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성적은 직원 탓?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정부의 노동개혁 드라이브가 한창이다. 미래세대를 위해 기성세대가 양보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직장인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기업들은 불경기 속에서도 꼬박꼬박 현금을 쌓으면서 왜 책임은 근로자들에게 묻냐는 것. 이 때문에 기업들은 노동개혁에 앞서 원래 식구들부터 잘 챙겨야 할 판이다. 그런데 오히려 직원들에게 나가는 돈부터 줄인 회사가 있다. 동네 구멍가게도 중소기업도 아닌 대한민국 1등 기업, 삼성이다.

삼성그룹이 국내 10대그룹 중 유일하게 직원들의 급여지출을 1년 전보다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그룹들이 그 폭을 떠나 모두 자사 식구들의 급여지출을 확대하는 가운데 국내 최대 그룹만 반대 기류를 탄 것으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와 함께 대부분 10대 그룹의 직원 수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그 와중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수많은 식구들을 내보낸 기업들도 많았다.

31일 <파이낸셜투데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0대그룹 소속 97개 상장사 중 SK D&D를 제외한 96개사가 올해 상반기에 직원 급여로 지출한 돈은 총 23조3369억원으로 전년동기 21조8256억원에 비해 1조5113억원 증가했다. 해당 기업들에 근무하는 직원 수 역시 올 2분기 말(6월 30일) 기준 64만7963명으로 1년 전 64만4354명에 비해 3609명 늘었다.

실제로 10대그룹 10곳 중 급여지출은 9곳이, 직원 수는 8곳이 1년 전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전반적으로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올해 처음 상장돼 지난해 반기보고서를 내지 않았던 SK D&D는 1년 전과 비교가 불가능해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삼성만 줄였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1년 전에 비해 급여지출을 줄인 유일한 곳이 삼성그룹이란 점이다. 최근 캐시카우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그룹 전체가 전반적인 부진을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적으로 보나 규모로 보나 명실상부한 국내 1위 그룹인 삼성그룹이 나 홀로 임금지출 규모를 줄였다는 점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이 쏠린다.

삼성그룹 소속 17개 상장사들이 올해 상반기 직원 급여로 쓴 돈은 7조5582억원으로 전년동기(7조6310억원) 대비 728억원 감소했다.

특히 스마트폰 시장의 정체에 된서리를 맞고 있는 삼성전자가 지갑을 닫은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상반기 직원 급여지출액은 4조480억원으로 같은기간(4조2113억원) 대비 1633억원이나 감소했다. 이와 함께 삼성생명과 삼성엔지니어링, 삼성SDS의 직원 급여지출액도 각각 389억원, 239억원, 213억원 줄며 그룹 전반의 임금지출 감소에 일조했다.

삼성SDI의 임금지출이 3055억원에서 4156억원으로 1101억원이나 늘기는 했지만, 이는 지난해 7월 1일 구(舊) 제일모직의 소재사업부문을 흡수하면서 직원이 8401명에서 1만1163명으로 2762명 늘어난 것에 따른 것으로 실질적인 급여지출액 증가로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지갑 닫은’ 삼성, 직원 급여지출 감소
1년 새 700억원↓…10대그룹 중 유일

삼성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9개 그룹의 임금지출은 일제히 늘었지만 격차는 상당했다.

GS그룹의 경우 소속 8개 상장사들의 올해 상반기 직원 급여지출액은 3974억원으로 전년동기(3809억원) 대비 165억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GS건설과 GS리테일의 직원 임금지출이 각각 96억원, 41억원 늘어난 것 외에 뚜렷한 증가는 눈에 띄지 않았다.

반면 LG그룹 소속 12개 상장사들의 직원 금여지출액은 3조9262억원으로 같은기간(3조4057억원) 대비 5202억원이나 증가했다. 꾸준히 성장세를 지속하며 그룹 내 알짜배기 계열사로 자리잡은 LG디스플레이의 임금지출이 9344억원에서 1조2182억원으로 2838억원이나 급증한 것을 비롯, LG전자와 LG화학의 직원 급여지출액도 각각 705억원, 519억원 늘며 그룹 전체의 임금지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이밖에 그룹의 직원 급여지출액 증가폭은 ▲한진그룹 203억원(7507억원→7710억원) ▲포스코그룹 294억원(9166억원→9460억원) ▲현대중공업그룹 1024억원(9299억원→1조323억원) ▲롯데그룹 1277억원(7817억원→9094억원) ▲한화그룹 1862억원(6811억원→8673억원) ▲현대자동차그룹 2260억원(4조5974억원→4조8234억원) ▲SK그룹 3551억원(1조7506억원→2조1057억원) 등으로 조사됐다.

◇감춰진 그림자

전반적인 세계 경기 불황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의 한파도 근로자들을 울상 짓게 했다. 국내 대표기업들의 집합이라는 10대그룹도 예외일 수 없었다.

