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성적 뒤 드리운 그림자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물건을 만들어 파는 기업들에게 ‘외상값’ 관리는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영업이 잘 되면 ‘어음’도 늘어나기 마련이지만 지나치게 쌓일 경우 자칫 독이 위험도 생긴다. 결국 물건을 잘 팔면서도 외상 규모는 안정적으로 관리해 내는 것이 관건. 10대 그룹 제조사들에 쌓인 외상값이 90조원에 육박하며 실적 관리와 함께 매출채권 조절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이 아직 받지 못한 외상값이 올해 들어 6개월 사이에만 1조7000억원 늘며 9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 국내 대표 수출기업들이 속한 그룹들에 쌓인 외상 규모가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해 우려를 자아냈다.

9일 <파이낸셜투데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0대 그룹 소속 92개 상장사 중 금융이나 전업 지주사 등 제조사가 아닌 15개 회사를 제외한 77개사의 올 2분기 말(6월 30일) 기준 매출채권은 총 88조313억원으로 전년 말(12월 31일) 86조2788억원 대비 1조7525억원(2.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매출채권은 기업의 주된 영업활동과정에서 재화나 용역을 판매하는 것과 같은 수익창출활동으로부터 발생한 채권을 의미한다. 즉, 매출채권이란 기업의 경상적 영업활동인 재화의 판매 및 용역의 제공과 관련된 신용채권으로 외상매출금과 받을어음이 이에 해당한다.

즉, 매출채권은 회사가 받아야 할 외상값이다. 1년 안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인 유동자산 안에 포함되지만, 아직 받지 못한 돈이기 때문에 액수가 크고 유동자산 내 비중이 커질수록 시장 침체 등 위기 상황에서 사측의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또 떼일 경우에 대비해 쌓아두는 비용인 대손충당금을 마련해야하기 때문에 기업에 손해가 된다.

◆삼성·현대차·LG ‘골머리’

아직 받지 못한 외상값이 가장 많이 쌓여 있는 곳은 삼성그룹이었다. 특히 10대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외상값의 1/4 이상이 삼성그룹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삼성그룹 소속 제조업 상장사 12곳의 올 2분기 말 기준 매출채권은 25조3380억원으로 집계됐다. 24조4652억원을 기록한 전년 말과 비교하면 8728억원(3.6%) 증가한 것이다.

이같은 삼성그룹의 매출채권 규모는 10대 그룹 전체의 28.8%에 달한다. 10대 그룹이 아직 받지 못한 전체 외상값이 1000억원이라면 이 중 288억원이 삼성그룹 내에 있는 셈이다.

계열사 별로 보면 삼성전자의 매출채권만 20조원을 넘어서며 다른 계열사들을 압도했다. 삼성전자의 매출채권은 20조6916억원으로 같은기간(18조9408억원) 대비 1조7508억원(9.2%) 급증했다. 올해 들어 6개월 만에 1조7000억원이 넘게 증가하며 외상값이 20조원을 돌파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공동운명체’인 전자, IT관련 타 계열사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SDI의 매출채권은 이 기간 8949억원에서 9612억원으로 663억원(7.4%) 늘며 1조원에 육박했다. 이는 삼성그룹 계열사 중 삼성전자 다음으로 많은 매출채권이다. 또 다른 전자계열사인 삼성전기의 매출채권 역시 7493억원에서 8648억원으로 1155억원(15.4%) 증가했다.

반면 최근 실적 부진에 고심하고 있는 제조업 계열사들의 매출채권은 대폭 감소해 이목을 끌었다. 대표적으로 삼성중공업의 매출채권은 6741억원에서 1751억원으로 4990억원(74.0%) 급감했고, 삼성엔지니어링 역시 9318억원에서 6379억원으로 2939억원(31.5%) 줄었다.

