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하고 ‘내’가 받는 ‘신의 직장’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직접 뽑은 사람들이다. 그만큼 주어진 권한과 혜택 또한 상당하다. 자신들의 보수를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직접 정할 수 있고, 원활한 입법 활동을 명목으로 각종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혜택에도 불구하고 의원입법 가결률은 해가 지날수록 감소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자신들의 보수와 복지에 관한 법안은 여·야 할 것 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속전속결 통과시킨다. 결국 이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혈세는 줄줄 새고 부담은 국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26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회의원 1인당 1억3796만원의 세비가 국민의 혈세로 충당됐다. 이는 2001년(7914만원)대비 74.3% 상승한 수치다. 여기에 특수활동비와 정당 국고보조금, 외유성 해외연수 비용 등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예산까지 감안 할 경우 낭비되는 혈세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의원입법 가결률은 ▲16대(273명) 27% ▲17대(299명) 21% ▲18대(299명) 13% ▲19대(298명) 6.3%로 계속 낮아졌다. 역대 국회의 가결률은 10대 국회(정원 231명)가 60%로 가장 높았고 다음은 9대 국회(219명) 55%, 7대 국회(175명) 50%, 11대 국회(276명) 41% 순 이었다.

◆얼마나 더 받아야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돈은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국회의원수당법)에 의거한다. 흔히 ‘세비’라 불리는 ‘수당’이 사실상의 월급에 해당한다. 수당은 일반수당과 관리업무수당, 정액급식비, 입법활동비 등으로 구성된다. 국회의원 세비를 구성하는 항목은 1973년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당시 ‘일반 수당’과 ‘활동비’로 시작해 현재는 ‘명절휴가비’와 ‘가족 수당’ ‘정액급식비’ 등 10여 가지로 늘었다.

실제 국회의원들의 ‘월급’에 해당하는 월 수당은 1031만1760원이다. 일반수당은 월 646만4000원이고, 관리업무수당은 58만1760원, 정액급식비 13만원, 입법활동비 313만6000원이다.

이 외에도 한 해 명절휴가비 775만6800원 등 상여금까지 합치면 연봉은 1억3796만원이다. 추가로 입법 및 정책개발비로 한 해 국회의원들에게 62~63억원, 여비로 12~13억이 지급된다.

또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되는 돈 중에는 정보 및 사건수사와 그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인 ‘특수활동비’가 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의원 특수활동비 총 지급액은 2013년 24억9400만원, 2014년 27억6200만원이다. 국회 회기 중 1일당 3만1360원씩 지급된다. 폐회 중에는 미지급, 결석 시 감액한다. 이 수당은 매월 20일에 지급되고, 지급 날이 공휴일인 경우 그 전날에 지급된다. 특히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임하는 여당 원내대표에게는 연간 4억원 이상이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국회에서 특수활동비 지출내역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가 지급되고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영수증 처리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개인 생활비로 유용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고 적발 되도 처벌할 근거가 모호하다.

“하늘같은 임금, 바닥 기는 가결률”
알 방법이 없는 특별활동비의 행방

실제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홍준표 경남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경선자금 1억2000만원의 출처를 원내대표시절 매달 4000만~5000만원씩 받았던 ‘국회대책비’에서 쓰고 남은 돈이라고 밝혔다. 이 국회대책비가 바로 특수활동비인 것이다.

이에 전직 여당 원내대표는 “그 돈을 원내대표가 혼자 다 쓰는 것이 아니라 당이나 상임위등과 분배해서 쓰게 돼 있다”며 “정작 원내대표가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안된다”고 해명했다.

정당 국고보조금도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예산 중 하나다. 정당 국고보조금은 2012년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중간에 후보를 사퇴했음에도 보조금 27억원을 수령하면서 논란이 된바 있다.

한 해에 각 정당에 지급되는 정당 국고보조금은 무려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선관위에서 서면 위주의 회계조사만 할 뿐 감사원 감사도 받지 않는다. 보조금의 대부분은 각 당의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 또는 여론조사 비용 등으로 사용돼 국민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 눈 먼 돈 천지

매년 반복되는 외유성 해외연수 비용 또한 국회의원들이 사용하는 눈 먼 돈이다.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국회의원들의 해외연수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해외순방 일정이 해외 진출 기업들이나 동포들과의 만찬 중심 일정들로 가득 차있었다.

