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빚과 불안한 빚 사이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구조조정의 그림자가 온 사회를 뒤덮고 있다. 소위 ‘부실기업’으로 지목된 회사들은 알게 모르게 쌓인 빚더미에 시름하고 있다. 회사를 운영하는데 부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부채의 성격과 관리다. 국내 10대 그룹이 지고 있는 빚 가운데 상환 기일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시급한 부채’는 19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10대 그룹이 지고 있는 빚 가운데 절반 이상은 당장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부채인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파이낸셜투데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분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국내 10대 그룹 소속 88개 상장사 중 금융업체 13개사를 제외한 75개사의 올해 1분기 말(3월 31일) 기준 총 부채 가운데 유동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61.7%로 조사됐다.

유동부채는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채무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유동부채가 많으면 많을수록 당장 갚아야 할 빚이 많다는 의미로 기업에게는 부담이 된다. 유동부채에는 외상매입금과 지급어음, 금전채무, 일반적으로 기한 1년 이내의 단기차입금, 미지급금, 미지급비용, 선수금, 예수금, 충당금 등이 포함된다.

즉, 국내 10대 그룹이 지고 있는 부채가 1만원이라면 이 중 6170원은 올해 당장 갚아야 할 빚이라는 의미다.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들의 유동부채와 총 부채는 모두 증가세를 보이면서 각각 190조원, 300조원을 넘어섰다. 다만, 유동부채보다 부채의 증가율이 높아 유동부채 비중은 다소 떨어졌다.

조사 대상 기업들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유동부채는 191조1612억원으로 전년동기(188조1946억원) 대비 1.6%(2조9666억원) 증가했다. 부채 역시 309조9425억원으로 같은기간(299조9912억원) 대비 3.3%(9조9513억원)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부채 중 유동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62.7%에서 1.0%포인트 하락했다.

◆90% 넘기도

그룹별로 보면 삼성그룹의 유동부채 비율이 유독 높았다. 전체 빚 가운데 80% 이상이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부채로 조사됐다. 삼성그룹 다음으로 유동부채 비중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 현대중공업그룹이 60% 대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격차다.

삼성그룹 소속 15개 상장사 중 5개 금융사를 제외한 10개사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총 부채 대비 유동부채 비율은 82.4%로 집계됐다. 유동부채가 47조5324억원으로 전년동기(44조9280억원) 대비 5.8%(2조6044억원) 증가했지만 총 부채가 53조8411억원에서 57조7021억원으로 증가폭(7.2%·3조8610억원)이 더욱 커, 유동부채 비율은 1년 전(83.4%)에 비해 1.0%포인트 떨어졌다.

계열사 가운데서는 제일기획이 96.7%라는 압도적인 유동부채 비율을 기록했다. 그룹 내 임직원 교육회사인 멀티캠퍼스도 90%가 넘는(93.6%) 유동부채 비중을 나타났다. 삼성그룹의 수익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삼성전자도 전체 부채 중 90%에 가까운 89.9%가 유동부채로 구성돼 있었고, 이어 삼성SDS가 89.3%로 높았다.

10대그룹,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빚 ‘190조’
부채 1만원 중 6170원…지난해에 비해서는↓
삼성그룹 비율 82.4% ‘최고’…현대重·GS 순
낮은 곳은 어디?…한진·SK, 50% 미만 ‘눈길’

다음으로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유동부채 비율이 높았다. 현대중공업그룹 소속 2개 상장사의 전체 부채 가운데 유동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68.6%로 조사됐다. 1년 새 부채가 20조8411억원에서 19조8865억원으로 4.6%(9546억원) 줄어든 가운데 유동부채가 15조5056억원에서 13조6360억원으로 12.1%(1조8696억원)나 감소하면서, 유동부채 비율 역시 74.4%에서 5.8%포인트 하락했다.

계열사 중 현대미포조선의 유동부채 비율이 79.0%로 다소 높았고, 현대중공업은 66.9%를 기록했다.

3위인 GS그룹 역시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GS그룹 소속 6개 상장사의 총 부채 대비 유동부채 비율은 66.5%였다. 1년 전에 비해 유동부채가 8조195억원에서 8조2339억원으로 2.7%(2144억원) 늘었지만 총 부채가 11조7658억원에서 12조3729억원으로 더 많이(5.2%·6071억원) 증가하면서, 유동부채 비율은 68.2%에서 1.7%포인트 떨어졌다.

그 가운데 GS홈쇼핑은 97.3%라는 어마어마한 유동부채 비중을 기록하며 눈길을 끌었다. 이는 전체 조사 대상 회사들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이어 삼양통상(85.2%)과 GS글로벌(75.4%), GS건설(72.3%) 등의 유동부채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진·SK, 절반 안 돼

반면 한진그룹과 SK그룹은 전체 빚 가운데 절반이 되지 않는 유동부채 비율로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진그룹 소속 5개 상장사의 전체 부채 가운데 유동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44.6%로 집계됐다. 1년 새 유동부채가 12조459억원에서 12조4783억원으로 3.6%(4324억원) 늘어난 반면 부채는 28조2981억원에서 27조9747억원으로 1.1%(3234억원) 늘면서, 유동부채 비율은 42.6%에서 2.0%포인트 상승했다.

중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38.8%에 불과한 유동부채 비율로 그룹 전체 수치를 끌어내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고, 이어 한국공항이 45.1%로 낮았다. 최근 해운업계 구조조정의 중심에 서 있는 한진해운의 경우 61.2%로 한진그룹 내 계열사 가운데 가장 높은 유동부채 비율을 나타냈다.

SK그룹 소속 16개 상장사 중 2개 금융사를 제외한 14개사의 총 부채 대비 유동부채 비율 역시 한진해운과 같은 44.6%를 기록했다. 전체 부채가 30조3528억원에서 35조6731억원으로 17.5%(5조3203억원)이나 증가했지만 유동부채는 15조3083억원에서 15조9124억원으로 3.9%(6041억원) 늘어나는데 그치며, 유동부채 비율은 1년 새 50.4%에서 5.8%포인트 하락했다.

계열사 중에서는 그룹 지주사인 ㈜SK가 25.7%에 불과한 유동부채 비율을 보였다, 이는 전체 조사 대상 회사들 중 가장 낮은 수치다. 또 SKC(28.5%)와 SK이노베이션(32.9%), SK텔레콤(36.0%) 등이 뒤를 이었다. 10대 그룹 소속 전체 상장사들로 확대해 봐도 이들이 ㈜SK 다음으로 유동부채 비율이 낮은 계열사 2~4위에 나란히 자리했다.

이밖에 그룹들의 총 부채 대비 유동부채 비율은 ▲현대자동차그룹 62.9% ▲LG그룹 60.4% ▲포스코그룹 56.3% ▲한화그룹 55.8% ▲롯데그룹 51.1%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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