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요”

 

전국적으로 이상고온이 덮치며 이례적으로 기온이 32도까지 치솟았던 5월 20일. 숙대입구역 카페에서 기자와 마주 앉은 청년은 가디건을 입고 마스크까지 하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지만 체격은 건장하고, 머리가 짧은 그는 전 육군 장교 유 모씨다. 유 씨는 지난해 1월 의병 전역했다. 올해 32살 앞길 창창한 그는 지금 폐암4기다. 군 생활 내내 그의 주변에는 석면가루가 휘날렸다. 군 장병의 처우와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들, 묵묵히 지원해주는 아내를 위해 국방부와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그의 사연을 조명해봤다.

 

유 씨는 가족과 나라에 힘이 되고 싶어 군인의 길을 택했다. 사업을 하던 유 씨의 부친은 가정과 회사를 모두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고, 사업 시작 1년 만에 심근경색 판정을 받았다. 당시 유 씨는 중학교 1학년에 불과했다. 가세는 점차 기울어갔다. 유 씨가 군인으로 진로를 결정한 이유다.

그 결정에는 부친의 철학도 큰 영향을 끼쳤다. 유 씨의 부친은 평소 책임감과 성실함, 주인의식, 솔선수범 등을 강조했다. 유 씨는 3사관학교 입교 날 아픈 몸을 이끌고 자신을 배웅하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자랑스러움을 읽었고, 그래서 자부심을 느꼈다. 너무 엄혹한 사관생도 생활에 지쳐 한차례 자퇴를 택하기도 했지만, 이듬해 재입교 한 이유도 부친의 뜻을 받들었기 때문이다.

▲ 전 육군 장교 유 씨가 2008년 3월 임관식을 마친 뒤 찍은 사진.

온몸으로 군에 헌신하다

2008년 임관한 유 씨는 자연스럽게 통신병과를 택했다. 대학생 시절 컴퓨터공학과, 사관학교 때도 전자공학과였던 만큼 통신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친이 통신사업을 했던 것도 영향을 줬다. 하지만 적성에 따라 선택한 통신병으로서의 일상은 생각과 달랐다. 물론 보람도 있었지만 업무가 너무 많았다.

“정말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일했습니다.” 통신병은 통신과 전기 관련된 일은 다 맡게 됩니다. 유선통신부터 무선, 폐쇄회로TV, 프로젝터, 선풍기 설치 및 보수 그리고 전구 다는 것까지 다 했습니다. 업무 지원을 나가야 하는 부대도 많았고, 여기에 간부 업무까지 겹치다 보니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정신과 상담을 받을 정도였죠. 일에만 너무 매달리다 보니 가족하고도 종종 싸웠고요.”

유 씨의 말에 따르면 유 씨는 직업군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먼저 출근했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 날이 많았다. 일과시간이 끝나면 병사들은 돌려보내고 홀로 남아 일을 마무리했다. 밤새 수색 및 매복작전에 투입됐더라도 야간근무 시 졸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위험한 일, 어려운 일에도 가장 먼저 나섰다는 게 그의 얘기다.

병사들이 국방부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자격증을 따고 검정고시나 영어시험을 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노력도 했다. 유 씨도 동료 간부들과 함께 진급을 위한 통신선로 기능사 자격증 공부모임을 꾸렸고 실제로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이렇게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동료들과 병사들이 유 씨를 좋게 평가했다. 전역 후 그를 보기 위해 찾아온 이들은 물론, 시험 합격 후 진심으로 감사하는 이들도 많았다. 상관들도 유 씨를 눈여겨봤다. 한번은 유 씨가 보직완료 후 부대를 옮겨야 할 때 연대장이 직접 잡은 적도 있었다. 복무 7년 동안 표창과 상장도 16개나 받았다.

“2014년 8월 1일에 갑자기 기침과 가슴 두근거림이 심해져 병원에 가보니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심장에 물이 차 있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20일에 폐암 4기라는 확진을 받았습니다.”

유 씨는 좌절했다. 입교 전이나 임관 후에 실시된 체력검사에서 항상 최고 등급을 받았고 건강검진에서도 전혀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담배와 거리가 멀었다. 유 씨는 물론 가족 중에서도 흡연자가 없었다. 체질적으로 술도 먹지 못했다. 가족력 또한 조부모 대까지 올라가도 찾을 수 없었다.

안전장비 없이 1급 발암물질 속 軍 복무
술·담배 안하고 건강, 급작스러운 폐암4기

“상관과 동료, 부하, 가족 모두가 충격을 넘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제 생활습관을 알기 때문에 제가 폐암에 걸렸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된 거죠. 게다가 제 일란성 쌍둥이는 전혀 문제가 없어 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유 씨는 일란성 쌍둥이다. 유 씨와 그의 동생은 함께 입교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언론 매체에서 그들의 사연을 취재 나올 정도였다. 유 씨의 동생은 유 씨보다 1년 먼저 무선통신병과 소속 장교로 임관했다.

유 씨는 폐암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다 짐작된 원인이 바로 ‘석면’이다. 군 건축물 곳곳에는 석면이 들어가 있으며 특히 천장마감재 대부분은 석면을 포함하고 있다. 국제암연구소와 세계보건기구는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석면이 1% 이상 함유됐다고 판정받은 건축물이나 건축자재는 법적으로 철거하게 돼있으며 학교의 경우 0.1%도 넘어서는 안 된다.

