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넘지 못한 한 서린 역사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대마불사(大馬不死)’는 덩치나 위세가 너무 거대해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제계에서도 덩치가 큰 기업들이 도산할 경우 파급력이 두려워 부도를 내지 못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조상제한서’도 대마불사의 전형이었다. 금융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 쉽게 망하지 않을 거란 인식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조상제한서’란 90년대 우리나라 금융계를 평정했던 5대 은행인 조흥은행과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은행을 설립연도순으로 나열한 것이다. 이 중 제일은행은 조상제한서 중에서도 우량 은행에 속할 정도로 잘나갔다. 최근에는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서 SC제일은행으로 행명이 환원되면서 조상제한서 중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문제 많은 ‘매각’

제일은행은 1929년 저축예금업무 전담을 목적으로 설립된 조선저축은행을 전신으로 한다. 광복 직후 일반은행업무를 겸영하는 일반 시중은행으로 겸영하다가 1950년 행명을 한국저축은행으로 개칭하고 본격적인 사세확장에 나섰다. 실제 한국저축은행은 ‘식산은행’의 점포 21개를 1952년과 1954년 두 차례에 걸쳐 승계하면서 대형 은행으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한국저축은행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일은행으로 개편된 것은 1958년이다. 당시 한국저축은행은 정부소유 주식을 삼호방직계에 매각하면서 민영화를 단행했다. 이 때 행명도 제일은행으로 바꾸면서 새롭게 출발했다.

제일은행은 민영화 이후 탄탄대로를 걸으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1982년에는 국내은행으로서는 처음으로 여행자수표를 발행했고, 사무의 기계화·전산화를 추진해 전국은행의 온라인화에도 앞장섰다. 또 1994년에는 상업증권을 인수하면서 종합금융지주의 모습도 갖춰나갔다.

하지만 제일은행의 찬란한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잘나가던 제일은행도 1997년 불어 닥친 외환위기의 파고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일은행은 도산해 버린 주요 대기업에 상당한 대출을 제공했는데, 덕분에 엄청난 대손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여파로 제일은행의 재무건전성은 급속도로 악화됐고 조상제한서 중 가장 먼저 도산 위기가지 몰렸다. 1999년 12월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에 매각되면서 형체는 겨우 보존할 수 있었지만 매각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구설수에 올랐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은 제일은행의 지분 51%를 5000억원에 사들였다. 홍콩의 HSBC은행이 지분 51%를 인수한 뒤 1년 후 나머지 49%의 절반인 24.5%를 추가로 인수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뉴브리지캐피탈을 선택했다. 문제는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제일은행 회생에 공적자금 14조1157원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이는 뉴브리지캐피탈이 제일은행 인수에 쓴 돈에 30배 육박하는 액수다. 정부는 2011년까지 지분을 조금씩 매각해 8조9694억원을 회수했지만 투입된 자금에는 한참 못 미친다.

막대한 공적자금 수혈…결과는 ‘먹튀’
실적 저하에 구원투수로 돌아온 ‘제일’

제일은행이 이처럼 사모펀드에 헐값에 팔린 데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숨겨져 있다.

IMF는 우리나라에 구제금융을 해주는 조건 중 하나로 제일은행과 서울은행 둘 중 한 곳을 매각하는 것을 내걸었다. 이에 정부는 제일은행을 매각 대상으로 정하고 절차를 진행했다. 제일은행의 재무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던터라 나중에 팔아봤자 큰 차익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뉴브리지캐피탈은 제일은행을 매각했다. 그러나 거둬들인 차익에 대한 세금은 ‘0원’이었다. ‘먹튀’ 논란을 가중시킨 이유다. 제일은행을 사고 판 펀드(KTB뉴브리지유한회사)는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다. 라부안은 조세피난처로 유명했다. 말레이시아 소재 기업은 우리 정부와 맺은 이중과세 방지협약에 따라 말레이시아에 세금을 내야 했지만 라부안은 예외였다. 자본이득의 경우 전면 면세처분을 받고 법인세도 낼 필요가 없다. 순이익의 3% 정도만 세금으로 내면 그 이외의 비용은 ‘0원’이다.

비난여론을 의식한 뉴브리지캐피탈은 제일은행 매각 당시 금융채무자 신용회복지원에 써 달라며 자산관리공사 등에 2000만 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

제일은행을 인수한 곳은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 이에따라 제일은행은 ‘한국스탠다드차타드제일은행(SC제일은행)’으로 행명이 바뀌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뉴브리지캐피털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51%는 물론 정부와 예금보험공사가 소유하고 있던 49%까지 전량 매입했다. 이후 한국스탠차타드은행으로 변경했다가 지난 4월 SC제일은행으로 원복했다.

조상제한서의 막내 격인 서울은행도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외환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은 KEB하나은행과 합병된 상태다.

서울은행은 1959년 12월 지방은행으로 창립됐다. 창립 당시 영업구역은 서울특별시 및 경기도 일대로 수도권이 주 활동무대였다. 1962년 부산지점 신설과 함께 전국은행으로 인가받아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서울은행은 1976년 한국신탁은행과 대등 합병해 ‘서울신탁은행’으로 행명을 변경했다. 이후 무난한 성장을 유지해오던 서울신탁은행은 1995년 6월 다시 서울은행으로 돌아갔다.

◆ 버려진 자의 최후

서울은행도 1997년 외환위기를 이기지 못한 채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제일은행과 함께 해외매각 우선대상으로 지정된 것이다. 그러나 헐값에라도 팔린 제일은행과 달리 서울은행은 HSBC와 씨티은행 등 해외 은행들과의 협의가 결렬되면서 매각이 무산됐다. 결국 2002년까지 공적자금을 수혈 받으며 명맥만 겨우 유지했던 서울은행은 하나은행과 합병되면서 43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