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젖줄’ 따라 흐르는 국민의 피와 땀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 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서울의 교통수단은 지하철, 버스, 택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젖줄’ 한강을 달리는 ‘수상택시’도 있다. 아니 ‘있었다’고 해야 맞겠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승강장에서 녹만 슬어가고 있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시가 운영권자인 청해진해운에 사업 중단을 요청한 뒤 현재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예측 대실패

수상택시는 5년 가까이 한강을 내달렸다. 수상택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인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이었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2006년부터 오 전 시장이 수변문화공간 조성과 자연성 회복, 접근성 향상, 문화기반 조성, 경관개선, 수상이용 활성화를 목표로 추진했던 디자인 서울 정책의 핵심 계획이다.

▲ 한강 수상택시.

청해진해운은 2006년 서울시 한강수상관광콜택시 운영사업자로 선정돼 수상택시 운영을 시작했으며, 2010년 2월에는 수상택시 주 운영사였던 주식회사 ‘즐거운서울’을 합병했다.

수상택시는 2007년 8인승 5대, 11인승 5대 등 총 10대가 도입됐으며 민자 15억원을 포함해 총 38억3600만원이 투입됐다. 사업 시작 후 청해진해운도 30억원가량을 추가 투입했다. 서울시는 2006년 발표한 ‘한강 수상이용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수상택시 이용객이 하루 평균 1만95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수상택시 이용객…예측 2만명, 실제 50명
흉물로 전락한 ‘아라호’ 1년 유지비만 1억

그러나 실세 이용객은 서울시 추정의 1%에도 못 미쳤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상희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하루 평균 이용객수는 2009년 135명, 2010년 84명, 2011년 109명, 2012년 35명, 2013년 47명이다. 연간 이용객 역시 2009년 4만1459명, 2013년 1만220명에 그쳤다.

이용객 예측 실패는 적자로 이어졌다. 적자 추산액만 한 해 평균 6억~7억원에 달했다. 청해진해운은 결국 지난해 12월 법원으로부터 매각 허가를 얻어 수상택시 사업을 매물로 내놨다. 청해진해운은 당초 수상택시 운영사업권과 자산 인수자 선정을 6월 말까지 완료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인수 의사를 밝힌 대형 여행사와 외국계자본 등 두 곳의 입찰 서류를 받았으나 이들이 발을 빼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당시 인수비용은 20억~25억원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녹만 슬어가는 처지에 쳐한 것은 수상택시 뿐만이 아니다. 수상택시 여의도 승강장 인근 한강선착장에는 더치만 큰 ‘아라호’가 애물단지처럼 방치돼 있다.

▲ 아라호.

아라호 역시 서울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이었다. 오 전 시장이 2009년 당시 시민들에게 문화공연 체험 확대 및 차별화된 노선 개발로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며 시작됐다. 투입된 혈세만 112억원. 이후에도 매년 수천만원에 이르는 유류비와 유지관리비에 고가의 보험료까지 꼬박꼬박 내고 있다. 현재까지 약 4억원의 시 재원이 투입됐다. 시 재원은 곧 국민의 혈세다.

2010년 10월 서울시에 의해 자체 건조된 아라호는 기존 유람선 중 가장 큰 688t 급에 길이 58m, 폭 12m 규모로 310명(공연관람 150석)이 승선할 수 있다. 가변식 무대도 마련돼 선상에서 공연, 결혼식, 런칭쇼 등을 치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껏 8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정식 운항은 없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뒤 경제성 부족 등을 이유로 매각 처리되는 운명을 맞았기 때문. 하지만 매각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정식 취항도 못한 채 5년 가까이 자리만 지키고 있다.

서울시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의계약을 통한 매각에 나섰지만 진척이 없다. 그간 아라호를 사겠다는 업체가 9개 나타나 10차례 넘게 협상을 거쳤지만 비싼 매각대금이 걸림돌이 됐다. 네 차례 공개매각 입찰을 거치는 동안 가격은 최초 106억원에서 90억9000억원으로 떨어지면서 건조비용에도 못 미치게 됐지만 모두 유찰됐다. 업계는 아라호의 감가상각을 고려한 재감정을 거쳐 추가 인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서울시는 헐값 매각 비판을 우려해 최종 유찰금액 이하로 조정은 불가하다고 맞서고 있다.

매각 의지 있나?

