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신혜정 기자] 저성장·저금리 시대와 불경기를 틈타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유사수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는 최신 정보기술(IT)과 해외 선진 투자기법을 내세우며 그럴싸한 사업인 것처럼 포장해 투자자를 유인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양상이다.

유사수신은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행위를 말한다. 원금 보장은 물론 시중 금융권보다 훨씬 큰 이자를 준다고 꾀어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마구 불리는 경우도 많다. 서울남부지검이 최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벨류인베스트코리아(VIK)의 불법 투자금 유치 사건은 불법 유사수신의 진화상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29일 검찰에 따르면 기소된 이철(50) 대표 등 3명은 인터넷에서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자금을 모아 부동산이나 비상장 주식, 연예사업 등에 투자한다고 홍보하면서 3만여명으로부터 투자금 7000억원을 끌어모은 혐의를 받고 있다.

투자금 가운데 1580억원은 투자자들에게 원금 보장까지 약속하며 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은 업체가 원금 보장 등을 내세워 투자금을 받는 행위는 유사수신에 해당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군중(crowd)에게서 자금을 모은다(funding)는 뜻으로, 인터넷 시대에 자주 활용되는 투자 방식이다. 예술가나 시민사회단체 등이 특정 프로젝트 등을 수행할 자금을 모으려 할 때 쓰이면서 사람들에게 친숙한 용어가 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최신 금융기법이 유사수신과 같은 불법 투자금 유치에 악용되는 사례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 크라우드 펀딩 업체는 25만원을 기부하고서 신규 참여자 2명을 끌어오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기부금이 두 달 만에 최대 35억원에 이를 수 있다며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가 적발됐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수로부터 투자금을 모으고 이를 필요한 이에게 빌려주는 P2P(개인 대 개인) 대출, SNS나 빅데이터 등 최신 IT 기법을 금융에 접목한 핀테크 등도 유사수신 업자들이 투자자를 유혹할 때 내세우는 최신 금융기법이다.

이같은 유사수신은 투자자가 계속 불어나는 초반에는 신규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아 앞선 투자자들에게 일부 수익을 돌려주는 ‘돌려막기’로 안심시키기도 한다. 여기에 ‘재미’를 본 일부 투자자들은 큰 수익을 기대하며 계속 더 많은 액수의 투자금을 낸다.

하지만 제대로 된 투자로 지속적인 수입을 낼 수 없다는 한계가 뚜렷한 이상 이런 돌려막기도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끝내는 투자액을 돌려받지 못한 일부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업체를 고소하는 것으로 대개 파국을 맞이한다.

전문가들은 유사수신이 최신 금융기법까지 빌리면서 계속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데는 저금리와 불경기라는 사회적 요인도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주식이나 부동산은 불안하고, 정식 금융권에 돈을 맡겨도 이자 수입이 미미한 상황에서 새로운 재테크 기법을 내세우며 큰 수익을 제시하는 유사수신에 투자자들이 혹하기 쉽다는 얘기다.

유사수신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대통령 통치자금이나 전·현 정권의 비자금을 관리한다고 속이고서 이를 공식 자금으로 세탁하는 비용을 주면 큰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사기 수법도 불경기를 틈타 많은 피해자를 낳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새로운 재테크 방식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수록 ‘이런 식의 투자도 가능하겠구나’라며 욕심을 부리게 된다”며 “유사수신 업체는 초반에 일정액의 이익을 실제로 되돌려주는 등 투자자들의 기대를 확인시켜 줄 장치를 철저히 마련해 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저성장·저금리 시대와 인터넷 환경이 새로운 유사수신 수법을 등장시키는 한 환경이 됐을 것”이라며 “더불어 불경기에 단기간 큰 수익을 기대하는 심리도 투자자들이 유사수신에 뛰어드는 한 요인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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