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제고 위한 기업들의 혈투

▲ 사진=이화여대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전국 유명 대학교에는 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건물들이 하나씩은 있다. 기업들이 기부와 이미지제고, 홍보 등 다양한 목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하거나 직접 지어주는 조건으로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대학교 입장에서도 새 건물을 증축하는 데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어 ‘윈윈’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건물들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해당학교 관계자나 일부 학생들만이 알고 있을 뿐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대학과 기업의 ‘합작’ 건축물들을 직접 찾아가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 알아봤다. 세 번째 주인공은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이화여자대학교다.

지난달 27일 늦은 오전 기자는 이대역 4번 출구로 나와 이화여자대학교로 향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이화여대 대학로에는 유커와 학생들로 가득했다. 붐비는 인파를 뚫고 300m 정도를 이동하니 이화여대 정문이 보였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그런지 친구들끼리 모여 시험관련 얘기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뒤로한 채 캠퍼스 안내판 앞으로 가 사전에 조사해온 리스트와 비교해 동선을 짰다.

◆ 특징은 ‘이화’

이화여대에는 ‘이화·삼성교육문화관’과 ‘이화·삼성국제기숙사’, ‘이화·신세계관’, ‘이화·포스코관’ 등 이화라는 이름과 기업 상호명이 조합된 건물들이 즐비하다. 안내판에서 대기업과 관련된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이유다. 다양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정문을 기점으로 제일 가까운 이화·삼성국제기숙사를 첫 방문지로 선택하고 ‘대장정’을 시작했다.

안내판에서 서쪽으로 400m정도를 이동하자 외국인들이 이용하는 국제기숙사동이 눈에 들어왔다. 지도상으로 국제기숙사동에 위치했던 이화·삼성국제기숙사.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주변 건물들과 비슷한 외관 때문에 주변을 한참 헤맨 뒤 찾을 수 있었다.

▲ 이화삼성국제기숙사.

이화‧삼성국제기숙사는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외국인학생의 쾌적한 생활공간 마련을 목적으로 2006년 9월 완공된 건물이다. 이 시설은 연면적 5247㎡에 지하2층, 지상7층 규모로 이화여대 부속초등학교와 유치원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화여대와 삼성그룹의 합작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신세계건설에서 시공을 맡았다. 건물 내부에는 체력단련실과 독서실, 휴게실, 세미나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특히 기숙사 방마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갖춰져 있고 냉장고와 유선랜 등도 구비돼 있어 외국인 학생들의 원활한 대학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이화여대는 2000년대 들어 외국인 학생의 입학이 크게 늘자 기존의 기숙사로는 수용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이에 학교 운영진은 새로운 기숙사 건립을 추진했고 2006년에 이화‧삼성국제기숙사의 문을 연 것이다. 덕분에 이화여대는 외국인 교수와 학생 등 총 99명을 추가로 수용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제2국제기숙사가 2012년에 완공되면서 이화여대는 50여개국 출신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거주하는 글로벌 캠퍼스로 거듭났다.

기숙사에 거주하는 한 외국인 유학생은 “이화여대에 머물면서 외국학생들과 한국학생들이 서로의 문화를 가르쳐주고 또 배우고 있다”며 “컴퓨터실과 독서실, 보건실 등 시설도 훌륭하고 기숙사 선생님들이 매우 친절해 제2의 집처럼 편안한 곳”이라고 말했다.

‘기부왕’ 삼성그룹…지어준 건물만 3개
선대 회장 유지 이어 받은 SK텔레콤관

이화·삼성국제기숙사를 뒤로한 채 이화여대 부속초등학교를 지나 이화·신세계관으로 이동했다. 이화·신세계관은 여성 경영학도의 꿈과 비전을 키울 수 있는 교육환경의 장을 마련을 목적으로 2005년

▲ 이화신세계관.

10월 완공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연면적 1만3223㎡에 지하3층, 지상7층 규모로 이화여대부속초등학교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경영대학 전용 건물인 이화·신세계관에는 원격화상회의가 가능한 강의실과 원형강의실, 교수연구실, 대학원연구실 등이 들어서 있다. 특히 빗물을 이용한 중수사용, 태양광전지판을 이용한 발전 설비 등 친환경 시스템을 도입한 점도 특징이다. 공사비용은 신세계그룹이 기부를 통해 150억원을 전액 충당했다. 이 기부금은 연간 50억원 한도로 3년간 지급됐다.

이화·신세계관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건물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찾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내부 모습은 달랐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평범했던 외관과는 다르게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건물 중앙에는 ‘마름모’ 모양으로 뻗어있는 계단이 있었고, 그 사이로 건너편 유리를 통해 햇빛이 들어오는 모습은 아름다움을 더했다.

현재 이화여대 경영대학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이화·신세계관은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장의 전두지휘 아래 지어졌다.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 출신인 이 회장과의 인연으로 경영대학 건물이 필요했던 이화여대에 이화·신세계관이 건립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본진인 미대에서는 이러한 이 회장의 행보를 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미대에는 지원도 하지 않던 이 회장이 상관없는 경영대 건물을 지어줬다는 것이 이유다. 현재도 많은 미대생들이 여름에 땀방울을 흘리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 고풍적인 美

▲ 이화삼성교육문화관 외부 모습.

이화·삼성국제기숙사 외에도 이화여대에는 삼성이 지어준 건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화·삼성교육문화관이 그 주인공이다. 이화·삼성교육문화관은 캠퍼스 외곽에 위치해 있는데, 옆으로는 성산로가 뻗어 있어 수많은 차량들의 통행으로 인한 소음이 귀를 괴롭혔다.