매각대금에 더해질 선착장 운영권 등 15억여원의 무형자산과 사업장 위치, 사업 범위 등 각종 조건도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선착장 면적을 2500㎡ 내외로 제공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반발한다.

서울시는 올해 말까지 매각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 동안 아라호는 홍보선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선상 공연과 함께 한강 공원과 연계한 관광 코스를 개발하겠다는 것. 또한 매각 작업이 표류할 경우 장기적으로 민간에 운영을 위탁하거나 시가 직접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 사이를 연결하는 양화대교도 한강르네상스 사업으로 인한 혈세 낭비의 대표적 사례다. 양화대교는 1965년 1월 준공한 ‘구교’와 1982년 2월 준공한 구교 위측의 ‘신교’ 2개의 다리를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구교는 5억여원, 신교는 139억원이 공사비로 투입됐다. 1996년 성능 개선을 위한 보수·보강 공사에 돌입, 2002년 4월 이전의 4차로 양방향 통행 방식에서 일방통행으로 바뀌었다. 총 보수·보강공사비는 1018억원이 들었다.

양화대교에 다시 손을 댄 것은 오 전 시장이 서해뱃길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다. 2010년 서울시는 양화대교 밑으로 대형 선박이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교량 중앙의 112m 구간과 이를 지지하던 교각 2개를 해체한 후 아치교를 대신 설치하는 구조개선공사에 돌입했다.

사업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했다. 같은 해 출범한 서울시 시의회가 서해뱃길 사업을 반대하며 공사가 중단되고 재개되기를 반복하면서 공사에 2년 8개월이 소요됐다. 공사비도 당초 415억원에서 490억원으로 늘었다.

양화대교 밑으로 떠내려간 세금 490억
조사도 책임도 없는 무분별한 혈세낭비

그동안 서울시민들은 출퇴근시간 막대한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서울 도심과 영등포·김포·경인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다리로 출퇴근길 차량 통행이 많았지만 ‘ㄷ'자 형태로 변형돼 통행에 큰 불편을 빚었다.

현재 이 다리 밑을 지나다닐 배도 없다. 교각 폭은 42m에서 112m로 확장돼 6000t급 대형선박이 통행할 수 있게 됐지만 착수 시점부터 비현실적 사업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서해뱃길 사업이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 막대한 공사비도, 길었던 공사기간도, 그를 감수한 시민의 불편도 고스란히 ‘헛일’이 됐다는 얘기다.

여기에 공사를 강행한 권영규 시장 권한대행과 도시기반시설본부, 한강사업본부 등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처벌 등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당초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박원순 시장은 양화대교 공사 중단을 지시했지만 공무원들은 이에 항명, 예정됐던 하류 부분 공사를 강행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진상조사는 물론 책임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양화대교가 다시 정상 개통하고 2개월이 지난 2012년 12월 ▲사업성 부풀리기 ▲환경영향평가 전 착공 ▲기본 설계 종료 전 실시 설계 발주 ▲시의회 삭감 경비를 예비비로 지출한 점 등을 문제점으로 고백한 ‘백서’만 내놨을 뿐이다.

지난해에는 양화대교 아래에서 폐기물 덩어리가 발견되면서 대형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해 4월 경찰은 투신자 수색을 하던 도중, 양화대교 수중에서 11.2t의 거대한 폐기물 덩어리를 발견했다. 양화대교 공사 중 나온 건설 폐기물이었다. 당시 해당 지점 수심은 4m에 불과했다. 양화대교 아래 평균 수심은 12m다. 계획대로 대형 여객선이 오갔다면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주머니 채우기 급급

▲ 박원순 서울시장.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양화대교 시공사 담당 직원은 뇌물을 받고 무자격 부실업체에 철거를 맡겼다. 자격심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승인내리기에 바빴다. 해당 철거업체는 철거과정에서 나온 철재를 되팔아 1억원이 넘는 부당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경찰은 시공사 현장 소장을 구속하고, 철거업체 관계자·공무원 등 2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경찰 통보를 받고 수중탐색을 거친 뒤에야 양화대교 아래 잠겨있는 대형 콘크리트 더미를 확인했다.

최근 정부와 서울시는 ‘자연성 회복·관광자원화’ 방안을 발표하고 또 다른 한강 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한강 복원을 강조하는 게 최우선 목표라지만 ‘오세훈표 한강르네상스’와 큰 틀에서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여의도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4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어서 우려가 크다.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실패에 대한 철저한 원인 분석과 정확한 수요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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