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솔로몬] 현행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부동산 명의신탁은 금지돼 민사적으로 그 약정 자체가 무효일 뿐 아니라, 형사적으로도 명의신탁자 및 명의수탁자 모두 엄벌에 처해진다. 물론 조세 포탈, 강제집행의 면탈(免脫) 또는 법령상 제한의 회피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우로서 ① 종중(宗中)이 보유한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종중(종중과 그 대표자를 같이 표시해 등기한 경우를 포함한다)외의 자의 명의로 등기한 경우 ② 배우자 명의로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등기한 경우 ③ 종교단체의 명의로 그 산하 조직이 보유한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등기한 경우에는 명의신탁이 허용되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 법무법인 서로 조태진 변호사

부동산실명법 하에서 부동산을 구입하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등기하는 이른바 ‘중간생략등기형’명의신탁에서 등기명의를 한 수탁자가 해당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할 경우 명의수탁자는 횡령죄로 처벌될까?

우리나라 기존 판례는 일관되게 이 경우 명의수탁자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난 19일 대법원은 이른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명의수탁자를 명의신탁자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고 할 수 없어 횡령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그 동안 기존 판례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의 필요성만을 이유로 횡령죄 성립의 뚜렷한 법리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명의수탁자를 처벌해 왔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는 죄형법정주의 원칙과 그로부터 유래된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에 반함과 동시에 부동산실명법이 정한 금지규범을 위반한 명의신탁자를 오히려 형법적으로 보호함으로써 명의신탁관계를 유지·조장한 결과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아, 횡령죄에 대한 형사법리 및 국민 법 감정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건대, 우리 형법상 횡령죄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해야 한다.

즉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명의수탁자가 횡령죄로 처벌될 것인지의 여부는 명의수탁자 명의로 등기된 신탁부동산을 타인 즉, 명의신탁자의 재물로 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무효라고 규정한 부동산실명법에 따라 명의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가 되고 따라서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한다.

이 경우 명의신탁자는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지지도 않고 명의수탁자가 신탁자의 재물을 보관하는 관계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명의신탁자 및 명의수탁자 사이에는 재물 보관의 법적 근거가 되는 위탁관계가 존재하지 않아 횡령죄도 성립하지 않는 것이 법리에 부합하는 해석이 된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그 동안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약정을 맺고 명의수탁자가 매도인과 부동산 거래를 하는 형식의 이른바 계약명의신탁의 경우에는 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횡령죄 및 배임죄를 구성하지 않는 것으로 판시한 것에 비해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에서만 횡령죄를 인정하던 것을 이번 기회에 같은 법리에 기초해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에 대해서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판시하게 된 것이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법리적으로 오류가 있던 기존의 판결을 형사 법리에 맞춰 바로잡은 것일 뿐 아니라 명의신탁의 유형에 따라 형사적 처벌 여부가 달라지는 현실적 문제도 해소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고 의미 있는 변화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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