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외길인생…초심 지켜온 삶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재야 변호사로 30년 간 외길인생을 걸어 오면서 무수히 많은 설움과 아픔을 겪었다. 판사와 검사, 변호사는 같은 법조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관 출신이거나 담당 판·검사와 학연이 있는 상대 변호사를 만났을 때는 부당한 차별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그는 “오로지 법과 양심에 의해서만 이뤄져야 하는 게 재판이지만, 대한민국 법조계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다. 폐단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맞서 싸우고 있는 하창우 회장을 만나 진솔한 얘기를 들어봤다.

하창우 회장은 지난 2월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제48대 협회장으로 취임했다. 든든한 배경이나 화려한 이력은 없다. 그런 그가 사법개혁의 칼을 빼들 수 있었던 것은 정의가 살아있는 법조계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 회장은 법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일부 법조계의 뿌리 깊은 권위의식과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다. 그의 개혁적인 행보를 반대하는 외압도 있었지만 결의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17일 대한변협 회관에서 만난 하 회장의 눈에서는 사법개혁에 대한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Q.취임 1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동안 이행한 공약을 자평한다면?

대한민국 법조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전관예우’ 해결을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세웠다. 전관예우는 법조계 비리의 결정판으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관비리’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전관이라는 특수한 지위를 이용해 손쉽게 거액의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관 출신이라는 것이 하나의 연줄로 작용해 판·검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재판 결과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이는 사법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주요인이다. 사법부의 최고 수장들이 퇴직 이후 거액 사건을 수임하는 행태가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 법조계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지난 3월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를 대한변협이 반려하면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전관예우 문제가 전면으로 부각됐다. 대한변협은 대법관에서 퇴임한 사람이 변호사 개업을 막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에 취임한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으로부터 퇴임 후 영리목적의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확인했다. 부디 두 명의 대법관들이 약속을 지켜 전통으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 아쉬운 점은 사법시험 존치법안 통과가 생각보다 빨리 진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Q.사법시험 존치법안이 발의됐다. 사법고시와 로스쿨이 계속 병행체제로 가야한다고 보나?

서로 견제하면서 병행하는 체제로 가야한다. 사법고시와 로스쿨 모두 장단점이 있다. 사법고시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제도로서 학력과 출신, 배경과 무관하게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다. 하지만 고시낭인을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바로 이러한 사법시험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게 로스쿨이다. 하지만 로스쿨은 고위층 자녀들의 전유물이자 귀족학교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로스쿨은 이미 법조인 양성제도로서 자리 잡았다. 로스쿨 제도가 가지고 있는 단점이나 미비점은 보완해 사법시험제도와 병행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대한변협 로스쿨발전위원회애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사법시험은 서민의 아들, 딸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기회로 통용되고 있다. 사법시험은 그 나름대로의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치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Q.우리 국민들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OECD 42개국 중 대한민국의 사법신뢰도는 최하위권인 39위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의 장벽이 높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법이 만인에게 공평하고 정의롭게 운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국민들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사법개혁 기치를 내걸고 전관예우 타파를 최우선 과제를 내세운 것도 바로 이런 국민들의 사법 불신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사법부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최후의 보루다. 사법제도 존립의 기본은 국민의 신뢰다. 이것이 무너지면 법이 바로 설 수 없다. 오래전부터 사법개혁이 이뤄져야한다는 국민적, 시대적 공감대가 형성돼 왔지만 기득권은 자기 손에 있는 권력을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로 착각하고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전관예우는 전관‘비리’ 절대 용납 못해
‘무전유죄 유전무죄’ 사법 불신의 원흉
무소불위의 검찰, 견제 받지 않는 권력
법관순혈주의, 폐쇄적 엘리트주의 타파

