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기업 경영자의 뒤늦은 후회

▲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 관련 재소환 돼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까지 충격을 안기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첫 책임자가 지목됐다. 사건을 조사 중인 검찰은 신현우 전 옥시 대표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 구속했다. 신입사원으로 출발해 최고경영자에 오르며 ‘샐러리맨 신화’로 불렸던 입지전적인 인물, 신 전 대표는 무려 90명의 목숨을 앗아간 옥시 사태 ‘유탄’을 정면으로 맞게 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15일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신현우 전 대표와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옥시 전 연구소장 김 모씨, 옥시 전 선임연구원 최 모씨 등을 구속했다. 검찰은 인터넷 등을 참조해 졸속으로 ‘세퓨’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판매한 버터플라이이펙트의 전 대표 오 모씨도 이날 함께 구속됐다.

옥시 사태 배후?

검찰에 따르면 신 전 대표 등은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에 포함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성분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판매해 피해를 발생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2001년부터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시장을 선도했고, 정부가 폐 손상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한 인원 221명 중 177명이 옥시 제품 이용자라는 점을 비춰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내용의 허위 과장광고를 한 혐의(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도 받고 있다.

▲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가 4월26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하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신 전 대표는 2001년 문제가 된 ‘옥시싹싹뉴가습기당번’을 제조할 당시 옥시의 최고경영자였다. 그는 9일 검찰청에 도착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사전에 알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몰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신 전 대표는 기자들에게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고통과 피해를 준 것을 진심으로 사과한다. 남은 생을 참회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신 전 대표는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0년 동양제철화학 전신인 동양화학공업(현 OCI)에 입사했다. 그는 개발담당이사, 상무이사 등 신사업 분야에서 주로 일하며 ‘옥시크린’, ‘파워크린’, ‘물먹는 하마’ 등 히트상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공을 세웠다.

사태 5년 만에 회사 대표 구속
불스원에서 6년간 배당 32억 ‘꿀꺽’

1991년 계열사 ㈜옥시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동양화학공업이 경영난으로 2001년 옥시를 영국계 다국적 기업 레킷벤키저엔브이에 매각한 뒤인 2005년까지 대표를 역임했다. 이후 동양화학공업 부회장으로 복귀했고 2010년 OCI(동양화학공업)에서 물러나면서 불스원 비누 42.93%를 43억원에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불스원은 엔진첨가제 ‘불스원샷’을 주력제품으로 하는 자동차 용품 전문회사다. 1996년 옥시가 인수한 ㈜상아&참을 전신으로 하며 옥시가 2001년 레킷벤키저엔브이에 팔리면서 불스원으로 독립했다.

신 전 대표는 현재 불스원 지분 44.34%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뒤를 유니온(10.42%), ㈜대웅(4.72%), 한국바이오기술투자㈜(4.72%)가 잇고 있다. 유니온은 특수시멘트 제조를 주력으로 하고 있는 회사로, OCI 계열사다.

불스원 임원진 4명은 모두 옥시 출신이다. 신 전 대표 외에도 박현근 불스원 대표이사와 김구현 불스원 CFO, 이원영 불스원 감사 모두 옥시에서 이사직을 지낸 바 있다. 신 전 대표는 현재 불스원 부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불스원은 지난해 매출 1064억원, 영업이익 68억원, 당기순이익 38억원을 올렸다.

신 전 대표는 최근 6년간 30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챙기기도 했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불스원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신 전 대표는 불스원 최대주주가 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총 32억3847만원의 배당금을 챙긴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기간 불스원의 총 배당금 70억7776만원 중 45.8%에 달하는 금액이다.

신 전 대표는 ▲2010년 1억2474만원 ▲2011년 2억3500만원 ▲2012년 4억7000만원 ▲2013년 7억500만원 ▲2014년 8억8123만원 ▲2015년 8억2249만원을 불스원으로부터 배당받았다.

시장 2위 슈즈 멀티샵 슈마커 대주주
하루아침에 물거품 된 ‘샐러리맨 신화’

이에 따르면 불스원이 벌어들인 돈 중 20% 가까이가 신 전 대표 지갑 속으로 들어간 셈이다. 이 기간 불스원의 당기순이익은 총 191억8479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지난 6년 동안 불스원의 당기순이익 중 신 전 대표 배당금으로 나간 비율은 16.9%에 달한다. 즉, 지난 6년 동안 회사가 벌어들인 현금이 1000원이라면 이 중 169원이 신 전 대표 몫으로 떨어진 것이다.

신 전 대표는 OCI 재직 시절이던 2008년 슈마커 지분을 사들이기도 했다. 슈마커 또한 2010년까지 OCI그룹 계열사로 운영되다가 신 전 대표가 그룹 CEO직을 그만두면서 계열분리가 됐다.

▲ 4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저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관련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환경단체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 전 대표는 현재 슈마커 지분 33.6%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는 지분 55.0%를 들고 있는 불스원이며 불스원과 실내환경개선을 위한 제휴를 체결한 바 있는 천연향기 마케팅 기업 센트온도 7.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당초 2011년까지는 신 전 대표가 압도적인 지분(73.94%)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으나 2013년과 2014년 불스원이 유상증자에 잇따라 참여하면서 최대주주가 뒤바뀌었다.

슈마커는 유명 운동화 브랜드를 중심으로 파는 멀티숍으로 현재 매출규모로 ABC마트에 이은 국내 2위 업체다. 슈마커는 지난해 매출 1129억원, 영업이익 16억원, 당기순이익 1억원을 올렸다.

씁쓸한 말로

신 전 대표는 부인 이원옥 씨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고 있다. 특히 ‘연세대 호킹’이라는 애칭을 가진 형진 씨가 신 전 대표의 아들이다. 형진 씨는 2002년 척추성근위축증(온몸의 근육이 마르는 희귀 질환)을 앓으면서도 안구 마우스를 통해 연세대 특별전형에 합격, 석·박사 통합 과정을 밟고 있다. 2013년 신 전 대표는 모교(서울대)가 아닌 연세대에 6억원을, 이원옥 씨는 2011년 아들의 졸업 기념으로 강남세브란스병원에 1억원을 쾌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평생 아픈 아들을 뒷바라지 해오면서 은퇴 뒤 사회봉사활동에 뜻을 두었었다는 신 전 대표.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제1책임자로 떠오르면서 그의 꿈은 ‘샐러리맨 성공신화’와 함께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몰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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