이화·삼성교육문화관은 평생교육을 통해 사회봉사에 기여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1997년 2월에 완공됐다. 이 건물은 연면적 1만7058㎡에 지하4층, 지상9층 규모로 이화·신세계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이화여대 총동창회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는 이화·삼성교육문화회관에는 언어교육원과 멀티미디어교육원, 평생교육원 등 다양한 교육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공사비용 160억원 가운데 70억원을 삼성전자가 부담했고, 나머지 90억원은 학교기금으로 충당했다.

▲ 이화삼성교육문화관 내부 모습.

이화·삼성교육문화관에 처음 들어서자마자 받은 느낌은 ‘중세시대의 거대한 원형극장’을 보는 듯했다. 내부구조는 복도형 통로가 원통형으로 쌓아올려져 있어 모든 층에서 로비를 한눈에 볼 수 있었고, 각 층의 복도 벽은 원목재질로 구성돼 있어 고풍적인 미를 풍겼기 때문이다. 이화·삼성교육문화관 1층 한 켠에는 건물건립에 힘을 보탠 기부자들의 목록이 나열돼 있다. 여기에는 건립에 직접 관여한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도 현대그룹과 LG그룹, 포항제철, 조흥은행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기부 규모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를 해놨다는 것이다.

현재 이화·삼성교육문화관은 재학생들의 수업보다는 외부인사 강연이나 평생교육원, 동창회모임 등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평생교육원에서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다양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이화·삼성교육문화관은 전문인력 양성과 평생교육 사회봉사에 기여하기 위해 이화 동문들이 구심점이 되고 있다”며 “주로 언어교육원과 멀티미디어교육원, 평생교육원, 동창회 등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화·삼성교육문화관 바로 옆에는 SK텔레콤과 관련이 깊은 이화·SK텔레콤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 이화SK텔레콤관

이화·SK텔레콤관은 건립 당시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을 표방해 지어진 건물로 1998년 8월에 완공됐다. 이 건물은 연면적 6585㎡에 지하 2층, 지상5층 규모로 이화·삼성교육문화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산학협력의 의미로 SK텔레콤의 연구실로도 이용되고 있는 이화·SK텔레콤관에는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강당과 전시실, 디지털 도서관, 벤처비즈니스 센터, 강의실 및 실습실들이 들어서 있다. 공사비용은 103억원으로 전액 SK텔레콤이 충당했다. 시공은 SK건설이 직접 맡았다.

고(故) 최종현 전 SK회장은 이화·SK텔레콤관 봉헌식을 2일 앞두고 타계했다. 이 때문에 이화여대측에선 완공행사 연기를 추진했지만 SK텔레콤측이 고인의 뜻을 이유로 예정대로 진행할 것을 요청했다. 결국 장상 당시 이화여대 총장이 최 회장의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사업 유지를 기리는 조사를 낭독하고 묵념하는 등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봉헌식이 진행됐다.

미대 버린 신세계…학생들만 ‘부들부들’
유리와 철골 조합…누가 봐도 포스코

이화여대에도 앞서 방문한 서울대와 연세대처럼 포스코에서 지어준 건물이 있었다. 바로 ‘이화·포스코관’ 얘기다. 서울대와 연세대에는 현재 ‘포스코스포츠센터’, ‘포스코브릿지’가 포스코의 기부를 통해 지어져 있는 상태다.

▲ 이화포스코관.

‘이화·포스코관’은 이화여대와 포스코가 사회과학분야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2002년 2월 완공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연면적 1만8512㎡로 지하 1층, 지상7층 규모로 ‘학관’과 ‘진선미관’이 있는 이화여대 캠퍼스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사회과학대학 건물로 이용되고 있는 이화‧포스코관은 사회과학부와 언론홍보영상학부, 정책과학대학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연구실, 교양과목 강의실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 있다. 편의시설로는 연구동 7층에 위치한 교수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교수라운지와 김밥으로 유명한 카페테리아 ‘이화사랑’이 지하 1층에 입점해 있다. 공사비용 100억원은 포스코그룹이 전액 기부형식으로 충당했다. 시공도 포스코건설이 직접 맡았다.

▲‘딱’ 보면 ‘척’

이화‧포스코관은 누가 봐도 포스코가 지어준 건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했다. 이전에 방문했던 연세대 ‘포스코브릿지’, 서울대 ‘포스코스포츠센터’와 마찬가지로 유리와 철골 구조물이 절묘하게 조화돼 기하학적인 외관이 특징이었다.

▲ 종합과학관 현대자동차동.

이화‧포스코관은 기자가 방문한 이화여대의 어떤 건물보다도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다양한 교양과목 수업이 열리는 곳이기도 했고, 건물의 규모나 활용도가 좋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또 이화여대 명물인 ‘이화사랑 김밥’을 이화‧포스코관 지하1층 ‘이화사랑’에서 판매하고 있어 타 학교 학생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이밖에도 이화여자대학교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관련이 깊은 ‘아산공학관’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직접 지어준 ‘종합과학관 현대자동차동’ ▲글로벌 화학기업 ‘솔베이’가 직접 투자한 ‘산학협력관’ ▲LG그룹의 기부를 통해 만들어진 ‘LG컨벤션홀’ ▲삼성이 건립에 힘쓴 ‘ECC 삼성홀’ 등 수많은 기업 관련 건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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