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버릴 ‘거품’일까? 진짜 대안일까?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대선에 도전할 의사가 있는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항상 ‘미소’로만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총장은 가장 강력한 대선 변수다. 여권의 강력한 지지를 기반으로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가상대결에서 그는 야권 대선 후보와 초박빙을 벌였다. 문제는 ‘회의론’이다. “반(潘)의 반(半) 만큼만 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능한 외교관임이 분명하지만 국내 정치경험이 전무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급한 ‘경제’에 대한 조예도 적다. 총선 직후 불거진 ‘김대중 동향 보고’ 논란도 골칫거리다.

2017년 12월 20일, 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이 치러졌다. 총선 후 2주, 대선을 600여일 앞둔 지금 뉴스는 여야 각 정당의 예비후보들 면면과 동정을 부각하고 있다.

전체적인 기상도를 보면 야권은 ‘맑음’, 여권은 ‘흐림’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적지인 TK(대구·경북)에서 압승한 김부겸 더민주 전 의원과 이번 총선에서 측근 16명이 국회에 입성한 손학규 더민주 전 상임고문도 ‘잠룡’으로 거론된다.

미소 속 진심은?

이에 반해 여권 후보 1순위로 거론되던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총선 참패에 책임지고 대표직에서 내려오면서 대선 행보에 먹구름이 꼈다. ‘진박 감별사’를 자청하던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도 선거 참패로 체면을 구겼다. 정치1번지 ‘서울 종로’에서 패배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새누리당 안방인 TK에서 패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대선과 멀어지는 분위기다. 단, 복당을 신청한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4선 고지에 오르며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부분에서 1위로 올라섰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하지만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조해진·류성걸·권은희 의원이 모두 낙선, 걸림돌로 남는다.

불투명한 여권의 앞날에 한줄기 빛을 비춘 인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다. 딱히 이렇다할 대선 후보가 없는 새누리당 곳곳에서 ‘반기문 대망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선후보, 더민주 ‘맑음’ 새누리 ‘흐림’
‘성완종리스트’ ‘김대중 동향 보고’ 발목

사실 반기문 총장은 여권과 야권에서 모두 탐내던 인물이었다. 2012년 치러진 18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내 ‘친이’ 그룹이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로 반 총장을 거론했고, 민주당은 반 총장에게 연고권이 있다고 여겼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민주당에 적을 두던 2013년 8월 반 총장이 방한 중일 때 “반기문 총장은 만약 본인이 원한다고 하면 상당히 경쟁력 있는 대통령후보가 될 것임은 틀림없다”고 말하는 등 민주당은 반 총장을 꾸준히 후보군에 올려 놓았다. 당시 실시됐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반 총장은 문재인 대표, 안철수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김문수 전 의원, 정몽준 전 의원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반 총장이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외교보좌관과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하고 유엔사무총장에 올랐다는 이유로 야권 인사라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 특별한 정치색은 찾기 힘들었다. 이력과 정치성향도 ‘여당 반, 야당 반’, 출마 가능성도 ‘반반’이라는 이유로 ‘반반(半半)총장’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랬던 그가 반반총장에서 친박총장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올해 1월 1일이다. 이날 반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새해 인사 전화통화에서 당시 졸속협상 논란이 뜨거웠던 한일간 위안부협상 타결에 대해 “합의에 이른 것을 축하한다”며 “박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장은 컸다. 국내에서는 협상 무효, 대통령의 사과, 윤병세 외교부장관의 해임안 국회 제출 등이 거론되고 있었고, 일본에서도 외무상이 ‘일본이 잃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10억엔”이라고 말할 정도로 졸속협상이라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반 총장이 그동안 친박계가 보내온 러브콜에 화답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왔다. 친박계는 그간 ‘반기문 대망론’을 주창하고 그 불씨가 약해질 때마다 부채질을 해가며 집권연장을 추진해 왔다. 2014년 10월말 친박계 의원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는 아예 반 총장의 차기 대선출마 가능성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열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친박계 홍문종 의원에 의해 ‘반기문 대통령-친박계 총리’라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카드까지 제시되기도 했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자 ‘반기문 띄우기’는 더욱 힘을 받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이 반기문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충남 홍성·예산이 지역구인 홍문표 새누리당 제1사무부총장은 21일 라디오에 출연해 “반 총장이 국제적인 감각이라든지 이런 면으로 봐서 아주 훌륭한 분이기 때문에 하나의 대상자(대선주자)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자의 ‘반 총장 본인이 의지가 있다고 하면 새누리당이 대선 후보로 영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潘·文·安 상승곡선

앞선 20일 충북 청주·상당이 지역구인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충청도에서 내년에 대통령 후보를 내야 한다”며 “경상도에 큰 인물이 없어 충청 대망론을 이룰 절호의 시기”라고 말했다. 같은 날 충청권 새누리당 당선자 14명이 모인 자리에서도 반 총장이 여러 차례 거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은 충북 음성 출신이다.

