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늦춰라” 주문에 “말도 안돼” 반발

[파이낸셜투데이=성은아 기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에 은행권이 발칵 뒤집혔다.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페루에 모인 4대 금융그룹(KB, 신한, 우리, 하나금융) 수장들에게 최 부총리가 작심 발언을 쏟아낸 것. 이 자리에서 최 부총리는 은행들의 마감 시간을 늦출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은행업계는 술렁이고 있다. 최 부총리발 은행 마감 시간 논란은 다른 논쟁거리로 비화되며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정부 vs 은행업계
지난 11일 페루 리마에서 최 부총리는 “오후 4시에 문을 닫는 은행은 지구상에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며 “입사하고서 10년 후에 억대 연봉을 받는데도 일 안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한국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말하며 은행권을 정조준 했다. 은행의 빠른 마감시간이 금융 경쟁력 악화의 원인이 된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최 부총리는 작심 한 듯 다시 한 번 자신의 발언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5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최 부총리의 은행 마감시간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에 최 부총리는 “금융개혁이 제대로 돼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자는 취지로 한 말”이라며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은행의 근무형태가 바뀌어야 하는 걸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은행 영업시간 연장에 대한 그의 확고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를 두고 은행권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효율적인 처사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은행 업무시간 연장으로 금융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다. 무턱대고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처사”라고 말했다. 더불어 금융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관치금융을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약속부터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은행권은 최 부총리의 요구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영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변형근로시간제’ 확대를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13일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변형근로시간제를 확장하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말하며 최 부총리의 발언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KB국민·NH농협·우리·KEB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의 ‘변형시간근로제’ 확대 방안 검토 착수로 이어졌다.

찬성 측 “은행 가려면 반차 내야…” 
반대 측 “근본적인 해결책 필요”

누리꾼, 의견 분분
정부와 은행권, 은행업계 내부에서 벌어진 영업시간 연장 논란을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은행 영업시간 연장을 두둔하는 누리꾼들은 대부분 은행 마감시간이 현 상황과 괴리가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한 누리꾼은 “은행 볼일 보려면 반차나 연차를 내야 하는 지금 현실 자체가 개그다. 6시까지는 문을 열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짧은 영업시간에 불만을 제기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고객입장에서 4시면 땡 하고 문 닫는 은행은 갑 중에 갑이다. 4시가 지나면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며 영업시간 연장을 옹호했다.

반면 반대 입장도 팽팽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은행 업무시간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은행의 자율에 맡겨도 될 사안에 정부가 개입해 또 다른 기준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업무시간 연장이 해답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은행을 빨리 닫고 추가 업무를 해야 만하는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무작정 연장 근무를 할 게 아니라 은행이 문을 닫은 후 30분 내로 직원들이 퇴근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영업시간 연장으로 시작된 논란은 또 다른 논쟁거리로 비화되고 있다. 일반 직장인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은행원들의 급여가 논란의 핵심이다.

실제로 온라인에서는 “초봉 4000만~5000만원 받으면서 일 조금 더 하는 게 불만이냐”, “교대 근무 실시해서 억대 연봉 낮추고 일자리나 창출해라”는 등의 발언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반응에 은행원들은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다니는 은행원은“업무시간 연장에 급여가 왜 거론되는지 모르겠다”며 “일찍 문을 닫을 뿐이지 지금도 근무시간은 다른 직장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 자체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이 직장인과 직장인, ‘을 대 을’ 의 싸움으로 번지면서 희석됐다는 반응이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정부가 금융개혁 방안으로 관치금융 해소가 아닌 은행 영업시간 연장안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 이번 논란의 핵심”이라며 “결국 같은 을에 입장에 놓인 노동자들끼리만 싸우는 꼴”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은행 업무시간 연장 불똥이 다른 업계에까지 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나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은행 업무시간이 각 업체의 근무시간이 늘어지는 걸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며 “이를 손댄다는 것은 일반 회사들의 업무 시간도 늘리겠다는 소리인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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