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정체성, 재벌의 기부

▲ 서강대학교 입구 전경. 사진=서강대학교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전국 유명 대학교에는 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건물들이 하나씩은 있다. 기업들이 기부와 이미지제고, 홍보 등 다양한 목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하거나 직접 지어주는 조건으로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대학교 입장에서도 새 건물을 증축하는 데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어 ‘윈윈’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건물들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해당학교 관계자나 일부 학생들만이 알고 있을 뿐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대학과 기업의 ‘합작’ 건축물들을 직접 찾아가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 알아봤다. 4번째 주인공은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서강대학교다.

지난달 31일 오전 기자는 경의중앙선 서강대역 1번 출구로 나와 서강대학교로 향했다. 평일 오전이라는 시간 때문인지 서강대학교 주변은 비교적 한산했다. 역에서 500m 정도를 이동하니 서강대학교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생활의 ‘꽃’ 춘계 축제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캠퍼스 곳곳에는 관련 현수막과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뒤로한 채 캠퍼스 안내판 앞으로 다가가 사전에 조사해온 리스트와 비교해 동선을 짰다.

서강대학교에는 ‘삼성 가브리엘관’과 ‘금호아시아나 바오로 경영관’, ‘마태오관’, ‘베르크만스 우정원’, 포스코 프란치스코관 등 기업의 투자를 받아 지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기업들의 상호와 카톨릭 성자들의 이름을 조합한 것이 특징이다. 이같은 이름으로 인해 처음에는 안내판을 보고도 건물을 찾기 쉽지 않았다.

정문을 기점으로 가장 가까운 삼성 가브리엘관을 첫 방문지로 선택하고 ‘대장정’을 시작했다.

안내판에서 서쪽으로 북서쪽으로 100m정도를 이동하자 ‘서강대학교’ 현판이 걸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서강대역쪽에서 바라봐도 이름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잘 보였다. 외지인이 봤을 때 대학본부 건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 가브리엘관은 건전한 언론인 육성과 영상미디어 분야 산학연계 협동 차원에서 1997년 2월에 건립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연면적 6767㎡에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로 금호아시아나 바오로 경영관과 청년광장 사이에 위치해 있다. 삼성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지어진 이 시설은 신세계건설에서 시공을 맡았다.

건물 내부에는 상업방송국 수준의 시설을 갖춘 TV·라디오 스튜디오와 멀티미디어실, 세미나실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서강대학교 미디어 매체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커뮤니케이션 학부와 언론대학원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삼성 가브리엘관은 처음부터 삼성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준공 당시 명칭은 ‘가브리엘관’으로 삼성측은 건물을 지어주는 대신 10년 동안 건물의 1층과 지하시설의 사용권만 요구했을 뿐 명칭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삼성 가브리엘관이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된 때는 2007년으로 공교롭게도 삼성이 처음 요구한 10년의 시설 이용기간이 만료된 해다.

사실 서강대학교는 건물 이름에 성자의 이름만 붙일 뿐 기업의 이름을 붙이지 않는 보수적인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삼성 가브리엘관으로 이름이 바뀐 2007년 이후부터는 서강대학교 곳곳에는 기업들의 이름을 붙인 건물들이 하나둘씩 올라갔고 예전의 보수적인 모습은 많이 옅어진 상태다.

갑작스런 태세전환…러시의 ‘시작’
기업인들의 눈물 나는 ‘흔적 남기기’

한 서강대학교 졸업생은 “과거 서강대학교는 아무리 기업의 기부를 통해 지어진 건물이라도 명칭에서는 기업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지금은 그 때와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가브리엘관을 뒤로한 채 바로 맞은편에 있는 금호아시아나 바오로 경영관으로 이동했다. 캠퍼스 규모가 작아 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도 상당히 짧았다.

◆ 성자와 함께한 수많은 재계 인사들

금호아시아나 바오로 경영관은 성경에 나오는 이방인의 사도로 유명한 성 바오로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0년 2월 준공된 건물이다. 이 시설은 연면적 8522㎡에 지하 2층, 지상 9층 규모로 마태오관과 삼성 가브리엘관 사이에 위치해 있다. 공사비용은 금호아시아나 그룹에서 기부한 금액과 서강대학교에서 출자한 기금으로 충당됐다. 건물 내부에는 다수의 강의실과 열람실, 그룹스터디실, 교수실, 기숙사 등이 들어서 있다. 현재는 경영학부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 금호아시아나 바오로 경영관 전경.

금호아시아나 바오로 경영관은 경영학도들이 지식을 쌓는 전당인 만큼 다수의 기업 오너와 재계 인물들을 배출했다. 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강의실과 내부 시설 입구마다 출신 인물들을 기리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실제 경영관 내부에는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과 이상웅 세방그룹 회장, 이종대 전 유한킴벌리 회장, 김윤종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등 다양한 재계 인물들의 이름을 딴 강의실이 즐비했다.

