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확장이 부른 재계 13위의 몰락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를 받게 됐다. 강덕수 전 STX 회장의 재기는 없었다. 샐러리맨도 재벌이 될 수 있다는 성공신화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강 전 회장은 재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시작해 M&A의 귀재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다. STX그룹을 일으키고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회사를 재계 서열 13위에 안착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초라할 뿐이다. 한 대학교 내에 건립된 그의 흉상만이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 수순에 돌입했다.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상태에 들어간 지 38개월 만의 일이다. 더 이상의 추가지원은 명분과 실익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STX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지난 25일 “이달 말까지 채권단 협의회 논의를 거쳐 자율협약을 종료하고 법정관리로 전환하는 방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부도 발생 불가피

산업은행에 따르면 STX조선해양을 대상으로 한 최근 재실사 결과 유동성 부족이 심화돼 5월 말 도래하는 결제금을 정상적으로 낼 수 없어 부도 발생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관리 체제에서 내년까지 수주가 남아 있는 선박을 정상 건조해 인도금을 받더라도 부족한 자금은 7000억~1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 산업은행의 설명이다.

산업은행은 과거 부실 수주한 선박의 건조를 취소하는 과정에서 해외 선주사가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를 추진하고 있어 공정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산업은행은 “협약채권자 외에 모든 채권자의 형평성 있는 채무 재조정과 해외 선주사의 손해배상 채권을 해결하려면 회생절차를 통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과감한 인적·물적 구조조정이 있어야만 최소한의 생존 여건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6조원에 이르는 금융권 대출을 포함해 모든 채무가 일단 동결된다.

STX조선해양은 당장 돈을 갚아야 하는 부담은 덜게 되지만 회사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직원과 협력사로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회생여부 결정 전까지 직원은 인건비를, 협력사는 거래대금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STX조선해양의 중소협력사는 사내 협력사 60곳을 비롯해 총 1700개에 달한다. STX조선해양 직원 수는 올해 3월 기준 2100여명이다.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9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STX다롄 부도 사태 때에도 부산지역 67개 협력업체가 1184억원에 달하는 납품대금 손실을 입은 바 있다.

채권단이 공동관리 이후 38개월 동안 쏟아부은 지원금은 4조5000억원 이상. 그러나 STX조선해양은 2013년 1조5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1820억원의 손실을 냈다.

산업은행은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현재 건조 중인 52척을 먼저 정상 건조하고 과감한 인적·물적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산업은행은 “금융시장에 주는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STX조선과 관계사가 동반 회생절차에 돌입할 경우 국내 은행의 추가 손실이 2조원을 상회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시작해 재벌까지
STX조선해양, 법정관리 돌입 수순

STX조선해양은 한때 조선사 세계 4위, 국내 재계 순위 13위까지 올랐던 자수성가형 대기업이었다. 국내 재계 역사상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성장한 기업이자, 21세기에 새로 등장한 재벌이었다. 이러한 괄목할 만한 성장의 중심에는 강덕수 전 STX회장이 있었다.

1950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강 전 회장은 서울 동대문상고와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학벌이나 집안환경 면에서 특별할 것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1973년 쌍용그룹 계열사인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뒤, 그는 돋보이는 직원으로 떠올랐다.

M&A 귀재의 오판

강 전 회장의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다룬 책 ‘나는 생각을 행동에 옮겼을 뿐이다’(이임광 저/글로세움 출판사) 26~27페이지에는 ‘강덕수 회장은 숫자에 밝다. 재무통, M&A의 귀재로 불리는 것도 계산이 명쾌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양의 서류를 결재하면서도 소수점 하나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는 문구가 나온다.

1970년대 후반 ㈜쌍용 기획부 과장으로 일할 때 함께 근무한 동료들은 ‘우리가 계산기로 계산하는 것보다 그의 암산이 더 빨랐다’고 기억한다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어 저자는 강 전 회장을 “상업고등학교에서 주산과 부기를 배운 데다 쌍용그룹에 입사한 후 재무 기획 등 숫자가 중시되는 일을 주로 맡았고 최고재무책임자에까지 올랐으니 숫자와 계산이 똑 떨어지는 것이야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고 평했다.

▲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강 전 회장은 워커홀릭이었다. 그는 “나는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별로 없다. 신명 나게 일하면 건강도 좋아진다. 그렇다고 일 중독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일 자체를 즐기라는 말이다. 어차피 인생은 일하면서 사는 것이고 일을 취미로 만들면 자연히 성과가 생기고 성과가 나면 여유가 생기며 저절로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강 전 회장은 27년을 쌍용그룹에서 근무했다. 2000년에는 쌍용중공업 최고재무책임자(CFO·전무) 자리에까지 올랐다.

인생의 전환점은 외환위기로 경영난을 겪던 쌍용그룹이 쌍용중공업 지분을 매각하면서 찾아왔다.

당시 쌍용중공업을 인수한 한누리컨소시엄은 강 전 회장을 대표이사로 발탁했고, 1000주의 스톡옵션을 지급했다.

강 전 회장은 ‘오너’가 되고 싶었다. 외환위기 이후 쌍용그룹이 해체된 후 사모았던 쌍용중공업 주식과 한누리컨소시엄이 보유했던 쌍용중공업 주식을 사들여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STX그룹을 일으켰다. 그의 나이 51세 때의 일이다.

강 전 회장은 법정관리 중이던 STX조선(전 대동조선)을 인수했고, 이어 2002년 STX에너지(전 산단에너지), 2004년 STX팬오션(전 범양상선)을 차례로 인수하며 덩치를 키워나갔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은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인수 기업의 지분 일부를 다른 투자자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마련했다. 이후 STX엔진과 STX조선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8000억원을 마련해 2008년 STX유럽(전 아커야즈)을 인수하고 중국 다련에 대규모 투자로 다롄조선소를 가동했다.

조선·해운업종의 호황기가 맞물리면서 STX조선해양의 덩치는 급격하게 커졌다. 2001년 4428억원이던 매출은 3조원대로 7배 가까이 치솟는 등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다.

하지만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조선·해운 등 바다 관련 사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STX조선해양의 추락이 시작됐다.

직원 감원, 협력업체 연쇄도산 우려
근황 불투명, “재기 움직임 없었다”

STX팬오션은 상선 운임 하락과 물동량 감소로, STX조선은 선박수주 물량 급감으로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선박 엔진과 조선 기자재 사업을 영위하던 STX엔진과 STX중공업 등 다른 계열사 수익도 동반 하락했다.

STX조선해양은 2013년 5월 채권단 공동관리 체제를 맞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방법은 없었다. 채권단이 4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했지만 3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고, 중국 조선사들의 거센 추격으로 국내 조선 시장점유율도 해마다 급감했다.

집행유예 받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 전 회장은 2조3000억원대에 달하는 분식회계 및 2800억원대 배임 혐의 등으로 2014년 5월 구속기소됐다. 그해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도 받은 강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혐의가 무죄로 인정돼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풀려날 당시 강 전 회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공중분해된 STX그룹의 재건을 검토해보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지만 정작 그의 근황을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회사 회생에는 적극적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창원대 동백백물관 역사관에 건립된 강 전 회장의 흉상만이 과거의 영광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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