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올해 2분기 기대 이하의 실적을 거둔 LG전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과거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LG경영혁신추진본부 이사를 맡았던 조준호 LG전자 MC사업본부 사장이 본격적으로 쇄신의 칼을 꺼낸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된다.

LG 측은 “구조조정은 없다”는 태도지만 직원들 사이에선 “명예퇴직이라는 말만 하지 않을 뿐 어떻게든 필요 없는 인력은 내보내려고 한다”는 반응이다.

31일 IT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해 4월 도입한 저(低) 성과자 역량 향상 프로그램을 유지 중이다. 3년 연속 고과에서 ‘C’이하로 받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2주간의 교육을 진행한 후 다시 현업에 배치한 뒤 3개월 정도 코칭하는 프로그램이다.

전문적인 기술이 아니라 조직에 필요한 내용을 교육한다. 면담하는 기법이나 대화하는 방법, 설득 심리학 등 소통에 대한 내용을 가르쳐 현업에 적용토록 한다.

문제는 교육을 받기 위해 2주간 자리를 비우게 되면 조직 내에 저성과자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낙인이 찍히게 된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이를 견디지 못해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간 직원이 2명 정도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직원에 따르면 올해는 지난해와는 달리 프로그램 도중 교육 도중 면담을 진행하면서 “몇 달 치 월급을 주겠다”며 “자발적인 퇴직을 유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직원들이 연령대가 주로 높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돌면서 사실상 명예퇴직 프로그램이 아니냐며 여전히 못마땅해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LG전자의 한 직원은 “IMF 시절처럼 갑자기 자리를 빼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능력 없는 직원은 알아서 나가라는 식의 딱딱한 분위기로 바뀌었다”면서 “회사가 돈이 없으니 노골적으로 희망퇴직을 하기 어렵고, 함부로 자르기도 쉽지 않으니 다양한 방법으로 인력 감축을 시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LG 측은 “명예퇴직은 절대 없다”면서 “수십억 원을 들여서 개발한 프로그램이고 직원들의 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일 뿐”이라며 일축하고 나섰다.

LG전자 관계자는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교육을 하는 것으로 이 프로그램 이후 개선된 사람이 많다”며 “일부 다르게 받아들인 사람이 퇴사했는데 그분들의 불평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여전히 LG전자 내부에서는 인력감축 및 구조조정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 않고 있다.

▲ 조준호 LG전자 사업본부장.

실제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을 총괄 지휘하는 조준호 MC사업본부장(사장)도 지난달 30일 2분기 실적 발표 직후 임직원들에게 고강도 조직개편을 시사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조 사장은 1996년 LG경영혁신추진본부 이사대우, 1998년 LG경영혁신추진본부 이사를 거쳐 1999년 LG구조조정본부 경영혁신담당 상무보를 맡는 등 조직개편의 달인이다.

조 사장은 “모델과 기술 개발을 동시에 하다 보니 디자인과 성능이 뒤처졌고, 선행 개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MC사업본부 인력의 15~20%의 소속을 재배치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어 “프로젝트 매니저를 중심으로 상품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넣어 달라”며 프로젝트별 조직 재정비 계획을 알렸다.

LG전자는 현재 기획과 개발, 마케팅, 영업 등으로 구분된 직원들을 제품이나 서비스별 조직으로 묶어 기획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전담시킬 계획이다. 주로 기획, 홍보 등 지원부서 직원들이 영업이나 개발 조직으로 자리를 옮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근 LG전자 TV사업부에 마케팅을 맡은 한 직원도 LG그룹이 인수한 국내 최대 팹리스 업체 ‘실리콘웍스’로 이동하기도 했다.

제품 개발 방법도 기존의 핸드오버(handover) 방식에서 프로젝트 매니저 중심의 태스크(task) 조직 방식으로 바꿀 계획이다.

또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B2C(일반 소비자시장)보다 B2B(기업시장)를 강조하고 있어 차량용 부품을 생산하는 VC사업본부로의 인력 이동이 대거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한편 LG 측은 “매년 200~300명 안팎의 인력에 대한 사업부별 이동은 통상적으로 이뤄져 온 것”이라며 “지원 조직의 일부를 영업과 개발 조직으로 옮기는 방안일 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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