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의 아버지’ vs ‘反민족행위자’

[파이낸셜투데이=이혜현 기자] 이승만 전 대통령 사후 50주기를 맞은 2015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승만이 바람처럼 사라진지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한반도를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구해낸 ‘구국의 아버지’라고 추앙하며 이승만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친일·친미주의자로 12년간 독재를 한 ‘반민족행위자’라고 규정하며 그의 실체를 정확히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자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씻을 수 없는 오점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임시정부 시절 독립운동 자금을 두고 임시정부 인사들과 갈등을 빚다 탄핵위기에 몰렸고 해방 후에는 친일파들을 대거 등용해 대통령이 되기 위한 발판으로 이용했다. 영구집권을 향한 그의 권력 의지는 급기야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사태로 비화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망명지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지 50년이 흘렀지만 그의 망령은 좌·우 논쟁의 한복판에서 떠돌고 있다.

◆이승만 망령 부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역사학계 주류에서는 이승만 정권이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등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독재 정부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에 대해 최근 보수 진영은 ‘건국의 아버지’를 홀대해 왔다며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일부 보수단체와 정치권에서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초석을 마련한 업적이 재평가 돼야하고 이 같은 내용이 국정교과서에 담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이를 역사왜곡으로 규정하며 맞서고 있다. ‘이승만 재평가 논란’은 국정교과서 이슈와 맞물려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며 역사학계와 정치권, 시민사회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월 17일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주최로 개최된 이승만 대통령 서거 50주기 추모식에서 참석한 일부 정치인들의 발언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 단적인 사례다.

이날 행사에 정의화 국회의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박승춘 보훈처장 등 약 8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부 여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들은 해방 후 극도의 혼란 속에서 건국을 이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이 부각돼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의 포문을 연 것은 이 전 대통령의 추모사를 낭독한 김무성 대표였다.

김 대표는 추모사에서 “한국 현대사의 성숙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성숙해져야 한다”며 “우리 후손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흠결을 파헤치고 드러내는 데만 골몰했을 뿐 그의 역사적 공로를 인정하는 데는 몹시 인색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이 안 계셨으면 우리나라 건국이 안 됐고 우리는 지금 공산 치하에 있어야 된다”며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우리 국민의 국부이고 그에 상응하는 예우가 이제는 돼야 한다. 그것을 위한 노력을 지금부터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지난 8월 LA동포 간담회에서 “좌파세력이 준동하며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며 “역사 교과서를 국정 교과서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김 대표의 발언이 헌법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올바른과거청산을위한단체협의회는 “이 전 대통령을 국부라 칭하면 헌법의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해방 후 친일파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3·15 부정선거로 하야한 수치스러운 대통령을 어찌 국부라 칭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역사학계와 교육계에서는 남한단독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절로 규정, 독재를 미화하는 방향으로 교과서가 기술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더구나 1948년을 건국의 해로 간주하는 것은 대한민국 건립을 임시정부 때로 정의하고 있는 헌법 전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역사적인 평가는 이미 끝났다”며 “박정희 정부 시절인 3차 국정교과서부터 현행 검정교과서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판단은 오랜 시간 공론화를 거쳐 역사학계의 다수 견해로 기술돼 왔는데 건국의 업적을 추가로 기술하는 국정교과서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정리된 역사를 되돌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공산화 막고, 자유민주국가 기틀 마련
VS
재평가? 어림없는 소리! ‘죄평가’ 돼야

◆영웅 vs 역적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될 때부터 지금까지 좌·우 양 진영은 노선의 차이와 독립운동자금 유용 문제, 남한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해석을 두고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3·1운동 직전인 1919년 2월 25일 국제연맹에 조선의 위임통치를 청원해 임시정부를 발칵 뒤집어 놨다. 이는 외세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국가를 세우는 것을 주요 기치로 내세운 임시정부의 기조와는 정반대의 행보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의정원 전원위원회 위원장을 사임하며 이승만 체제의 임시정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당시 신채호 선생은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고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는 말을 남기며 반이승만·반임시정부 투쟁에 나섰다.

이 전 대통령은 미국 동포들로부터 받은 독립운동자금 80%이상을 개인 외교 활동비용으로 사용하면서 내각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독립운동 자금 사적유용 문제로 1925년 3월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직에서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이와 관련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지도자가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적인 도덕성과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임시정부 수장이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수치”라고 일갈했다. 이어 “한민족의 비극과 시련은 이승만이 권력을 잡으면서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박한용 홍보실장은 “이 전 대통령의 부도덕성과 독선이 불러온 임시정부의 내홍은 결국 독립운동 세력이 뿔뿔이 흩어져 민족의 자주독립 실현을 좌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김광동 이승만연구소 원장은 “개인의 일부 오점을 확대해서 부각시키시는 것은 잘못”이라며 “어느 위대한 영웅도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인물은 없다”고 반박했다. 김광동 원장은 “대한민국의 영웅의 치부를 들춰내는 것 보다 위대한 업적을 부각시켜 역사적 자긍심을 높여야 한다”며 “봉건사회에서 벗어나 근대산업사회로 나아가는데 기여한 점,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한 점, 한반도 공산화를 막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업적은 높이 사야 한다”고 강조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보수와 진보진영의 평가도 상반된다. 보수주의자들은 해방 후부터 활개를 치던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이 전 대통령이 일찍이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해 한반도 공산화를 막았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절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측은 “소련과 김일성이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이 전 대통령이 자유주의 세력과 함께 앞장서서 막아냈다”고 평했다.

과도기 과정에서 비롯된 ‘미성숙성’일 뿐
VS
거꾸로 가는 역사…친일·독재 미화 그만!

◆학계평가 훼손 안 돼

반면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이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고자 했던 개인의 욕심 때문에 남북으로 분열된 세력을 통합하려는 시도나 노력도 없이 단독정부를 수립했다”며 “한반도 분열을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평가했다.

박한용 홍보실장은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 시키고 친일파들을 대거 등용한 행위와 사사오입개헌, 3.15 부정선거 등을 자행하며 헌정질서를 파괴한 것은 역사와 민족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범죄”라고 주장했다. 이어 “친일·독재를 미화시키려는 일부 보수 세력들의 시도는 역사에 대한 쿠데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광동 원장은 “자유민주주의로 발돋움하기 위한 과도기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미성숙일 뿐 독재가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김광동 원장은 “서구에서는 민주주의가 정착하기까지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단 몇십년 만에 자유민주국가를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다소 부작용이 있었지만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이 땅에 뿌리내린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수와 진보가 이승만이라는 한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접점을 찾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극명하게 대립되는 가운데 김일한 동국대학교 DMZ평화센터 연구원은 “한국 근현대사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다른 해석을 할 수는 있다. 이는 토론의 장에서 공론화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다만 정치적 해석이 역사학자들의 연구와 고증을 통해 점철된 학계의 입장을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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