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풍미했던 은행 ‘빅5’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대마불사(大馬不死)’는 덩치나 위세가 너무 거대해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제계에서는 덩치가 큰 기업들이 도산할 경우 파급력이 두려워 부도를 내지 못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90년대 우리나라 금융계를 평정했던 5대 은행인 조흥은행과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은행 등 이른바 ‘조상제한서’도 대마불사의 전형이었다. 금융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 쉽게 망하지 않을 거란 인식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민간은행 최강자

한국 근현대사에서 축이 됐던 은행인 조흥은행은 1897년에 설립된 한성은행을 전신으로 한다. 1903년 공립 한성은행으로 개편된 이후 수차례 인수합병을 거치다가 1943년에 조흥은행으로 개칭,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간은행으로서 은행업계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특히 광복 직후에는 발권은행의 자리까지 넘볼 정도였다.

하지만 1997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외환위기는 이런 조흥은행을 회생불가까지 몰고 갔다. 당시 자산 건전도가 심하게 떨어져 퇴출은행으로 찍혀 버린 것. 이후 퇴출은행인 강원은행과 충북은행, 현대종금을 떠안는 조건으로 공적자금 2조7000억원을 받고 부활하는 듯 싶었으나,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신한금융지주에 매각됐다.

2002년 당시 조흥은행은 착실하게 외자유치 및 일부 계열사 해외매각 등의 계획을 세우는 등 회생의 발판을 닦고 있었다. 하지만 입맛에 맞는 ‘합병을 통한 대형화’를 추진 중이던 정부와 금융당국은 한국 은행 역사의 산 증인인 조흥은행을 신한금융지주에 매각하는 안을 노골적으로 밀고 나갔다.

조흥은행 노사는 강력 반발했다. 신한은행과의 대등합병과, 행명을 조흥은행으로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신한·조흥은행 통합추진위원회의 선택은 ‘신한은행’이었다. 결국 조흥은행은 창립 109년 만에 공중분해됐다.

현재 조흥은행은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존속 법인을 조흥은행으로 정하는 역합병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비록 신한금융지주가 조흥은행을 인수하긴 했어도 역사성만큼은 무시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흔적은 신한은행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한은행 홈페이지에 표기돼 있는 연혁에는 창립연도가 1897년으로 돼 있고, 조흥은행 역사도 속속들이 포함돼 있다. 은행장 회의에서 신한은행장이 최상석에 앉는 이유다. 은행장 회의 좌석 순서는 은행설립연도 순이다.

존속법인으로 합병, 명맥만 간신히 유지
어느 누구도 넘지 못한 외환위기 파고 

조상제한서의 둘째 격인 한국상업은행의 경우 한일은행과 함께 우리은행으로 명맥을 유지 중이다. 현재는 조흥은행의 역사를 물려받은 신한은행과 최초의 ‘민족은행’ 타이틀을 놓고 대결구도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상업은행은 1899년 1월 30일 창립된 대한천일은행을 전신으로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1897년 설립된 한성은행에 이은 두 번째 은행이다. 1878년 일본이 국내에 다이치은행을 진출시킨 이후 제18은행, 제58은행 등을 진출시켜 국내 상권을 잠식시키는 것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은행이다.

대한천일은행은 이후 조선상업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가 해방 후 1950년에 한국상업은행으로 행명을 변경했다. 이전에 수많은 은행을 합병하면서 몸집을 키워왔기 때문에 영향력도 막강했다. 1956년에는 기업 공개를 통해 주식시장에 상장했고 1972년에는 시중은행 최초로 민영화에 성공하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 특히 한국상업은행은 조상제한서 중 가계금융 건전성이 가장 좋은 은행이었다.

승승장구했던 한국상업은행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주요 거래사였던 한양건설과 심미그룹 등이 도산하면서 자산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한국상업은행은 1999년 한일은행과 대등합병을 했고 행명을 한빛은행으로 변경했다. 한국상업은행이 존속법인이었기 때문에 조흥은행과 마찬가지로 역사는 그대로 가져오면서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상업은행과 합병하면서 소멸된 한일은행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한일은행은 1932년 설립된 조선신탁주식회사를 전신으로 한다. 조선신탁주식회사는 1946년 조선신탁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다시 한국상공은행과 합병하면서 한국흥업은행으로 행명을 변경했다. 이후 1960년 정부 지분을 민간에 불하하면서 한일은행이라는 상호를 사용하게 됐다.

◆1+1=우리

최근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의 직장으로 나왔던 한일은행도 다른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수많은 기업과 재벌들에게 제공했던 여신들이 도화선이 돼 망조의 길을 걸은 것이다. 이에 한일은행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1999년 1월 4일 한국상업은행과 합병하면서 한빛은행이 됐다. 이 때 한국상업은행을 존속 법인으로 남기면서 한일은행은 창립 67년만에 소멸됐다. 대신 우리카드 중 비씨카드로 발급되는 카드는 한일은행 쪽 코드를 따르고 있어 명맥은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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