‘충청 대망론’은 2013년 충청 인구가 호남 인구보다 많아지면서 여당 내 충청권 의원들이 “이제 충청도에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때”라며 주창하기 시작했다. 충청권 국회의원 의석 수를 늘려야 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충청도를 잡아야 하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영호남 어느 한 곳에서 압승하더라도 충청 표심을 얻지 못하면 최종적으로는 패배한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에서 122석 중 35석을 얻고 텃밭인 대구에서 4석, 부산에서 6석 등을 각각 야당이나 무소속 후보에게 빼앗긴데 반해 충청권에서는 27석 중 절반이 넘는 14석을 차지했다.

여권 잠룡 몰락, 커지는 기대감
충청대망론…반 총장 영입 가속

반 총장이 뜨고 있다는 것은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21일 CBS 의뢰로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양자대결 조사에서 ‘반기문-문재인’ 대결은 문 전 대표가 42.8%, 반 총장이 42.3% 지지율을 기록해 초박빙 접전을 벌였으며 ‘반기문-안철수’ 대결에서는 반 총장이 41.0%로, 32.3%를 얻은 안 대표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의 지지도는 ‘문재인→반기문→안철수’ 순이었고, 광주·전라에서는 ‘문재인→안철수→반기문’순으로 문재인 후보가 모두 앞섰다.

반 총장은 대전·충청·세종과 부산·경남·울산, 대구·경북 등 여당 강세 지역에서 문 전 대표와 안 대표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사진=뉴시스

조사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충분한 승산이 있어 보인다. 반 총장은 충북 음성 출신으로 충청권의 기반을 갖고 있으며 영호남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한국인 최초의 유엔사무총장’이라는 타이틀로 전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또한 반 총장은 유능한 외교관이다. ‘반(潘)의 반(半) 만큼만 해라’라는 말이 아직도 회자될 정도다. 국제 외교가에서는 반 총장에게 ‘반기문 따라하면 명대로 못 사니 아예 따라할 생각을 마라’는 의미의 ‘반반(反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논란도 적지 않다.

반 총장은 이른바 ‘성완종게이트’에 그의 형제와 조카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당시 검찰은 이를 깊이 있게 추적하지 않았지만 지금도 반 총장을 내세운 각종 사조직, 테마주와 관련한 풍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에는 ‘김대중 동향 보고’ 논란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지난 17일 외교부 공개 외교문서에 1985년 하버드대 연수생 시절 미국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감시활동을 했던 전력이 드러난 것.

여기에 국내 정치 실정과 거리가 멀다는 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다는 점, 따지고 보면 반 총장이 국제적으로 그리 높은 평가는 받는 유엔사무총장이 아니라는 점 등의 약점도 있다.

또 1944년생으로 2018년 대통령에 취임하면 75세로 상당한 고령이라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임기가 올해 말 끝나는 터라 이미 대권 준비에 돌입한 대선 후보들에 비해 대선을 준비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도 악재다. 여기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유엔사무총장까지 밀어올린 노무현 전 대통령 측 보다 박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극단적으로 지지층이 갈릴 수 있다는 의미로 작용한다.

각종 논란 설왕설래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반 총장에 대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려면 사표를 내고 국내 정치에 들어와야 한다. 대한민국 백성이 그렇게 간단한 백성이 아닌데, 그 사람이 한국 실정을 모른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라고 얘기하는데 경제에 대해 조예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반 총장은 아직도 대권 도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는 않다. 대한민국의 독특한 정치상황이 그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이고 있을 뿐이다. 기자들이 아무리 꼬투리를 잡으려 해도 여기저기 쏙쏙 잘 피해 다녀 붙여진 반 총장의 별명 ‘기름장어.’ 반 총장이 ‘장어’에 머무를지, 솟구쳐 오르는 ‘용’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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