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만 못한 800억짜리 운동장

▲ 지난 9월 15일 완공된 고척스카이돔.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 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생활체육을 즐기는 동호인들이 등록인원만 500만명에 이를 정도다. 클럽에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공공체육시설 현황’에 따르면 2013년 기준 1인당 체육시설 면적은 3.8㎡로 선진국 수준인 5.7㎡와는 거리가 멀다. 전국 곳곳에서 체육시설 사용 문제로 갈등이 잇따르는 이유다.

이용문제로 살인까지

지난 5월 청주의 한 체육관에서 배드민턴 동호회원 두 명이 몸싸움을 벌여 50대 남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로 다른 클럽에 소속돼 있던 회원들이 체육관 사용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다 결국 참극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해 7월에는 인천의 공공체육시설의 사용 문제를 놓고 구 생활 체육회와 일부 클럽들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일부 주민들이 구 생활체육회가 체육관 운영 과정에서 월권은 물론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 서로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 이들은 고소·고발전까지 벌이는 등 치열하게 대립했다.

주민과 지역사회의 체육시설 확충 목소리를 반영한 듯, 우리나라 공공체육시설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공공체육시설 수는 2005년 8717개에서, 2008년 1만2342개, 2011년 1만6127개, 2013년 1만9398개 등 8년 만에 6779개(44.9%) 증가했으며 1인당 체육시설 면적도 2005년 1.92㎡에서, 2008년 2.54㎡, 2011년 3.29㎡, 2013년 3.80㎡로 1.88㎡(50.5%) 늘었다.

문제는 관리다. 전국에 설치된 공공체육시설 상당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관리주체가 제각각인데다가 시설 상태는 부실해지고 일부는 시민들의 이용을 제한하는 등 이용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 지난 9월 15일 완공된 고척스카이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야외 운동기구 설치현황’에 따르면 전국 체육시설 7만4716건 중 146건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 총 402건의 지적사항이 발행했다.

지적사항 중에서는 ▲안전시설 미비가 132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관리소홀·자체점검 부실이 9건 ▲매뉴얼 및 지핌 미비가 146건 ▲안전수칙 미준수가 10건 ▲교육 및 훈련 미흡이 91건 ▲기타 14건 등으로 조사됐다. 402건의 지적사항은 중 284건은 현장 시정조치 됐으며 3개월 내 27건이 조치됐다. 그러나 91건은 예산 부족으로 인해 시정이 곤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가 다르게 체육시설이 늘어나는 가운데 관련 문제가 속출하는 것은 해당 지차제장의 전시행정과 시설관리에 대한 홍보 및 운영 미숙 때문으로 풀이된다.

천안야구장이 대표적이다. 성무용 전 천안시장은 처음 당선된 2002년 프로야구장을 건립하겠다는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천안야구장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당시 지방비와 국비를 포함 1300억원이 들어가는 큰 사업이었으나 정부는 2005년 중앙투융자 심사에서 ‘사업 부적절’ 판정을 내렸고 성 전 시장은 사회인 야구장을 짓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환했다. 면적만 13만5000여㎡로 현재까지 투입된 사업비만 780억원에 달한다.

시는 84개 사회인야구단 3000여명과 학생들을 위한 시설이 필요했다고 설명했으나 사업비의 70%에 해당하는 540억원이 토지보상금으로 투입됐다는 점과 부지 선정 후 주변 녹지가 주거단지로 바뀌어 땅값이 급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갖가지 의혹에 휩싸였다.

체육시설 꾸준히 증가세, 관리는 부실
사업비 780억원 중 토지보상비 540억원

해당 부지의 원래 땅 주인은 모두 25명으로 1명당 평균 21억5000만원의 보상비를 수령했다. 특히 A씨와 B씨 가족이 무려 340억원 가량을 독차지했다. 일부 시의원과 시민단체에서 특정인의 땅을 매입하기 위한 ‘목적사업’ 의혹이 짙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청주시가 충북도민체전을 치르기 위해 70억원을 투입해 정비한 청주종합운동장은 불과 2년 만에 또 다시 재정비 공사키로 하면서 ‘혈세 낭비’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청주시는 내년에 6억33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종합운동장 규격을 현재의 105m×64m에서 105m×68m로 확장키로 했다. 시는 내년 2013~2014년 도민체전 육상 경기 개최를 위해 운동장을 정비했었으나 내년에는 축구경기 유치를 위해 공식 규격의 축구장으로 재정비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는 2013년 시의회 관련 예산안 심사에서 105m×64m 규격이면 일반 생활체육 국구경기는 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으나 실측 결과 105m×62.5m에 불과해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시의회는 밝혔다. 2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 행정으로 7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게 된 것이다.

3000억원에 가까운 공사비를 들여가며 만든 고척돔도 혈세 낭비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07년 설계 당시 하프돔으로 건설비 400억원이 투입됐으나 이후 완전 돔구장 형태로 전환되면서 공사비는 5배를 훌쩍 넘었으며 공사기간도 계속 늦춰져 7년이 걸렸다.

