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10마리에서 재계 38위까지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하림’이 명실공히 ‘재벌’의 반열에 올랐다. 올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것. 대기업 집단 구분을 시작한 이후, 축산업으로 출발한 회사가 대기업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그것도 처음 편입임에도 불구하고 65개 기업 중 38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팬오션을 인수하며 자산 규모를 2배 가까이 불려서다. 병아리 10마리를 시작으로 30년만에 대기업 회장이 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성공신화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3일 ‘2016년 상호출자제한 기업 및 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을 발표했다. 올해 이른바 정부 지정 ‘대기업 집단’으로 분류된 기업은 카카오, 셀트리온, 하림, 금호석유화학, 한국투자금융, 에스에이치공사로 민간기업 5곳과 공공기관 1곳이다. 대기업 분류에서 지정 제외된 곳은 홈플러스와 대성이다.

종합식품사로의 제2도약

주목할만한 기업은 하림이다. 하림그룹은 지난해 6월 해운업체인 팬오션을 인수하면서 자산총액을 기존 4억7000억원에서 9조9000억원으로 불렸다. 회사 설립 30년만에 58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하림은 닭고기 가공업에 중점을 두고 성장한 기업이지만 사료사업부터 농가 운영까지 폭넓게 발을 담그고 있다. 업계가 하림이 국내 닭고기 산업 전체를 주무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는 이유다.

곡물 유통부터, 사료, 최종 육가공제품까지 각 단계를 수직적으로 통합 경영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농업 분야 대기업이 탄생한 가운데 정작 주인공인 하림그룹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면서 일감 몰아주기,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금지 등 새로운 규제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지정 기업집단에게는 공정법을 비롯해 상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대기업 규제법의 적용으로 계열사 간 상호출자, 순환출자, 채무보증, 일감몰아주기 등이 금지되고 금·산분리가 적용되면서 각종 공시의무도 따른다. 또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의무가 더해지고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에 접근이 금지된다.

하림그룹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일감 몰아주기와 지배구조 전환 등이다.

농업기업 최초 대기업 편입
‘농장-공장-시장’ 3장통합

하림그룹은 계열사를 모두 수직계열화한 상태다. 계열사 대부분은 ▲닭, 돼지, 오리 등을 가공하거나 판매 유통하거나 사료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업체다. 지난해 하림그룹에 편입된 해운업체 팬오션은 곡물 유통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밖에 영상물제작 및 판매를 영위하는 ㈜한스컨버전스와 홈쇼핑채널인 ㈜엔에스쇼핑, 교육서비스 업체인 ㈜선진미트아카데미, 할부금융업 등을 영위하는 ㈜에코캐피탈 등도 하림그룹의 계열사다.

문제는 복잡한 지배구조다. 하림은 2개의 지주회사가 얽히고 설켜 있다. 비상자사인 제일홀딩스가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며 다른 상장사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중간에 또 다른 지주회사로 분류되는 하림홀딩스가 존재한다.

제일홀딩스는 하림의 지분 47.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제일홀딩스의 최대주주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8.1%)이며 2대주주는 ㈜한국썸벧(7.4%)이다. ㈜한국썸벧은 1999년 설립된 동물약품제조업체로 김홍국 회장의 아들 준영 씨가 100% 지분을 소유한 올품이 한국썸벧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올품은 하림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 중심에 있다. 실제 올품의 내부거래 비율은 2013년 21.2%(3464억원 중 736억원), 2014년 21%(3466억원 중 729억원)를 기록했다.

하림은 2년의 유예기간 안에 올품과의 내부거래 비중을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하림그룹 측은 “축산기업으로서 처음 대기업 지위를 얻게 되어 영광스러우면서도 축산업 특성에 있어 민감한 규제가 생기게 된다”며 “제일홀딩스 상장 등 다양한 논의를 통해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등 대기업 역할에 맞는 사회적, 법적 역할을 다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림그룹은 병아리 10마리로 시작, 30년만에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외할머니께서 병아리 10마리를 잘 키워 몸보신하라며 주셨다. 미꾸라지와 개구리를 잡고 부모님 몰래 쌀독의 쌀까지 퍼내 정성을 쏟으니 병아리가 잘 자랐고 닭장수에게 2500원을 받고 팔았다. 그 돈으로 병아리 100마리를 샀고, 닭을 사고 또 팔면서 이리농고 시절, 씨닭 5000마리, 돼지 700두를 기르는 농장주가 됐다.”

