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통념 깬 ‘역전현상’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중고차시장에서 중형세단의 감가율이 준대형세단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큰 차일수록 가치 하락이 크다는 기존의 통념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는 최근 국내완성차업체들이 잇달아 신형 중형세단을 내놓은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르노삼성자동차의 가격 하락이 두드러졌다.

27일 중고차 전문 기업 SK엔카에 매물로 올라온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쉐보레, 르노삼성자동차의 2013년식 준중형과 중형, 준대형세단 상위트림 2개를 대상으로 감가율을 조사한 결과, 올해 6월 기준 중형세단의 평균 감가율은 41.6%로 준대형세단(37.4%)보다 4.2%포인트 높았다. 준‧중형세단(34.3%)과도 7.3%포인트 차이가 났다.

자동차시장에서 감가율이란 차량을 구입한 시점부터 떨어지는 가치를 신차가격과 중고차가격을 비교해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자동차 구입에 있어서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차종별로 보면 중형세단에서는 르노삼성자동차 SM5의 가치 하락폭이 가장 컸다. SM5의 평균 감가율은 6월 기준 49.9%로 중상급 모델인 ‘LE’트림과 고급 모델인 ‘RE’트림이 각각 50.4%, 49.5%를 기록했다. SM5의 주인들은 차를 산지 3년 만에 가격이 거의 반 토막 난 셈이다.

SM5의 뒤를 이은 건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로 평균 44.9%의 감가율을 기록했다. 트림별로는 ‘모던’과 ‘프리미엄’이 각각 45.2%, 44.7%씩 가격이 하락했다. 국내에서 가장 수요가 많아 늘 높은 가격방어율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업계 1위의 자존심을 구겼다.

쉐보레 말리부는 중형세단 평균보다 낮은 40.7%의 감가율을 보이며 비교적 선방했다. 트림별로는 ‘2.0 LT 디럭스팩’과 2.0LTZ가 각각 40.2%, 41.2%의 감가율을 기록했다.

가장 가치 하락폭이 작은 모델은 기아자동차의 K5로 평균 30.8%의 감가율을 보였다. 트림별로는 ‘프레스티지’와 ‘노블레스’가 각각 30.7%, 30.8%로 나타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준대형세단에서도 르노삼성자동차의 SM7이 가장 가치 하락폭이 컸다. SM7의 평균 감가율은 50.0%로 ‘SE35’트림과 ‘LE35’트림이 각각 52.2%, 47.8%씩 가격이 하락했다. 이는 준대형세단 평균을 10.0% 이상 상회하는 수치다.

‘큰 차’보다 감가율 높은 ‘작은 차’
‘간섭현상’에 기존 판매량 ‘반토막’

SM7 다음으로 감가율이 높은 준대형세단 자리는 기아자동차 K7이 차지했다. K7의 평균 감가율은 41.8%로 ‘프레스티지’와 ‘프레스티지 스페셜’ 트림이 각각 42.4%, 41.3%를 기록했다. 중형세단에서 가치 하락폭이 가장 작았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쉐보레 알페온은 평균 29.7%의 감가율을 기록하면서 준대형세단 평균을 크게 하회했다. 트림별로는 ‘CL300'과 ’EL300‘이 각각 31.9%, 27.5%의 감가율을 보였다.

◆우려가 현실로…수요층 적극 ‘흡수’

준대형세단 중 가치 하락폭이 가장 작았던 모델은 현대자동차 그랜저로 나타났다. 그랜저의 평균 감가율은 28.7%로 트림별로는 ‘프리미엄’이 29.6%, ‘익스클루시브’가 27.8%를 기록했다. 중형세단에서 구긴 자존심을 준대형세단에서 회복한 셈이다.

보통 중고차시장에서 큰 차는 유류비, 세금 등 높은 유지비로 인해 수요가 적어 작은 차들보다 감가율이 높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근 완성차업체들이 신형 중형세단모델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구형모델에 대한 수요가 줄어 들어 중형세단 감가율이 준대형세단을 역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장 큰 감가율을 보였던 르노삼성자동차의 경우 새로 출시된 SM6가 SM5와 SM7의 수요층을 흡수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지난 3월 신형 중형세단 모델로 ‘SM6’를 출시했다. SM6는 기존 중형세단과 달리 차별화된 옵션과 수려한 외관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SM6 출시 이전부터 많은 우려를 보냈다. SM5와 SM7의 중간급으로 내놓은 차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이들 차종의 판매가 줄어드는 ‘간섭현상’이 발생한다는 것. 결국 SM6 출시 이후 SM5와 SM7의 판매량이 동시에 줄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실제 신차 시장에서 SM5는 SM6 출시 전 1000∼2000대의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지난 3월부터는 판매량이 1000대 미만으로 떨어졌고, 지난달에는 전월 대비 50.4% 감소한 379대가 판매됐다.

SM7도 들쑥날쑥한 면은 있지만 지난해 말 1000대 안팎의 판매량을 보였던 데 비해 최근에는 600대 안팎으로 판매량이 유지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기조가 중고차시장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중고차 매매상은 “SM6가 출시된 이후 SM5와 SM7을 찾는 고객이 크게 줄었다”며 “중간급에 위치한 SM6로 수요가 몰리면서 두 차종의 가격이 크게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고차 시세는 실질적으로 소비자들이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며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차량은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새 차를 살 때 ‘남들과 다른 차’를 선호하면 당연히 중고차 시장에선 불이익을 받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에 르노삼성자동차 측은 간섭현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르노삼성자동차 관계자는 “이를 간섭현상으로 보면 안된다”며 “SM6를 출시하면서 SM5의 경우 고급사양을 뺐기 때문에 역할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한편 쉐보레는 신형 말리부를 지난 4월에, 현대자동차는 2017년형 쏘나타를 지난 5월에 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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