통신병과 소속인 유 씨는 일주일에 최소 1회, 최대 4~5회 석면이 들어간 천장마감재를 뜯고 선로를 설치하거나 보수했다. 천장마감재는 건드릴 때마다 먼지가 날렸고 지은 지 10년 이상 지난 건물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먼지가 떨어졌다. 일이 너무 많았던 유 씨는 이런 환경 속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유 씨의 주장에 따르면 군에서는 석면에 노출돼 일하는 군 장병들에게 어떠한 보호장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석면가루가 온몸을 휘감아도 유 씨가 자비를 털어 구입한 일반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다였다고 한다. 함께 작업에 투입된 어느 누구도 석면의 위험성과 대처 방법에 대한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게 유 씨의 주장이다.

▲ 전 육군 장교 유 씨(가운데)가 2011년 9월 수방사 제1경비단 근무를 마치고 동료 장교들과 함께 휴식시간을 보내고 있다.

몰려오는 억울함과 배반감

2015년 1월 의병 전역한 유 씨는 자신의 폐암 발병이 국방부 책임이며, 무엇보다 업무 중 입은 상해이므로 당연히 공상으로 인정받아 상이연금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전공상심의위원회도 공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그의 이런 믿음은 더욱 확고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군인연금급여심의위원회는 1심과 재심에 걸쳐 상이연금 지급을 거부했다. 사유는 보통 10~30년 잠복기를 거친다는 폐질환이 너무 빨리 발병했다는 것. 또한 석면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업무기록은 9건에 불과하고, ▲일란성 쌍둥이가 건강한 점 ▲폐암에 대한 가족력이 없다는 점 ▲가족 중 흡연자가 없다는 점 ▲유 씨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건강한 신체라는 점은 정확한 근거보다는 추단에 가깝다는 것이다.

재심 결과가 담긴 등기우편을 받은 날 유 씨는 7년 동안 헌신적으로 복무하며 쌓아온 자부심과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통신병과 장병들이 어떤 일을, 어떤 환경에서 하는지 조사관을 한 명이라도 파견해서 알아봤다면, 이야기라도 들어봤다면 절대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을 겁니다. 그럼 일이 너무 바빠서 일일이 업무 기록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을 텐데. 그러나 심의위원회는 서면으로만 심의하고 결론을 내습니다. 소송 1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더 억울한 겁니다.”

가족력 없고 일란성 쌍둥이 형제도 멀쩡
국방부 “발병과 공무 간 인과관계 불명”

이때부터 유 씨는 국방부와의 외롭고 지난한 싸움을 시작했다. 유 씨는 소송 1심 직전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까지 홀로 자료를 찾았다. 쌍둥이 동생과 함께 유전자 검사를 하고, 복무했던 부대 천장마감재를 직접 채집해 한국석면관리연구원에 맡겨 석면이 5%나 함유돼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방부가 이미 2007년부터 석면의 위험성을 알고 여러 석면 관련 사업과 활동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2007년 환경부와 교육부, 고용노동부 같은 관계부처와 함께 ‘석면관리 종합대책’을 세우고 2009년부터 석면사용을 전면금지했다. 같은해 군 건축물 석면함유 실태조사가 진행되는 동시에 ‘석면 관리 가이드라인 및 철거작업 지침’을 제작 및 배포했다. 2010년에는 ‘국방분야 석면안전 관리 훈령’을 제정하고 ‘군 건축물 석면 함유 실태 전수조사 시범사업’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석면 조사관리 매뉴얼 제작과 석면 지도 제작 및 DB관리 시스템 구축, 석면전문조사자 양성교육이 함께 이뤄졌다.

그러나 유 씨는 지난 7년 동안 단 한 번도 석면 조사관리 매뉴얼이나 석면 지도, 석면전문조사자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유 씨는 올해 4월 복무했던 부대의 석면지도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부존재였다.

유 씨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직접 찾아낸 ‘군 병영생활관의 석면관리 실태 및 개선연구방안’이라는 논문에는 한정된 수의 석면전문조사자나 석면관리 매뉴얼의 부실함, 석면 관련 교육 부족 등 총체적인 문제점들이 그대로 정리돼있었다. 국방부의 부실한 석면 관리 체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말 억울하고 배반감이 들었습니다. 제게 한번이라도 석면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줬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그럼 계속해서 군과 나라에 충성했을 텐데. 전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 돼버렸습니다.”

다시 가족과 나라 위해

이제 유 씨는 살기 위해 3주에 한 번씩 항암주사를 맞는다. 주사를 맞으면 1주일 동안은 몸 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평소에도 흉통이 심하고 천천히 움직여도 숨이 찬다. 유 씨는 이런 상황에서 폐암 확정 후 한 달 뒤에 태어난 아들이나, 혼자서 집안을 이끌어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 아내, 국방부와 싸우느라 지쳐가는 아들을 보며 자주 우시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속이 타들어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당신이 너무 억울한 상황이니까 최대한 후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만큼 해라. 그리고 지금 군대에 있는 사람들이나 나중에 들어갈 사람들이 같은 일을 겪는다면 정말 큰 문제다. 당신 노력으로 혹시 조금이라도 국방부가 바뀔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요.”

유 씨는 자신이 떠났을 때 가족이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도록 상이연금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또 한때 군에 헌신했던 사람으로서, 자신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석면 노출로 인한 공상 사례를 판례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된다면 장병들이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고, 질병을 얻더라도 보상받기 쉽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렇게 돼야 군이 더 부강해지고 장병들의 안보정신도 더 탄탄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유 씨는 대법원까지 고려하고 있다. 물론 비용이 더 들겠지만 그는 적금을 깨서라도 자신의 목적을 관철할 생각이다.

국방부는 ‘묵묵부답’이다. 유 씨의 입장에 대한 국방부의 답변을 듣기 위해 취재 요청을 하고 질의서까지 보냈지만 국방부 관계자는 “재판이 진행 중인 사항이고, 결론이 확실히 날 때까지 어떤 입장 표명도 불가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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