하 롯데백화점 사업본부의 경리·자금·회계 쪽을 담당한 ‘재무통’이다. 2007년부터 7년간은 롯데백화점 자금 업무를 총괄하는 재무부문장을 지냈다.

남은 인물은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 황각규 운영실장(사장), 소진세 대회협력단장(사장) 등 정책본부 3인방이다. 이인원 부회장은 그룹 2인자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을 보좌하며 전문경영인으로는 처음으로 롯데 부회장에 올랐다.

황각규 사장은 1990년 신 회장이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경영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만난 측근 중의 측근이다. 인수합병(M&A)과 지배구조 개편 등을 진두지휘한 키맨이다.

소진세 사장은 롯데슈퍼·코리아세븐 대표 등을 지낸 유통 전문경영인으로 대관홍보 등으로 그룹의 입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면 곧바로 총수 일가에 대한 소환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신동빈 회장은 물론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이 검찰에 불려 나올 가능성이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기 입원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인 9일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의 안내를 받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수일 동안 미열이 지속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는 “시점 자체가 너무 절묘하다”며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또한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특별한 이유 없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입원 병원을 옮기기도 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지난 18일 오후 2시께 서울대병원을 나와 아산병원으로 이동, 다시 입원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회장으로 있는 SDJ코퍼레이션은 공식적으로 “고령으로 회복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소견과 가족의 요청으로 병원을 옮겼다”고 이유를 밝혔지만 재계와 의료계는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먼저 신격호 총괄회장은 병원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0월 신격호 총괄회장이 서울대병원에 건강검진을 갔다가 불과 약 1시간 사이 혈압과 맥박 정도만 재고 돌아왔을 때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추가 검사를 거부하고 귀가를 원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아울러 신격호 총괄회장은 “성년후견인 지정 여부 판단을 위해 4월 말 까지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정신감정을 받으라”는 법원의 지시를 어기고 버티다 지난달 중순에야 입원했다가 만 사흘 만에 무단 퇴원한 적도 있다.

더구나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말처럼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었다면 굳이 병원을 옮길 필요가 없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올해 나이는 95세, 초고령인데다가 회복 기간이 더 필요한 환자를 국내 최고 의료진을 갖춘 서울대병원에서 아산병원으로 옮긴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장기 입원은 부자연스럽다”며 “전략적으로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입원을 연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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