건립 당시 이총욱 전 서강대학교 총장은 “금호아시아나 바오로 경영관의 걸립으로 서강대는 선진화된 경영 교육을 위한 최고 수준의 기반 시설을 갖추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금호아시아나 바오로 경영관에서 취재를 마친 후 바로 옆에 있는 마태오관으로 몸을 옮겼다.방문 계획은 없었지만 경영대학원으로 사용되는 건물인 만큼 기업과 관련됐을 것이란 ‘촉’이 섰고, 그 촉은 맞아 떨어졌다.

▲ 마태오관 전경.

마태오관은 전문 경영인 양성을 목적으로 2001년 8월 준공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연면적 1만6246㎡에 지하 2층, 지상 9층 규모로 서강대학교 캠퍼스 서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공사비용은 LG그룹과 국민은행, SK그룹, 포스코, 하나은행, 조흥은행 등 다양한 기업과 은행들로부터 받은 기부금으로 충당됐다.

건물 내부에는 최신 AV시스템이 구비된 학부강의실과 대학원 세미나실, 학생 휴게실, 도서관, 화상 강의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또 국제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 대형 리셉션 홀도 갖추고 있다. 현재는 경영학부 대학원생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마태오관 내부에도 금호아시아나 바오로 경영관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기업인들의 이름이 걸린 강의실들이 있었다. 기업인들의 이름이 너무 많아 1층부터 9층까지 한 층도 빠짐없이 있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기업인들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승유 전 하나은행장과 염정순 한국토프톤 부회장, 이상웅 셋방그룹 회장, 심호명 제주물산 대표이사, 박정호 선산토건 회장 등이 있었다.

마태오관을 뒤로한 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기자는 서둘러 학생식당을 찾았다. 식당은 부영그룹이 지어준 베르크만스 우정원에 자리잡고 있었다.

베르크만스 우정원은 이중근 부영그룹회장의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철학 아래 지어진 건물로 2012년 완공됐다. 건물이름의 ‘우정’은 이 회장의 아호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건물은 연면적 1만㎡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체육관과 청년광장 사이에 위치해 있다. 총 공사비용 150억원 중 100억원을 부영그룹에서 기부했고, 나머지 50억원은 서강대학교의 기금으로 충당했다.

건물 내부에는 학생들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학생시설과 식당, 장애학생지원센터, 보건실, 우편물취급소,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서강 오픈 이노베이션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대학만 130여곳…회장님의 교육사랑
평범한 외형에 가려진 ‘철의 장막’

기업과 관련된 대학 건물들 중에서도 유독 자주 보이는 이름이 ‘우정’이다. 이는 이 회장의 철학 아래 부영그룹이 대학들을 대상으로 기부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실제 이 회장은 베르크만스 우정원을 포함해 국내 130여 곳 대학교에 기숙사와 도서관, 체육관 등의 교육 및 복지시설을 기증했다. 또 아시아 태평양 지역 14개 국가에 초등학교 600여곳과 디지털 피아노 6만여대, 교육용 칠판 60만여개를 기부한 바 있다.

▲ 베르크만 우정원.

베르크만 우정원 건립 당시 이 회장은 “우정관이 서강대가 추구하는 지식 융합형의 창조적 지성을 배양하고 대학과 기업의 산학협력을 통해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포스코 프란치스코관.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목적지인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정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던 앞선 건물들과 달리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은 캠퍼스 북쪽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정원에서 대운동장 방향으로 500m쯤 걸어가자 ‘포스코 프란치스코’라고 새겨진 푯말이 보였다. 지금까지 봤던 포스코가 지어준 대학 건물 중 가장 평범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은 인공 광합성 연구를 위해 서강대와 포스코 그룹의 산학협력으로 지어진 건물로, 2013년 1월 완공됐다. 이 건물은 연면적 6670㎡에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로 대운동장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건립 비용 중 139억원은 포스코그룹의 기부를 통해 충당됐다.

건물내부에는 인공 광합성 연구를 위한 각종 실험실들과 계측 장비실, 파일롯트실, 교수실, 회의실, 포스코 소속의 실용화 공동 연구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정준양 포스코 그룹 전 회장의 이름을 딴 ‘정준양홀’이 건물 중심부에 들어서 있다.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은 각종 연구시설이 들어서 있는 만큼 보안도 철저했다. 화장실과 입구를 제외하고는 보안 시스템에 의해 막혀 있었고,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정준양홀도 문 밖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또 산학협력 시설이라는 특성상 학생보다는 학교 직원들과 관련 교수들만 드물게 출입하고 있었다.

포스코 프란치스코관 건립에 앞서 서강대와 포스코 그룹은 2010년 8월 인공광합성 연구의 구현과 상용화 연구를 위해 서강대학교 교내 부지에 전용연구동 건립을 지원하는 산학협약을 맺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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