18세 농장주

김홍국 회장이 <나의 사업 이야기>에서 밝힌 성공신화다. 1957년 전북 익산에서 아버지 김주환 씨와 어머니 이완경 씨 슬하의 4남 2년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북대 농대 교수를, 공주 사범대를 나온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김 회장은 1968년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에 외할머니로부터 병아리 10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온갖 정성을 기울이며 키운 병아리는 닭장수들이 욕심을 낼 정도로 토실하게 자랐고, 김 회장은 이를 팔아 병아리 100마리를 샀다.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돼지와 염소도 키웠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시절 가축에 빠진 김 회장은 집에서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 집에서 10리쯤 떨어진 읍내에 나가 돼지에게 먹일 음식 찌꺼기를 구하는 등의 김 회장의 노력은 결국 ‘네 마음대로 하라’는 허락을 받아 냈다. 이리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김 회장은 본격 사업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내부거래·지배구조 해결 과제도…
규제 쓰나미,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

양계장을 직접 설계·시공해 1000마리가 넘는 닭을 키웠고, 돼지도 30여 마리로 늘리고 볏짚을 남품, 당시 월 수익이 300만원에 이르렀다. 전국영농학생전진대회에 출전해 원예와 축산에 대한 논문을 발표, 상을 받기도 했다. 18세가 되자 김 회장은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자본금 4000만원으로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 ‘황등농장’이라는 이름의 농장을 차렸고 오이와 토마토 등도 키웠다.

학교 앞에는 연일 진풍경이 펼쳐졌다. 40~50대 아저씨들이 10대 농장주에게 결제를 받기 위해 김 회장 교실 앞을 서성였다. 쉬는 시간 김 회장에게 다가간 이들은 서류를 내밀고 사인을 받아 갔다. 집 한 채에 300만원하던 시절, 김 회장은 80만원이나 하는 배기량 250cc짜리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고3시절 김 회장이 사육하던 닭은 5000마리, 돼지는 700두가 넘었다.

시련은 20대 초반이던 1982년 찾아왔다. 돼지와 닭값이 갑작스럽게 폭락하면서 빚더미에 앉은 것. 연이율 60%대 고리 사채까지 써가며 사업을 확장해가던 시절이기에 타격이 컸다. 연일 독촉을 해대는 빚쟁이들을 피해 돼지 막사에서 날을 지새우던 그에게 주변에서는 ‘어린나이에 욕심을 부리다가 당했다’ ‘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러나 김 회장은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막사에 모기장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식품 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6년 만에 사채이자와 원금을 모두 갚았다. 그리고 축산업 대신 가공식품업에 진출했다. 1차 산업인 축산물은 가격 변동이 심해도 2차 산업인 가공 식품은 가격이 안정됐다는 게 이유였다.

김 회장은 1986년 하림식품을 설립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 잇따라 열리면서 양념치킨 체인점이 인기를 끌었고 김 회장은 승승장구했다. 하루에만 2000만~3000만원을 벌 정도였다. 1997년에는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하기도 했다.

두 번째 위기는 1997년 8월 420억원을 들여 전북 익산에 축구장 8개 크기의 육가공 공장을 증축하자마자 찾아왔다. IMF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소비가 위축됐고, 공장 가동률은 바닥을 쳤다. 부도 직전 김 회장은 세계은행(IBRD)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에 투자 유치 신청을 했다. 두 달 뒤 하림은 국내 기업 최초로 IFC의 투자 승인을 받았다. 2000만달러의 자금이 생긴 김 회장은 1999년과 2001년 각각 그린바이텍과 천하제일사료를 설립·인수했다. 농수산물 전문 쇼핑몰 엔에스홈쇼핑도 출범시켰다. 사육과 도계, 육가공부터 사료생산과 유통, 가공식품 유통까지 육계 관련 사업을 수직 계열화한 것. 이는 하림의 ‘농장-공장-시장’의 3장통합 이론의 탄생 배경이 됐다.

한편으로는 규제 걱정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2003년이었다. 조류독감(AI)가 전국으로 번져 닭고기 소비가 급감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익산 공장에 화재가 나 전소된 것. 손실 규모는 1200억원에 달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 김 회장은 돈을 빌리러 은행을 찾아 “공장이 없어져 아예 새로 짓는 것은 생산성 높은 공장을 짓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기회”라고 설득했다. 은행은 김 회장의 말을 들어줬고 대출을 승인, 하림은 다시 탄탄대로를 걷게 됐다.

하림은 육계시장 및 사료시장 국내 1위다. 지난해 국내에서 8억마리, 해외에서 8300만마리를 가공 처리했다. 브랜드 돈육시장 1위, 민간 부문 사료 판매량 1위, 건화물 해상 운송부문 1위를 수성하고 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1957년 전북 익산 출생
1978 이리농림고 졸업
1986년 ㈜하림식품 설립
1990년 ㈜하림 설립
1998년 호원대 경영학과 졸업
2000년 전북대 경영대학원 석사
2001년 하림그룹 회장
2005년 전북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6년 생명사랑하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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