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위상, 끝없는 철수설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한국GM의 기세가 무섭다. 최근 신형스파크 출시로 경차시장에서 기아자동차 모닝을 위협하고 있고, 지지부진했던 준대형 시장에선 임팔라로 흥행을 이어가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밋빛 기류가 안정적이지만은 않다. GM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만성적 일감부족과 철수설 등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한국GM의 호황이 ‘반짝’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9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국내시장 판매량이 전년동기대비 3.2% 증가한 11만3996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같은기간 국내 총 자동차 판매량(130만2752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8%로 집계됐다.

◆ 한 여름밤의 꿈

특히 임팔라는 국내 판매 첫 달 242대의 판매실적을 올린 데 이어 9월에는 1634대나 팔렸다. 스파크도 한국GM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 9월 스파크 판매량은 6214대로 전년 동기 대비 48.2%나 늘어났다. 지난 8월에는 판매량이 6987대로 경차 부문 1위였던 기아 모닝(6954대)을 뛰어넘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같은 기세를 이어간다면 2007년 이후 8년 만에 국내 점유율 10% 달성은 물론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에게 빼앗겼던 국내매출 3위 자리도 되찾을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GM의 움직임을 봤을 때 한국GM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GM은 자동차를 직접 출시하기 보다는 주로 보유하고 있는 하위 브랜드를 통해 출시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 때문에 수익성에 따라 많은 브랜드들이 통합되고 철폐되는 일이 빈번하다.

현재 GM은 대대적으로 새 플랫폼 기반의 신차를 출시하기 위해 글로벌 생산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GM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미와 중국시장에선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유럽시장에선 쉐보레 브랜드 철수와 함께 같은 계열사인 독일 오펠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있는 것이다. 또 시장 성장세가 큰 인도와 러시아, 동유럽 등 신흥시장에선 현지 생산량을 늘리지만 한국과 호주처럼 시장이 정체되거나 거래조건이 악화된 지역에선 생산량을 줄이는 쪽으로 키를 돌렸다. 실제 GM은 호주 생산법인 철수를 2017년까지 완료한다고 밝힌바 있다.

수출물량 감소에 따른 경쟁력 약화
‘회생 전문가’ 등장에 직원들 ‘덜덜’

이러한 구조조정의 여파는 유럽 쉐보레 물량을 맡고 있던 한국GM의 수출물량 감소로 이어졌다. 2013년까지 연간 80만대 안팎이었던 한국GM의 생산량은 지난해 19.2%나 줄어든 63만532대에 그쳤다. 올해 생산량도 전년대비 3% 가까이 줄었다. 쉐보레 유럽시장 철수로 줄어든 한국GM의 수출 물량은 연간 15만~20만대로 추산된다. 이로 인해 한국GM 군산공장은 2교대에서 1교대로 전환했고 부평2공장도 일감이 줄어들어 노사갈등의 원인이 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임팔라의 수입판매가 확정되면서 기존 알페온 생산까지 중단돼 생산량은 더욱 줄었다.

더 문제가 되는 점은 그동안 한국GM이 많은 부분을 담당했던 중·소형차 개발과 신차 생산을 유럽과 인도 러시아에 할당한다는 점이다. GM은 오펠을 통해 유럽 현지에서 중·소형차를 공급해 원가를 절감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 러시아에서 생산력을 극대화 한다는 것이다. 대신 한국에서는 중후진국과 선진국 저가 시장에 판매할 구형 차 부분변경 모델 비중을 높인다는 게 GM의 입장이다. 이는 2013년 한국GM이 발표한 장기 계획 ‘GMK20XX’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GMK20XX에 따르면 부분변경 모델을 빠르게 생산 할 수 있는 디자인센터와 중저가 차들을 현지에서 생산하기 위한 반조립제품(CKD) 공급능력 확대, 저가 차종에서 수익을 뽑아내기 위한 생산성 향상을 골자로 삼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스파크의 경우 과거에는 한국GM이 독자 개발한 엔진과 디자인을 차용했지만, 이번에 출시한 신형 스파크는 GM본사와 중국 상하이기차가 공동 개발한 엔진을 사용한다.

잊을 만 하면 떠오르는 한국GM철수설도 불안감을 더욱 가중 시킨다. 한국GM은 그동안 여러 차례 철수설에 휩싸였다. 올해 들어서도 미국 GM본사 임원들이 한국공장의 경쟁력을 문제삼는 발언을 하면서 철수설에 불을 지폈다.

스테판 자코비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5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한국공장을 닫을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한국GM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효율성을 제고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GM이 몇 년 전부터 한국공장의 경영개선작업을 시작했지만 강력한 노조가 난제”라며 “회사가 한국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와중에 로이터통신이 GM이 아시아지역의 생산거점을 한국에서 인도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하면서 논란은 더욱 가중됐다. 세르지오 호샤 한국GM회장이 직접 나서 진화에 나섰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가시지 않았다.

호샤 회장은 “인도공장이 한국공장 물량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국 자동차산업의 인건비는 최근 5년 동안 50% 인상됐고 이는 세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생산기지로서 경쟁력을 잃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내부적인 구조 개편 역시 철수설 확산에 한몫했다. 한국GM은 최근 COO(최고운영책임자) 자리를 새로 만들고 제임스 김 한국마이스크로소프트(MS) 사장을 사장 겸 COO로 앉혔다. 기존에 세르지오 호샤 사장이 총괄하던 기획·인수·재무·홍보·디자인 등 총 14개 부문 중 생산·생산기술·구매·품질·노무 등 5개 부문이 제임스 김 사장 앞으로 돌아갔다. 물론 보고는 세르지오 호샤 사장에게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별도 체제로 운영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GM은 물론 세르지오 호샤 사장도 우려를 표명

▲ 제임스 김 한국GM 사장.

해 왔던 노사 관계를 제임스 김 사장이 맡게 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 의미심장한 인사

제임스 김 사장은 한국MS사장 시절이던 2009년 취임 4개월 만에 전 직원의 9% 수준인 50여명을 한국MS 사상 처음으로 권고 퇴직시켰고, 2011년에도 조기 퇴직 프로그램으로 20명을 감원했다. 2007년 야후코리아 사장 시절에도 조직을 대대적으로 뜯어 고치고 조직 개편을 단행하기도 했다.

제임스 킴 사장은 스스로를 ‘회생 전문가’라고 소개했을 정도로 구조조정 전문가다. 그를 COO자리까지 만들어 앉힌 GM의 의중을 두고 일각에서 구조조정과 철수 절차를 밟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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