더워도 추워도 야구를 할 수 있는 돔구장이 생긴 것은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보완점이 많다. 결정된 것은 넥센이 내년부터 고척돔에서 팬들을 만난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행자부, 공공시설 관리 현황 내년부터 공개
수백억 들인 체육관 이용객, 하루 평균 1.5명

불펜은 좁고 불편한 계단으로 이동해야 하며 돔 천장 색깔 때문에 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그아웃은 뚜껑이 없이 노출돼 있어 안전문제가 심각하고, 전광판은 너무 작아 글자 분간이 힘들 정도다. 여기에 ‘돔구장에 가려면 기저귀를 차고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관중석 의자는 빽빽하고 엘리베이터와 주차공간도 부족해 심각한 교통난이 예상된다. 여기에 돔구장이 위치한 서울시 구로구 고척동은 상습정체구역인다가다 도로 폭이 좁아 차량을 가지고 이용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은 안양천변에 주차장 부지를 확보하고, 주차비를 올려 대중교통을 유도하겠다는 복안이지만 최근 가족 단위 관중이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안성종합운동장과 파주스타디움, 김포생활체육관, 산성실내배드민턴장 등 경기도 내 공공체육시설에서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지방자치단체 공공시설 운영현황 자료에 따르면 113억원이 투입된 안성종합운동장의 지난해 이용자 수는 550명에 불과했다. 하루 평균 1.5명이 찾은 해당 운동장을 안성시는 관리인력 3명과 운영비 1300만원을 투입하며 운영했다.

파주스타디움의 경우에는 하루 평균 9.6명이 방문했다. 연간 이용객은 3540명. 2004년 725억여원이 투입돼 지어진 파주스타디움은 연간 3억4000만원의 운영비를 써왔다.

하루 평균 13.7명이 찾은 김포생활체육관은 매년 2억3000만원의 운영비가 소요되고 있으며 산성실내배드민턴장의 경우에는 하루 평균 방문객 20.1명을 위해 연간 1억5500만원을 썼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치단체장이 자신이 치적쌓기 등 전시행정 차원에서 사업을 막무가내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데 반해 사업성과 등의 검토는 물론 건립 후 홍보나 운영 미숙 등 경영전략 부재까지 맞물려 실질적 성과는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행정자치부는 지어진 시설을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관리하고, 예산낭비는 막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시설 현황을 내년부터 공개할 계획이다. 기초자치단체는 100억원 이상, 광역자치단체는 200억원 이상 들어간 시설들은 상세한 내용을 지방재정정보홈페이지에 올려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한다.

보여주기식 행정

대상은 공립도서관과 박물관, 미술관, 문화예술회관과 청소년수련회관과 같은 문화시설을 비롯해 공립운동장과 육상경기장, 야구장, 축구장, 수영장 등 체육관, 종합사회복지관 등이다.

정재근 행자부 차관은 “지방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부 공공시설의 방만 운영으로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며 “지방재정 투자사업의 사전심사를 강화하고 시설 운영현황도 전면 공개해 재정건전성을 제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중기획-혈세가 샌다>연재를 마치며

<파이낸셜투데이>에서 2015년 연중기획으로 준비한 ‘혈세가 샌다’가 19회로 1년간의 연재를 마쳤다.

지난 3월 ▲空연장으로 전락한 지방 중소도시 문예회관을 시작으로 ▲경제적 타당성과 접근성을 무시한 채 지어진 KTX역사 ▲세금으로 황제의 삶을 누리는 전직대통령 ▲고철덩어리로 전락한 경전철 ▲배보다 배꼽이 큰 호화청사 ▲만들고 보는 기념공원 ▲국책은행의 무분별한 자금지원 ▲뒤로 가는 한강르네상스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보도블록 교체 등 정부와 전국 지방차치단체의 혈세낭비 현장을 꼬집었다.

1년간 들여다본 세금낭비 실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조성된 예산 상당액이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주민들을 위해 지어진 공공시설들은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고 ‘일단 하고보자’식 사업과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 적인 행정으로 눈 먼 돈이 급증했다.

예산을 줄이거나 늘리는 칼잡이 역할을 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386조로 예상했다. 그리고 최근 각 지자체는 내년도 예산을 확정짓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내년 경기전망은 여전히 암울하다. 응답자의 75.7%가 국내 경기를 장기형 불황으로 평가하면서 상당수가 긴축경영을 하겠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인들도 내년 경기 전망을 어둡게 내다보고 있다. 2016년을 전망하는 사자성어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의미의 ‘동주공제(同舟共濟)’로 꼽을 정도다.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위해선 낭비를 줄여야 할 때다.

물론 완벽한 예산편성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효율적 예산편성을 위해 시행중인 예비타당성조사를 확대하고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을 축소해야 한다. 기득권을 보유한 부서와 기획재정부, 국회가 권한을 내려놓고 합리적인 논의 및 검증을 수행하는 기구를 설립하거나 기존 기관의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 특히 일각에서 제기되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예산에 국민들의 ‘입김’이 작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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