Q.헌정 사상 처음으로 시행되는 ‘검사평가제’, 검찰조직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제도의 본래 취지대로 정착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검찰처럼 막강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사법기관은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한민국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다. 그 결과 피의자에게 유죄의 정황이 있어도 검찰이 자의적으로 기소를 하지 않는 기소편의주의와 윗선의 지시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명하복의 복종관계인 검사동일체원칙 등의 폐단이 고착화 됐다. 수사권과 공소권이라는 칼날을 양손에 거머쥔 검찰조직을 견제하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다. 검찰이나 법원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종 외압에 무수히 시달렸지만 결코 타협하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사법개혁에 대한 결의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동안 검찰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으로 군림해왔다. 그렇다보니 변호사들이 검사를 평가한다는 것에 대해 검찰의 반발이 심하다. 하지만 변호사만큼 검찰을 견제하기에 적정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우선 변호사는 특정 수사사건에서 검사와 접촉이 가능하다. 피의자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담당 검사의 수사과정을 직접적으로 지켜보며 감시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검찰 조직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최근 8년간 검찰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사람이 100명이 넘고 올해만 17명에 달한다. 이는 국민들에 대한 검찰의 인권침해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검사평가제는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무리한 수사를 진행한 검사를 견제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지만 이와 반대로 적법절차를 준수한 검사들에 대해서도 평가한다. 내년 1월쯤 우수검사 명단을 공개하고 하위검사는 명단공개 대신 개인과 검찰에 통지하되 그 사례를 언론에 공개할 계획이다.

Q.사법기관의 폐쇄적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돼 온 법조일원화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우선 대법관들의 구성에서 다양화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 대법원 대법관 14명 중 13명이 법관 출신 1명이 검찰출신이다. 법관 폐쇄성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오로지 법관의 시각으로만 판결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 대법원은 너무 보수적이다. 법관 출신만을 고집하는 ‘법관순혈주의’가 뿌리 깊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3년간 법조 경력 있는 자를 법관으로 임명하는 현행 제도가 변칙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후관 예우’다. 로클럭(재판연구원, 판례 해석 및 연구 담당) 출신들은 법관으로 임명될 것이 유력 시 되기 때문에 대형로펌들은 이들을 ‘모시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결론은 재야에서만 활동한 변호사들만이 법관임용 대상자로 선정돼야 한다.

Q.2017년부터 법률시장이 개방돼, 외국계 로펌과 국내 로펌과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변호사업계의 상황은 어떤가?

실제로 프랑스나 독일의 사례를 보면 법률시장 개방 후 토종 로펌 90%이상이 영미법계 대형로펌에 흡수, 합병됐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대형 로펌의 공격에 국내 토종 로펌들이 얼마나 방어해 낼 수 있을지가 큰 문제로 남아 있다. 현재 대한변협은 국내로펌의 지분율이 50% 이상인 외국계 합작 법인만 국내 법률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법무부와 협의 중에 있다. 이제는 우리 로펌들이 국내시장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외국에 법인을 둔 우리기업들이 국내 로펌이 아닌 현지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들을 선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내 로펌들이 해외시장 진출에 대해 좀더 전향적인 태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Q.법조인이 나아가야할 이상향이 있다면?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초창기 변호사 시절 법조계의 모순점들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법부의 엘리트주의와 권위주의는 정말 잘못된 것이다. 판검사들이 법정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양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변호사들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며 반드시 이를 고치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이 법조인으로서 나의 사명이었다. 대한변협 회장에 당선되자마자 법관, 검찰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 것도 지난날 우리 법조계의 잘못된 점을 직접 체험하며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Q.인생의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大天明)이다. 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전형적인 엘리트 법조인의 코스를 순조롭게 밟아온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재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학과 입학했고 사법시험도 5번의 낙방 끝에 합격했다. 판검사로서의 화려한 이력도 없다. 30년간 오로지 재야 변호사로서 활동한 경력이 전부다. 한번 목표로 설정한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열심히 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고난과 시련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뛰어넘어야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지고 발전할 수 있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프로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위원

▲現 제48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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