삼성그룹 다음으로 쌓인 외상값이 많은 그룹은 현대차그룹이었다. 현대차그룹 소속 제조 관련 상장사 8곳의 올 2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은 18조213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말 16조7414억원과 비교하면 1조4719억원(8.8%) 증가한 것으로, 증가폭으로는 10대 그룹 중 가장 컸다.

특히 ‘자동차 3인방’의 외상값이 일제히 늘어 이목이 집중됐다. ‘맏형’인 현대자동차의 매출채권은 3조7956억원으로 같은기간(3조4845억원) 대비 3111억원(8.9%) 증가했다. 현대모비스도 3조8502억원에서 4조1794억원으로 3292억원(8.6%) 늘었고, 특히 기아자동차가 3조2815억원에서 3조9292억원으로 6477억원(19.7%)이나 증가했다.

이어 LG그룹 소속 11개 제조 상장사의 매출채권이 16조4906억원으로 많았다. 16조6094억원이었던 전년 말에 비해서는 1188억원(0.7%) 줄어든 것이다. LG전자의 매출채권이 6조5056억원으로 같은기간(5조9568억원) 대비 5488억원(9.2%) 증가했지만, LG디스플레이가 4조159억원에서 3조5513억원으로, LG이노텍이 1조1662억원에서 9704억원으로 각각 4646억원, 1958억원 감소하면서 그룹 전체 매출채권 액수는 줄어들었다.

10대그룹 매출채권 6개월새 1조7천억원↑
실적 개선의 ‘이면’…위기 닥치면 ‘부메랑’
‘대표 수출기업’ 삼성·현대차·LG, ‘압도적’
‘군살빼기’ 포스코·SK, 7000억원씩 ‘감축’

◆포스코·SK ‘외상 NO’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LG그룹 등 외상값 ‘TOP 3’에 이어 4위와 5위를 차지한 포스코그룹, SK그룹의 경우 올해 들어 매출채권을 대폭 감축하며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룹적 차원의 ‘군살빼기’를 진행 중인 포스코그룹은 올해 들어 7000억원이 넘는 매출채권을 해소하며 눈길을 끌었다. 포스코그룹 소속 7개 제조 상장사의 올 2분기 말 매출채권은 7조216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말 7조9287억원 대비 7120억원(9.0%) 감소한 것이다.

계열사 별로 보면 대우인터내셔널의 감소폭이 가장 컸다. 대우인터내셔널의 매출채권은 3조7634억원으로 같은기간(4조1549억원) 대비 3915억원(9.4%) 줄었다. 이어 그룹의 ‘중추’인 포스코의 매출채권 역시 3조1573억원에서 2조9249억원으로 2324억원(7.4%) 감소했다.

포스코강판이 1246억원에서 1261억원으로 다소(15억원·1.2%)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포스코켐텍(-442억원·46.5%)과 포스코플랜텍(-178억원·19.7%), 포스코엠텍(-162억원·33.3%), 포스코ICT(-134억원·5.1%) 등 나머지 계열사들의 매출채권은 일제히 감소세를 보였다.

SK그룹 역시 올해 들어 8000억원 가까이 매출채권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SK그룹 소속 13개 제조 상장사의 올 2분기 말 매출채권은 7조92억원으로 전년 말(7조7828억원) 대비 7736억원(9.9%) 감소했다.

연일 최고 실적을 갱신하고 있는 SK하이닉스의 대출채권이 가장 많이 줄었다. SK하이닉스의 매출채권은 3조1020억원으로 같은기간(3조5402억원) 대비 4382억원(12.4%) 감소했다. 이어 SK네트웍스의 매출채권이 1조3102억원에서 1조925억원으로 2177억원(16.6%) 줄며 그룹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감소폭을 기록했다.

이밖에 그룹들의 매출채권 규모는 ▲GS그룹 4조4103억원 ▲현대중공업그룹 3조8791억원 ▲한화그룹 2조1111억원 ▲롯데그룹 2조826억원 ▲한진그룹 1조2804억원 등 순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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