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류 기업들의 창고관리 現주소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물건을 만들어 파는 기업들에게 ‘재고관리’는 경영의 기본 중 기본이다.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문제지만, 어느 정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요령이 더욱 큰 관건이다. 10대 그룹이 관리 중인 재고는 무려 43조원. 창고에 쌓이는 물건에 고심이 깊어지는 삼성과, 대규모 ‘재고 털어내기’에 성공한 포스코의 희비는 엇갈리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에 지난 1년 사이에만 1조원 어치에 육박하는 재고가 쌓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부분 그룹들의 경우 재고자산 증감폭이 크지 않았던 반면 증가폭에서는 삼성그룹이, 감소폭에서는 포스코그룹이 유난히 큰 액수를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12일 <파이낸셜투데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0대 그룹 소속 92개 상장사 중 금융이나 지주사 등 제조사가 아닌 17개 회사를 제외한 75개사의 올 2분기 말(6월 30일) 기준 재고자산은 총 43조1962억원으로 전년동기 42조2263억원 대비 9699억원(2.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재고자산이란 일상적인 영업활동과정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보유하는 상품과 제품 혹은 판매되는 제품의 생산을 위해 생산과정에 있는 재공품, 반제품, 그리고 생산을 위해 직접, 간접으로 소비되는 원재료, 저장품 등으로 구성된다. 쉽게 말해 그만큼 창고에 쌓여 있는 재고품이 많다는 의미다.

이에 따르면 10대 그룹 제조사 창고에는 1년 새 1조원이 훌쩍 넘는 재고가 쌓인 셈이다. 실제로 10대 그룹 중 이 기간 재고자산이 늘어난 곳은 6곳으로 줄어든 곳(4곳) 보다 많았다.

◆삼성의 고뇌

지난 1년 동안 재고가 가장 많이 쌓인 그룹은 삼성그룹이었다. 특히 증가분의 대부분을 삼성전자가 차지하고 있어, 좀처럼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을 엿볼 수 있었다.

삼성그룹 소속 제조업 상장사 10곳의 올 2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은 9조8049억원으로 전년동기(7조9773억원) 대비 1조8276억원(22.9%) 급증했다. 이 기간 10대 그룹 재고자산이 1조원 가량 늘었다는 점을 보면, 삼성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 전체의 재고자산은 오히려 대폭 감소세로 돌아선다. 그 만큼 삼성그룹의 재고가 타 그룹들을 상쇄할 만큼 많이 늘어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삼성전자의 재고자산 증가액은 다른 계열사들을 압도했다.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6조8502억원으로 같은기간(5조5320억원) 대비 1조3182억원(23.8%) 늘었다. 최근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제 2의 전성기’를 맞으며 회사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상황. 그 만큼 현재 삼성전자의 영광을 이끌어 왔던 스마트폰이 ‘잘 안 팔린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중공업 역시 4000억원이 넘는 재고를 쌓아, ‘통곡의 계곡’을 지나고 있는 조선업계 전반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동 기간 삼성중공업의 재고자산은 8456억원에서 1조2552억원으로 4096억원(48.4%) 증가했다.

삼성그룹을 지나면 다른 그룹의 재고자산 증가폭은 2000억원 대로 확 줄어든다.

삼성그룹 다음으로 1년 새 재고가 많이 쌓인 그룹은 GS그룹으로, 소속 제조 관련 상장사 7곳의 올 2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은 8766억원을 기록해 전년동기(5955억원) 대비 2811억원(47.2%) 늘었다. GS건설의 재고자산이 2527억원에서 5752억원으로 3225억원(127.6%) 증가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계열사의 재고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어 LG그룹 소속 10개 제조 상장사의 재고자산이 6조1920억원으로 같은기간(5조9322억원) 대비 2598억원 늘었다. 이 기간 LG화학이 1조9255억원에서 1조7278억원으로, LG전자가 1조2323억원에서 1조1146억원으로, LG유플러스가 3968억원에서 2943억원으로 각각 재고를 1977억원, 1177억원, 1025억원이나 줄였지만, LG디스플레이의 재고자산이 1조4851억원에서 2조454억원으로 5603억원이나 늘면서 그룹 전체의 재고가 증가세를 보였다.

이밖에 ▲SK그룹 +2294억원(2조9626억원→3조1920억원) ▲한화그룹 +1302억원(1조4191억원→1조5493억원) ▲현대자동차그룹 +174억원(9조6640억원→9조6814억원) 등의 재고자산이 증가했다.

10대 그룹 재고자산 전년比 1조원 증가
안 팔리고 쌓이는 물건들 창고에 ‘가득’
‘남는 스마트폰’ 삼성그룹 1조8천억원↑
‘구조조정 中’ 포스코그룹 1조5천억원↓

 

◆포스코 ‘다이어트’

반면 대대적 구조 개혁을 천명하고 수익성 끌어올리기에 주력하고 있는 포스코의 본격적인 ‘군살빼기’는 재고 줄이기에서부터 확인됐다. 똑같은 기간 무려 1조5000억원이 넘는 재고를 털어내며 삼성그룹과 극명히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포스코그룹 소속 7개 상장사의 올 2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은 4조5887억원으로 전년동기(6조1702억원) 대비 1조5815억원(25.6%)이나 줄었다. 계열사 별로 봐도 그룹 내 ‘맏형’인 포스코가 이 기간 재고자산을 5조355억원에서 3조9478억원으로 1조877억원(21.6%) 감소시키며 1년 만에 1조원 넘는 재고를 털어냈다. 또 대우인터내셔널의 재고 규모가 8988억원에서 4757억원으로 4231억원(47.1%) 감소하는 등 모든 계열사의 재고자산이 일제히 줄었다.

포스코와 비교하면 다른 그룹의 재고자산 감소폭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포스코 다음으로 재고 규모가 많이 줄어든 롯데그룹의 경우, 소속 제조 관련 7개 상장사의 재고자산은 3조6997억원으로 같은기간(3조7858억원) 대비 861억원(2.3%) 감소했다. 이 기간 롯데케미칼의 재고자산이 1조1089억원에서 7916억원으로 2273억원이나 줄었지만, 롯데쇼핑이 1조8104억원에서 1조8897억원으로, 롯데하이마트가 4527억원에서 4753억원으로, 롯데칠성음료가 1964억원에서 2187억원으로, 롯데푸드가 1519억원에서 1734억원으로 각각 793억원, 226억원, 223억원, 215억원 재고를 늘리며 대표 유통 기업들이 롯데케미칼의 감소폭을 상쇄했다.

이어 현대중공업그룹의 소속 3개 상장사의 재고자산이 2조9863억원으로 같은기간(3조429억원) 대비 566억원(1.9%) 줄었다. 그룹 중심 계열사이자 지난해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의 재고 규모가 2조6291억원에서 2조6652억원으로 361억원 늘었지만, 현대종합상사가 재고자산을 2056억원에서 1293억원으로 763억원 줄이며 그룹 전체 감소세를 이끌었다.

한진그룹 소속 5개 상장사의 재고자산도 6767억원에서 6253억원으로 514억원(7.6%) 감소했다. 한진해운의 재고 규모가 2174억원에서 1697억원으로 477억원 줄며 감소폭이 가장 컸고, 대한항공이 4467억원에서 4445억원으로, ㈜한진이 69억원에서 56억원으로, 한국공항이 57억원에서 55억원으로 각각 22억원, 13억원, 2억원의 재고자산을 줄이며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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