지난 1년 사이 직원 규모를 가장 많이 줄인 그룹은 현대중공업그룹이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고강도 구조조정에 13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자리를 떠나야 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소속 3개 상장사의 올 2분기 말 기준 직원 수는 3만894명으로 전년동기(3만2198명) 대비 1304명 줄었다. 중심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의 직원 수가 1112명이나 감소했고 현대미포조선, 현대종합상사의 직원 수도 각각 176명, 16명 줄었다.

현대중공업그룹과 함께 조직 개편에 나서도 있는 포스코그룹에서도 지난 1년 새 1200명에 육박하는 직원들이 자리를 떠났다. 포스코그룹 소속 7개 상장사의 직원 수는 2만4524명으로 같은기간(2만5711명) 대비 1187명 감소했다. 포스코와 포스코플랜텍의 직원 수가 각각 459명, 404명 줄어든 가운데 계열사 대부분의 직원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포스코켐텍과 포스코강판만 식구가 늘었지만 그 수는 각각 8명, 6명에 불과했다.

식구 늘고 있다지만…구조조정의 그늘
현대重·포스코, 직원 2500명 ‘집으로’

나머지 8개 그룹의 직원 규모는 모두 불어났지만 이 역시 차이가 컸다.

한진그룹 소속 5개 상장사의 올 2분기 말 기준 직원 수는 2만5391명으로 전년동기(2만5360명) 대비 고작 31명 증가하는데 머물렀다. ㈜한진과 대한항공의 직원이 각각 154명, 112명 늘었지만, 한진해운에서만 357명의 직원이 자리를 떠나며 이를 상쇄했다.

반면 현대자동차그룹 소속 11개 상장사의 직원 수는 13만5596명으로 같은기간(13만3211명) 대비 2385명이나 증가했다. 현대건설과 현대로템의 직원이 각각 357명, 234명 줄기는 했지만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등 자동차 3인방이 직원 수를 각각 1858명, 487명, 143명이나 늘리며 그룹 전체 식구가 2000명 넘게 증가했다.

이밖에 그룹의 직원 수 증가폭은 ▲SK그룹 132명(4만2505명→4만2637명) ▲GS그룹 117명(1만3179명→1만3296명) ▲한화그룹 405명(2만452명→2만857명) ▲롯데그룹 490명(4만6952명→4만7442명) ▲LG그룹 1022명(10만9202명→11만224명) ▲삼성그룹 1518명(7조6310명→7조5582명) 등으로 조사됐다.

◇계열사별 순위표

계열사 별로 봐도 급여지출 감소폭은 삼성전자가, 직원 수 감소폭은 현대중공업이 가장 컸다. 하지만 그 다음 순위부터는 의외의 기업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 다음으로 급여지출을 많이 줄인 10대그룹 소속 계열사 상장사는 지난해 직원 평균연봉 1억원을 넘겼던 이동통신업계의 선두 업체 SK텔레콤이었다. SK텔레콤의 올해 상반기 직원 임금지출액은 2587억원으로 전년동기(3094억원) 대비 507억원이나 감소했다.

그 다음은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들의 중심이자 최근 영업력 강화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삼성생명이었다. 삼성생명의 직원 임금지출액은 2514억원으로 같은기간(2125억원) 대비 389억원 줄었다.

이밖에 1년 새 급여지출을 많이 줄인 10대그룹 계열사들은 ▲한화생명 -319억원(1779억원→1460억원) ▲삼성엔지니어링 -239억원(2715억원→2476억원) ▲삼성SDS -213억원(5405억원→5192억원) ▲SK이노베이션 -200억원(836억원→636억원) ▲한진해운 -124억원(612억원→488억원) ▲LG상사 -76억원(295억원→219억원) ▲삼성물산 –74억원(3873억원→3799억원) 등 순이었다.

또 현대중공업 다음으로 직원 수 감소폭이 컸던 10대그룹 소속 계열사는 한화그룹 금융계열사의 중심인 한화생명이었다. 한화생명의 올 2분기 말 기준 직원 수는 3763억원으로 전년동기(4373억원) 대비 610명 감소했다.

그 다음은 최근 제일모직과의 합병으로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떠오른 삼성물산이었다. 삼성물산의 직원 수는 8219명으로 같은기간(8777명) 대비 558명 줄었다.

이밖에 1년 새 직원 수를 많이 줄인 10대그룹 계열사들은 ▲삼성엔지니어링 -517명(7005명→6488명) ▲포스코 -459명(1만7919명→1만7460명) ▲SK이노베이션 -445명(1909명→1464명) ▲LG디스플레이 -426명(3만2816명→3만2390명) ▲포스코플랜텍 -404명(1207명→803명) ▲한진해운 -357명(1851명→1494명) ▲롯데하이마트 -245명(4138명→3893명) 등 순이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