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회장 폭주 경영에 ‘찬성밖에 난 몰라’

▲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투데이=김승민 기자] 구조조정 위기 앞에 놓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사외이사들이 말밥에 올랐다. 경영 초심자인 두 기업의 회장들이 무리한 사업을 하거나 세계 경제 불황에 대비하지 못해도 한결같이 찬성만 날려 온 태도가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와 전혀 맞지 않다는 거센 지적이 일고 있다.

심지어 불성실한 출석률을 보여도 보수가 꾸준히 오른 것이 확인돼 사회이사 관련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이사회 의견 안결에서 반대의견을 낸 사외이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밖에 못 한다는 세간의 비판이 그대로 들어맞는 상황인 것이다. 9년 동안 현대상선은 275건, 한진해운은 243건의 의안을 진행했다.

◆존재 의미 無

사외이사들이 본래 역할인 기업 경영 감시와 견제를 방기하는 동안 두 기업의 수장에는 경영 경험이 전무한 인물들이 들어섰다. 이후 사세는 급격히 기울어 구조조정이 목전이다. 사외이사의 무책임이 더욱 논란이 되는 배경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003년 취임한 이후 사외이사들은 말 그대로 꿔다 논 보릿자루였다. 현 회장은 남편이었던 정몽헌 전 현대 회장이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하자 빈자리를 대신 맡았다. 당시 그룹 안팎에서는 전문경영인을 뽑아 소유와 경영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현 회장은 오너 경영 체제를 밀어붙였다. 세계 경기 침체가 한창일 때 현 회장은 그룹연수원을 신축하고 남산 반얀트리호텔 인수에 1600억원을 쏟아 부었다. 그 뒤 현대건설 인수전에도 뛰어들어 그룹 전체에 부담을 줬지만 그동안 사외이사들은 어떤 이견도 보이지 않았다.

현대상선이 호기를 노릴 수 있는 순간에도 사외이사들은 유명무실했다. 현 회장이 취임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현대상선의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무난한 상승세를 보였다. 2008년에는 매출 8조9309억원, 당기순이익 6694억원을 이뤘다. 그러나 이때 현대상선은 초대형 선박을 발주하고 비용 절감을 꾀하는 등 외국 경쟁사들의 미래 투자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외려 용선료 상승을 점치며 해외 선주들과 비싼 가격에 장기 용선 계약을 맺었고, 그 결과 금융위기 때 해운업 침체로 운임이 급락하면서 비싼 장기 용선료가 경영난의 주요인이 됐다. 현대상선의 사외이사들은 경영자의 방만한 운영에도, 기업을 키울 수 있는 기회에도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 못 한 셈이다.

9년 동안 경영자 결정에 반대표는 ‘제로’
1년 동안 9번 회의 참석, 4800만원 받아

한진해운의 상황도 다를 바 없기는 마찬가지다. 경영 경험이 없는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2007년에 취임한 후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한진해운의 부실을 키우는 사이, 사외이사들은 최고경영자 결정에 찬성표만 던졌다.

2011년 신조 컨테이너 확보 자금 차입, 컨테이너선 사선 확보 계획안, 벌크선 2척 신조 발주안,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투자 건, 4600TEU 컨테이너선 3척과 케이프 사이즈 벌크선 3척 건조자금 조달 건 등 무리한 투자 안건들이 사외이사 탁상 위로 차례로 몰려왔을 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회사가 현대상선처럼 해운업 호황기 때 해외 선주들과 높은 가격으로 장기 용선 계약을 맺을 때도 숙고하지 않았다.

이처럼 국내 거대 해운사 2곳이 무너지는 동안 사외이사들의 존재이유는 실종됐다. 더욱 심각한 점은 사외이사 중 일부는 이사회에 제대로 출석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의 에릭 싱 치 입(Eric sing chi ip) 이사는 2005년 이후 계속 사외이사를 해왔지만 이사회 출석 횟수는 손에 꼽는다. 그의 연도별 이사회 출석률 최고기록은 2008년의 15.4%다. 2011년 이후에는 이사회에 출석 자체를 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현대상선과 오랫동안 우호적 관계를 쌓아온 홍콩 허치슨 그룹 계열사의 주요 보직을 맡은 사람이다. 회사가 경영전략적 관점에서 그를 사외이사로 위촉한 것으로 추정된다.

◆챙기기만 제대로

제대로 출석하지 않고, 올라온 안건에 찬성도장만 찍어도 사외이사들의 보수는 꾸준히 올랐다. 현대상선 사외이사의 평균 보수는 2007년 3700만원에서 2014년 4300만원으로 14.0% 증가했다. 지난해 사외이사 보수 한도를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 2100만원까지 떨어지기는 했지만, 회사가 기우는 사이 사외이사가 받아 온 보수는 수긍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한진해운의 사외이사 평균 보수는 2007년 3800만원에서 2015년 5800만원으로 34.5% 늘었다. 이에 대해 한진해운 측은 “지난해 8월 사외이사 한 분이 사망하면서 중도 퇴임해 평균 연봉이 높게 보이는 효과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점을 고려해도 지난해 한진해운 사외이사 한 명의 실질 평균 보수는 4800만원이다. 지난해 9번 열렸던 이사회 의안에 한 번 참여할 때마다 사외이사는 533만원을 받아온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상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30대 그룹 180개 계열사의 지난해 이사회 의결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총 4001건의 상정 안건이 열렸지만 사외이사들이 반대한 경우는 7개 그룹 17건에 불과했다. 다수의 이사가 100%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2개 그룹 2건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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