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은 ‘정부’가, 처리는 ‘국민’이…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 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3년간 민간자본으로 투자한 사업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모두 4조7000억원에 육박하는 국민 세금이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현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이 기획재정부 'MRG 지급 현황'을 분석한 결과 최근 13년간 민간투자사업 최소운영수입을 보장해주기 위해 국민들이 낸 세금은 4조9745억원에 달했다.

◆엉터리 수요 예측

MRG(Minimum Revenue Guarantee, 최소수입운영보장제)는 민간자본으로 건설되는 도로·교량 등 사회기반 시설을 만들었을 때 실제 수익이 예상 수익에 못 미치는 경우 손실 일부를 국민들의 세금에서 보전해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민간 자본으로 터널을 개통했는데 통행량이 예측에 미치지 못할 경우 통행료 일부를 정부 혹은 지자체가 민간 사업자에 지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의 실수를,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는 것이다. 똥은 정부가 싸고, 치우는 것은 국민의 몫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2001년 이후 민자사업 손실보전액 5조원
2002년 650억원→2014년 8160억, 13배↑

현재 MRG는 폐지된 상태다. 정부나 지자체의 수요 예측 실패가 반복되고 보전금액이 늘어나 재정손실이 커지면서 2009년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 치우지 못한 '똥'들이 많이 남아있어 당분간 국민들의 세금투입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MRG 지급액은 지난 2002년 653억원에서 ▲2005년 1484억원 ▲2007년 1546억원 ▲2009년 4551억원 ▲2011년 5290억원 ▲2013년 8162억원 등으로 급증해왔으며, 지난해에는 8162억원으로 2002년보다 13배가량 증가했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3년간 MRG로 손실을 보전한 민자사업은 총 45건이다. 지자체사업이 19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국가사업(17건), 국고보조지자체사업(9건)이 뒤를 이었다.

가장 많은 손실을 보전 받은 사업 TOP3은 모두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국가사업이다. '인천공항철도→인천공항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 순이다.

▲ 사장 많은 손실을 보전 받은 인천공항철도 사업. 인천공항철도는 지난 13년간 1조3776억원의 손실을 보전 받았다.

'인천공항철도'에는 7년간 1조3776억원이 지급됐다. 2007년 완공된 인천공항철도는 준공 후 30년간 MRG를 약속받았다. 예상 수입 대비 손실 보전 비율은 2007~2008년 90%, 2009~2020년 65%, 2021~2030년 58%, 2031~2040년은 46%에 이른다. 앞으로 26년간 규모조차 알기 힘든 혈세가 투입돼야 한다는 얘기다.

2008년 인천공항철도에 지급된 손실보전액은 1040억원. 2009년 예상수입의 65%로 MRG 비율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1645억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한 조사기관이 예측한 인천공항철도의 2007년부터 2014년까지의 수입은 2조9815억원. 하지만 손실보전액 지급 비율로 계산한 같은 기간 실제 인천공항철도 수입은 2007년 90억원, 2008년 116억원, 2009년 183억원, 2010년 183억원, 2011년 203억원, 2012년 423억원, 2013년 255억원, 2014년 442억원 등 1895억원을 기록, 예측 대비 7%에도 미치지 못한 수입을 올리는 데 그쳤다.

당시 교통연구원은 인천공항철도의 MRG 보전액은 계속 늘어나서, 앞으로 연 7000억원 수준에 이를 것이고, 누적 손실보전액이 20조원에 달한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 6월 인천공항철도 MRG가 폐지되고 비용보전방식으로 전환됐다. 비용보전방식(SCS)는 운영에 필요한 최소비용을 표준운영비로 정해놓고 실제 운영 수입이 이에 못 미칠 경우 그 차액을 지원하는 제도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2040년까지 15조원(연간 5800억원)에 달하는 재정부담액을 8조원(연간 3100억원)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 인천공항고속도로 영종대교. 인천공항고속도로 사업은 지난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조573억원의 손실을 보전 받았다.

'인천공항고속도로' 사업에는 2002년부터 13년 동안 1조573억원이, '천안-논산고속도로' 사업에는 2004년부터 11년 동안 4821억원이 손실보전액으로 지급됐다. 인천공항고속도로는 수요 예측량 대비 실적이 연평균 52.26%에 불과했으며 천안-논산고속도로도 예측대비 실적은 연 평균 58.86%에 불과했다.

'대구-부산고속도로'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4611억원, '부산-울산고속도로'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1852억원, '서울외곽고속도로'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1514억원, '서울-춘천고속도로'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77억원, '서수원-평택고속도로'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134억원, '용인-서울고속도로'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39억원 등 8627억원의 손실보전액이 지급됐다. '인천대교'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45억원이 지원됐다. 이 중 서울외곽순환도로의 경우만 유일하게 실적이 예측량을 초월했다.

◆MRG→SCS, 해법?

해양수산부가 주관한 국가사업에도 1860억원이라는 적잖은 혈세가 지원됐다. 1위는 '인천북항2-1단계' 사업으로 2011년부터 4년간 892억원, 2위는 '목포신항1-1단계'로 2005년부터 10년간 419억1000만원이 지급됐다. '울산신항1-1단계'는 2011년부터 4년간 172억원 '영일만신항1-1단계'는 2011년부터 4년간 139억원, '목포신항1-2단계'는 2005년부터 10년간 97억9000만원, '평택당진항 내항동 부두'는 2013년 66억원 등으로 뒤를 이었다.

