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한미약품의 ‘조 단위’ 기술수출 소식에 새삼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 경제의 영광을 이끌었던 조선업체들이 천문학적 적자를 계기로, 재계에는 더 늦기 전에 기존 사업 구조를 뜯어 고쳐야 할 때라는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팽배한 상황. ‘미래 먹거리’ 발견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대한민국 10대 그룹 R&D 투자의 현주소를 정리했다.

국내 10대 그룹이 벌어들이는 돈 중 평균 3%를 연구개발(R&D)에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별로는 롯데그룹이 R&D 투자에 가장 소극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가장 적극적인 곳은 삼성그룹이었다.

21일 <파이낸셜투데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분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0대 그룹 소속 94개 상장사 중 금융이나 전업 지주사 등과 연구개발비를 별도로 공시하지 않은 28개 회사를 제외한 66개사의 올 3분기(누계기준) 연구개발비는 총 22조9689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동기(22조8867억원)와 비교하면 0.36% 증가했다.

같은기간 이들 업체의 매출은 총 747조2786억원. 이를 기준으로 비교한 연구개발비 비율은 3.07%다. 국내 10대 그룹이 벌어들인 돈이 1000원이라면 그 중 30.7원이 R&D에 투입되고 있는 셈이다.

롯데, ‘쥐꼬리’ 투자

10대 그룹 중 R&D 비용에 가장 인색했던 곳은 롯데그룹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규모가 10대 그룹 평균인 3%대는커녕 1%를 넘는 곳 한 군데도 없었다.

롯데그룹 소속 8개 상장사 중 조사 대상인 6개 계열사의 올 1~3분기 연구개발비는 576억원으로, 이 기간 해당 기업들의 매출 35조5675억원과 비교하면 0.16%에 불과했다. 즉, 벌어들인 돈이 1000원이라면 롯데그룹은 R&D에 채 2원도 쓰지 않는 셈이다.

롯데그룹의 연구개발비 비중이 이처럼 낮은 이유는 그룹 내 ‘캐시카우’인 유통업체 롯데쇼핑의 영향이 크다. 롯데쇼핑은 21조6473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연구개발비 지출은 겨우 23억원으로, 매출 대비 비중은 0.01%에 불과했다.

다른 계열사들은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았지만 이들의 연구개발비 규모 역시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들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롯데칠성음료 0.21% ▲현대정보기술 0.29% ▲롯데제과 0.38% ▲롯데케미칼 0.38% ▲롯데푸드 0.79% 등으로 모두 1%를 밑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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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에 이어 연구개발비 규모가 작은 곳은 GS그룹이었다. GS그룹 소속 8개 상장사 중 조사 대상인 5개 계열사의 연구개발비는 390억원으로, 이 기간 해당 기업들의 매출 12조6619억원과 비교하면 0.31%에 불과했다.

롯데그룹과 마찬가지로 GS그룹 역시 대표 유통업체의 연구개발비가 적었던 영향이 컸다. 편의점 GS25의 운영사인 GS리테일은 4조6167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동안 R&D에는 17억원만을 투입했다. 이는 매출 대비 0.04%에 불과하다.

이밖에 코스모화학, 삼양통상, GS건설 등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 역시 각각 0.10%, 0.12%, 0.44% 등으로 1%를 넘기지 못했다. 그나마 코스모신소재가 3.37%를 기록하며 유일하게 10대 그룹 전체 평균을 넘겼다.

그 다음으로 현대중공업그룹이 R&D 규모가 작은 그룹에 꼽혔다. 현대중공업그룹 소속 3개 상장사 중 조사 대상인 2개 계열사의 연구개발비는 1837억원으로, 이 기간 해당 기업들의 매출 38조7438억원과 비교하면 0.47% 수준이었다.

중심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은 매출(35조926억원) 대비 0.51%인 1794억원을, 현대미포조선은 매출(3조6512억원) 대비 0.12%인 43억원을 R&D에 쓴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위엄

반면 R&D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난 곳은 삼성그룹이었다. 특히 국내 대표 수출 업종으로 자리 잡은 IT·전자와 자동차 계열사를 보유한 LG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등도 R&D에 많은 돈을 쓰는 그룹에 꼽혀 눈길을 끌었다.

삼성그룹 소속 16개 상장사 중 조사 대상인 10개 계열사의 올 1~3분기 연구개발비는 12조2045억원으로, 이 기간 해당 기업들의 매출 183조96억원과 비교하면 6.65% 수준이었다.

특히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R&D 투자로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의 연구개발비 11조1017억원은 10대 그룹 전체의 48.33%에 달한다. 즉, 국내 10대 그룹 전체의 R&D 투자 중 절반 가까이가 단일 계열사인 삼성전자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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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에 이어 연구개발비 규모가 컸던 곳은 LG그룹이었다. LG그룹 소속 12개 상장사 중 조사 대상인 9개 계열사의 연구개발비는 4조8946억원. 해당 기업들의 매출 97조2433억원과 비교하면 5.03% 규모였다.

3위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차지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소속 11개 상장사 중 조사 대상인 8개 계열사의 연구개발비는 2조9833억원으로, 해당 기업들의 매출(164조1233억원)과 비교하면 1.82% 수준이었다.

이밖에 그룹들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는 ▲SK그룹 1.77% ▲한진그룹 1.32% ▲포스코그룹 0.61% ▲한화그룹 0.60% 등 순이었다.

한미약품, 확실한 R&D 성공모델 제시

한미약품이 올해 들어 글로벌 빅파마를 포함한 해외 제약사와의 대규모 기술이전 성공에 따른 기술수출 계약액은 약 7조8000억원(비공개 제외) 규모. 이는 2013년 기준 국내 제약산업 시장규모
19조3000억원의 40%에 해당되는 사실상 단일법인이 올린 천문학적인 수치다.

국내 10대 제약사의 연구개발(R&D) 비중은 매출액 대비 8%인 반면 한미약품은 지난해의 경우 매출 대비 20%를 투자했고 올해 상반기에만 매출의 21%인 946억원을 투입했다.

현재 국내외에서 진행되는 한미약품의 R&D 프로젝트는 26건. 개발 신약 종목 선정은 시장성을 기준으로 결정하고 가능성이 높은 신약에만 투자를 집중했다. 즉, 유망한 분야를 선택함으로써 적은 연구비로 최대의 효율을 얻었다는 평가다.

또 초기 임상단계에서 라이센싱을 진행하는 스피드 R&D 전략을 써왔다. 의약품 전체 개발비의 절대적 부분을 차지하는 임상 실험 전에 최대한 제품의 가치를 올려서 필요한 회사에 제값을 받고 라이센싱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처럼 한미약품의 성공은 적절한 전략으로 실익은 챙기는 가운데 뒷받침 된 과감한 투자 덕분이었다. 기라성 같은 대기업들 사이에서 빛난 한미약품의 R&D는 재계 전반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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