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김승민 기자] 택시기사 폭행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정작 택시기사를 보호하는 보호격벽 설치 사업이 미진한 성과를 내고 있다.

승객들이 종종 불편한 기분을 내비쳐 택시기사들이 설치를 못 하거나, 보호격벽을 설치했을 때 운전자의 기거가 제한될 수 있다고 여겨 설치하지 않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택시기사 폭행사건이 줄지 않고, 여성과 고령자가 택시기사로 꾸준히 유입되는 상황에서 보호격벽 설치사업이 유지돼야 하며, 나아가 의무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승객이 두려운 택시기사

16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운전자 폭행범죄 발생‧검거현황’에 따르면 2010~2015년 동안 버스나 택시 운전자 폭행사건이 매년 3000건 이상 발생했고, 폭행사건 관련으로 3200명 이상이 검거됐다. 하루 평균 9.5건의 운전자 폭행사건이 벌어지고 10명이 검거된 셈이다.

2010년 폭행사건 수와 검거인원은 각각 3883건, 4125명 ▲2011년 3614건, 3810명 ▲2012년 3578건, 3784명 ▲2013년 3302건, 3444명 ▲2014년 3246건, 3405명 ▲2015년(잠정) 3149건 3256명 등이다. 올해 5월 말에도 운전자 폭행사건의 잠정 발생건수는 1305건, 검거인원 수는 1372명에 이른다.

문제는 운전자 폭행 사범이 구속 조치된 건수가 한해 최대치로도 31건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2010년 구속 건수는 31건으로 구속 조치율이 0.8%에 불과하며, ▲2011년은 31건(0.9%) ▲2012년 17건(0.5%) ▲2013년 29건(0.9%) ▲2014년 28건(0.9%) ▲2015년(잠정) 25건(0.8%) ▲2016년 5월 말(잠정) 12건(0.9%) 등이다.

더욱이 현행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의 한계 때문에 수치상 잡히지 않은 택시기사 폭행사건이 더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특가법은 ‘운행 중’인 버스나 택시 운전자를 폭행·협박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즉 승객 승하차나 신호대기 때문에 정차 중인 택시에서 운전자가 승객에게 폭행당한 사례는 특가법에 따른 폭행사건으로 규정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필요는 하지만 호응은 저조

이에 따라 택시 운전석 옆면과 뒷면에 투명 플라스틱 벽을 세우는 ‘택시 보호격벽’ 설치가 시급하다는 판단이 나오고,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택시 보호격벽 설치 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여성과 고령자가 택시 운전자로 꾸준히 유입되면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보호격벽 설치에 대한 택시기사들의 호응이 기대보다 저조해 설치 성과도 미진하고, 결국 사업을 중도포기한 지자체도 등장했다.

서울시는 2014년 12월 여성이 운전하는 택시 35대에 보호격벽을 시범적으로 설치하며 ‘택시 보호격벽 설치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택시기사들과 승객들의 부정적인 반응 때문에 지난해 10월 사업 포기 방침을 세웠다.

전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택시 보호격벽 설치 지원 사업’을 펼쳐온 경기도는 2015년 3월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해, 그해 여성과 65세 이상의 고령 운전자를 중심으로 533명의 지원 사업 신청자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택시 보호격벽을 설치한 실적은 273건에 그쳐, 절반의 성과만 냈다.

의왕시의 경우 개인택시 기사 58명, 법인택시 기사 55명이 지원 사업에 신청했지만 막상 설치 단계에서는 신청을 취소해 2015년 실적이 전무하다.

유미경 경기도 택시정책과 주무관은 “택시 보호격벽 설치 지원 사업에 대한 수요조사 때 반응과 실제 설치 수요 차가 많이 났다”며 “그 이유를 알아보니 보호격벽을 설치하면 승객들 반응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 택시기사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남성 택시기사 대부분이 보호격벽을 설치할 경우 행동반경이 좁아져 활동이 불편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 것 같다, 운전 시 빛반사가 있다며 굳이 필요성을 못 느낀다 등의 이유로 보호격벽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도는 올해도 택시 보호격벽 설치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여전히 보호격벽 설치를 바라는 택시기사들이 있고, 택시기사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여성과 고령자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승객 안전을 확보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경기도의 설명이다.

유미경 주무관은 “경기도는 택시기사의 근무 환경 개선 차원에서 올해도 보호격벽 설치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며 “보호격벽 설치가 택시기사들에게 부담되지 않도록 총 사업비 25만원 중 80%를 경기도와 해당 시군이 함께 부담해 택시기사는 20%인 5만원만 부담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어 “아직 보호격벽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잘 퍼져있지 않지만, 운전자와 승객 모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보호격벽 설치 사례가 늘기 바란다”며 “특히 여성 운전자 고용 창출에도 긍정적 영향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보호격벽을 설치한 택시기사 중에는 아예 보호격벽 설치의 의무화를 바라는 이도 있다.

수원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개인택시 운전경력 20년의 박 모씨는 “밤중에 술에 취한 승객을 태울 때는 걱정이 앞선다. 실제로 곤혹스러운 상황을 겪은 적도 있다”며 “보호격벽을 설치한 후 그런 걱정은 덜었지만 승객 중 가끔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설치를 망설이는 동료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호격벽 때문에 착석 시 움직이기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해 설치하지 않는 동료들도 있다. 그래도 설치가 의무화되면 택시기사와 승객 모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의무화되면 승객들이 보호격벽에 좀더 쉽게 수긍하게 될 것이다”라고 기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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