지자체 사업 19건이 2003년부터 12년 간 받은 손실보전액은 4164억원이다. 특히 대구시의 '대구범안로(수성구 범물동-동구 안심지역)' 사업은 1461억원의 혈세가 투입, 전국 지자체사업 가운데 1위에 오르는 수모를 겪었다. 범안로는 1997년 착공해 2002년 완공된 폭 35~50m, 길이 7.25km 규모의 유료도로로 수성구 범물동과 시지, 경산지역을 잇고 있다.

2010년까지 범안로의 통행량은 예측의 27% 수준에 그쳤다. 최대 통행량도 33.7% 수준이었다. 대구범안로에 지급된 손실보전액은 2003년 34억원, 2005년 32억원, 2007년 88억원, 2009년 171억원 등이다. 때문에 대구시는 2010년 10월 범안로 재정지원금 해결 전담팀을 꾸려 재구조화를 주도, 2012년 6월 범안로 운영사인 ㈜대구동부순환도로와 투자자 변경에 따른 자금 조달과 실시협약 변경 협상을 통해 MRG는 비용보전 방식으로 변경됐다.

㈜대구동부순환도로가 손실보전액을 지급받기로 한 기한은 2026년까지다. 2010년부터 2026년까지 대구시는 4498억원을 ㈜대구동부순환도로 측에 지급해야 했다. 하지만 대구시는 보전 방식 전환에 따라 같은 기간 2010억원의 재정지원금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고, 이에 따라 재정지원금은 2488억원으로 줄었다. 이후 대구시는 2010년 191억원, 2012년 200억원, 2013년 194억원, 2014년 180억원 등 765억원을 ㈜대구동부순환도로 측에 지원했다. 앞으로 12년간 연 평균 144억원가량의 혈세 투입이 예정돼 있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광주제2순환3-1공구'(광주시) 572억원, '만월산터널'(인천시) 534억원, '문학산터널'(인천시) 502억원, '원적산터널'(인천시) 454억원, '전주하수종말처리장'(전주시) 204억원, '미시령관통도로'(강원도) 187억5000만원 등의 세금이 손실을 보전하는데 사용됐다.

이밖에 '대천하수도'(보령시)와 '문경가은하수처리장'(문경시), '광주제2순환4구간'(광주시), '양주신천하수도'(양주시), '경주시외동건천하수도'(경주시), '계룡시폐기물소각장'(계룡시), '군포대야하수도'(군포시) 등이 13억2000만~56억4000만원 사이를 보전 받았다.

예측 실패 참극, 줄이고 줄여도 수천억원
"사업전반 점검·제도보완 필요" 한목소리

'이천시하수도'(이천시), '여주시음식물처리시설'(여주시), '도양공공하수처리장'(고흥군), '유구공암동학사하수도'(공주시), '슬러지유동상소각시설'(포천시) 등은 7000만~5억3270만원 사이의 세금이 지급됐다.

국고보조를 받아 사업을 진행한 지자체 중 6곳(서울시·광주시·부산시·김해시·경기도·경남도)이 13년간 지급한 손실보전액은 5579억원이다.

'서울도시철도9호선'(서울시)이 2012년 831억원, 2010년 293억원 등 1255억으로 가장 높았으며 '광주제2순환1구간'(광주시)가 2003~2004년과 2014년을 제외한 10년간 연 평균 119억원, 총 119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이외 '부산·김해 경량전철'(김해시)과 '수정산터널'(부산시), '마창대교'(경남도), '우면산터널'(서울시), '부산-거제간 연결도로'(경남도), '일산대교'(경기도), '제3경인고속화도로'(경기도) 등이 141억~666억원에 이르는 손실보전액을 받았다.

▲ 인천북항. '인천북항2-1단계' 사업과 '인천북항 일반부두' 사업은 966억원의 손실을 보전받았다.

민자사업 손실보전액 절반 이상은 인천지역에 투입됐다.

2002년 이후 민자사업 적자를 메우기 위해 투입된 4조9745억원 중 54%인 2조7150억원이 인천에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지역 MRG 사업은 인천공항철도(1조3776억원)와 인천공항고속도로(1조573억원)를 포함해 인천북항2-1단계 892억원, 만월산터널 534억원, 문학산터널 502억원, 원적산터널 454억원, 인천대교 345억원, 인천북항 일반부두 74억원 등 8건으로 전체 45건 중 18%에 이른다.

◆혈세 IN '인'천

김현미 의원은 "MRG가 폐지됐지만 '뒷북' 행정에 불과하다"며 "여전히 최소운영수입을 보전 받을 사업들이 상당수 남아 있어 당분간 국민들의 세금 투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김 의원은 또 "MRG 적자 보전액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민자사업의 적정성 평가, 저금리 환경을 고려한 자금재조달방식, 자금재구조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며 "민자사업 전반에 대한 점검과 제도보완을 통해 더 이상 국민들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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