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조짐’만 보이는 ‘베이퍼웨어’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국내 최초 수제 스포츠카 ‘스피라’를 출시하고 돌연 잠적해버린 어울림모터스. 윈도우와 리눅스 모두를 잡아내겠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자멸해버린 티맥스. 두 회사는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걸고 적극적인 애국마케팅을 펼쳤지만 무수한 떡밥만 남긴 채 ‘베이퍼웨어’로 사라졌다. 어울림과 티맥스 모두 간간히 소식을 전해오고 있지만 대중의 관심은 식은 지 오래다.

어울림모터스는 현재 스피라의 후속작인 ‘스피라2’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모형제작에 돌입한다는 소식도 전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스피라2 개발에 기대보다 우려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어울림모터스가 겪고 있는 자금난과 시판을 위한 테스트 등 해결해야 될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스피라 시리즈가 다시 빛을 보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돈이 문제로다

스피라는 2001년 어울리모터스의 전신인 프로토모터스가 공개한 컨셉트카 ‘PS-Ⅱ’를 모태로 한다. 이탈리아의 람보르기니와 영국의 로터스 등 세계적인 수제스포츠카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며 출사표를 던졌다. 자신감과 열정으로 뭉친 프로토모터스의 패기에 많은 사람들은 출시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완성차 생태계에서 프로토모터스는 너무나 영세했기 때문이다. 스피라의 개발을 거의 마무리 지은 프로토모터스였지만 출시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했다. 특히 차량판매를 위해 거쳐야 되는 차량안전검사가 스피라의 발목을 잡았다. 끊임없이 ‘베이퍼웨어’라는 의혹에 시달리면서도 출시 관련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퍼웨어(Vavporware)는 증기라는 뜻의 ‘Vapor’와 재료나 제품을 뜻하는 ‘Ware’의 합성어로 증기처럼 소문만 무성한 채 실체가 없는 제품을 뜻하는 말이다.

▲ 어울림모터스의 ‘스피라’

한국에는 외국과 같은 수제차량용 인증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오직 대량 양산차량용 인증절차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기준이 대기업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즉 차량안전검사 절차인 충돌실험 및 주행시험에 사용할 차량의 수도 대량양산차 기준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차량이 필요하다.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극악의 생산성과 정밀한 조율이 필요한 스포츠카의 특성, 그리고 영세한 자금력이 ‘삼위일체’ 되면서 프로토모터스는 스피라를 시판하기도 전에 부도위기에 몰리게 된다. 물론 기준이 마련돼 있는 해외로 수출 활로를 물색해보기도 했지만 투자금 회수가 안되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벼랑 끝으로 몰렸던 프로토모터스의 손을 잡아준 것은 IT기업인 어울림네트웍스였다. 2007년 어울림네트웍스가 프로토모터스를 전격 인수하면서 자금에 물꼬를 터준 것이다. 어울림네트웍스는 프로토모터스 인수 직후 사명을 어울림모터스로 변경했고 스피라의 발목을 잡고 있던 차량 시험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했다. 그리고 인수 3년만인 2010년 3월 어울림모터스는 스피라를 극적으로 출시하게 됐다.

10년 만에 결실을 맺은 스피라였지만 대중에게 어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개발기간이 너무 긴 탓에 상품성이 떨어졌던 것이다. 특히 엔진의 경우 10년 전 현대자동차에서 개발한 델타엔진을 탑재했기 때문에 경쟁사 대비 2세대 정도 뒤떨어졌다. 쉽게 말해 고속주행을 위해 세팅을한 스피라보다 내구성과 편의에 초점을 맞춘 양산차들이 더 높은 출력을 냈던 것이다. 또 수제 스포츠카의 특성상 고가의 가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수요는 자연스레 줄었다.

국산수제 스포츠카의 무너진 자존심
껍데기만 보여 준 ‘대국민 사기극’

어울림모터스는 스피라 출시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1년 울산에 프레임 공장을 가동시키면서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으나 2012년 10월 박동혁 어울림네트웍스 대표가 횡령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급격히 사세가 기울었다. 또 수리와 사후서비스를 맡고 있던 어울림서비스마저 문을 닫으면서 스피라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회사 대표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것이 화근이었다.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까지 받아 사실상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라며 “자리를 잡은 다음에 여유를 갖고 외연을 넓혔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동시에 회사를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이런 상황을 부른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 티맥스소프트의 ‘티맥스윈도우’

끝까지 스피라를 포기하지 않고 출시까지 했던 어울림모터스와 달리 껍데기만 가지고 대국민 사기극을 펼친 진짜 ‘베이퍼웨어’는 따로 있다. 바로 ‘티맥스 윈도우’를 개발(?)한 티맥스소프트가 그 주인공이다.

티맥스소프트는 정보시스템 구축 종합서비스(SI)업계에서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유명했다. 특히 기업용 시스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업계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잘나갔었다. 하지만 티맥스소프트는 ‘티맥스 윈도우9’을 공개하면서 그 동안 쌓아 올렸던 명성과 신뢰를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운영체제 시장은 국내에서 아무도 개척하지 못한 시장이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진출만 한다면 독점도 가능한 영역이다. 티맥스소프트도 이를 노리고 기습적으로 ‘티맥스 윈도우9’을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결과물은 처참했다. 공개된 티맥스 윈도우9은 단순한 동영상 재생은 물론 인터넷 서핑조차 어려웠고 많은 곳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즈를 베낀 듯 한 흔적도 쉽게 발견됐다. 시연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폐기물’ 수준의 운영체제를 보고 경악했고 ‘국산 OS’만 믿고 투자했던 투자자들마저도 손을 떼면서 티맥스소프트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현재 티맥스 소프트는 새로운 법인 ‘티맥스OS’를 설립하고 다시 운영체제 개발을 시작했다. 오는 4월 공개행사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IT업계에서는 티맥스 윈도우9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OS시장이 과거보다 치열해진 상황에서 티맥스OS의 미래는 더욱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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