실제 국익에 보탬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이들의 출장이 입길에 오르는 이유는 두루뭉술한 목적과 취지와 맞지 않는 관광지 시찰, 상식 이상의 막대한 비용 등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국회 일정과 상관없이 한여름과 연말연시 등 휴가철에 주로 이뤄지는 것 역시 외유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주요 사례를 살펴보면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김정록·전하진·염동열·김도읍·윤영석(이상 새누리당) 의

원은 지난 1월 14~22일 핀란드·노르웨이·미국을 잇달아 방문하며 총 8박9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핀란드 의회의 미래위원회·미래연구소와 미국 의회의 미래전략 연구기관을 방문하고 미국 의회의 현안 관련 협의·조정기구 운영제도 견학이 이들이 내세운 출장 목적이었다. 소요된 경비만 1억1000만여원에 달한다.

정무위원회 소속 정우택·김태환·유일호(이상 새누리당) 의원,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월 17~24일까지 체코와 폴란드, 독일 등을 순방했다. 유럽 의회의 금융정책 관련 상임위원회와의 정보 경험 공유, 방문국 금융감독체계 현황 조사 등이 목적이었다. 다만 방문길에 바르샤바 시가지 시찰과 게토 영웅 기념비 시찰, 포츠담 회담 기념비 방문 등의 ‘관광’ 성격 일정은 빠지지 않았다. 경비는 5500여만원이 소요됐다.

비회기 기간에 의미 없는 해외출장
월소득 500만원도 받는 연로지원금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신성범·이상일(이상 새누리당) 의원과 설훈·김태년(이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5400여만원을 들여 지난해 12월 19~25일 크리스마스 연휴에 즈음해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를 다녀왔다. 한국 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고 한국 크로아티아 문화교류와 태권도 진흥 시찰 등이 목적이었다.

여름 휴가철을 이용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위 소속 정두언·길정우(이상 새누리당) 의원, 김동철·박완주(이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8월 6~13일 덴마크와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와 해상플랫폼, 상업용 탱크터미널 등 선진 기술 시찰이 목적이었지만, 이 지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풍차마을 ‘시찰’도 빼놓지 않았다. 소요 비용은 4800만여원이었다.

외교통일위원회 김영우·원유철(이상 새누리당) 의원,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역시 무더웠던 지난해 8월 7~14일 스위스와 모로코, 독일을 다녀왔다. 스위스와 모로코, 독일간의 상호 우호협력 증진 방안 모색이 목적이었다. 다만 일정 중 하루는 베를린 장벽 박물관 시찰을 진행했다. 소요 예산은 4400여만원이었다.

국회 내부에선 외부의 따가운 시선에 대한 항변의 목소리도 많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실제 방문 취지의 활동이 대부분인데 ‘동선’과 ‘여유시간’에 맞춰 잠시 스쳐가는 관광 성격의 일정을 하나하나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출장 결과에 대한 보고가 미흡하고, 경비의 내역마저 세부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등 ‘불투명’한 현재 국회의 해외 출장 현실에 이 같은 항변은 국민 눈높이와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거세다.

광역단체장 출마, 선거법 위반 등으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국회의원들이 만든 빈자리를 메우는 데에도 상당한 세금이 들어간다. 19대 국회 기준 지난 4.29 재보궐선거까지 총 24석의 공석이 생겼는데 이를 새 얼굴로 교체하는 데 들어간 비용만 308억원 이상이다. 한 자리 당 13억원 꼴이다. 하지만 빈자리를 만든 전직 국회의원이나 소속 정당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매년 4월, 10월 두 차례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재보선 제도가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리만 생기면 선거는 반복되고 세금은 또 투입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개선 방안으로 총선에서 2등한 후보자가 빈자리를 이어받는 차점자 승계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정치권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정개특위 야당 간사 김태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등한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 선거 원칙이다. 차점자 승계는 국민 뜻에 반하는 것”이라며 “재보선 개선은 정개특위의 주요 의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 법적으로 문제 없어

국회의원의 연로지원금도 혈세낭비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연로회원지원금은 개정을 통해 가구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거나 순자산액이 일정기준 이상이면 받을 수 없게 됐다. 문제는 해당 기준이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점이다. 육성회법은 헌정회 연로회원의 가구소득이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액보다 많으면 지원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2014년 가구당 월평균 소득액은 4인기준 522만4645원이다. 연로회원이 4인가구라면 가구소득이 500만원이어도 지원금 월 120만원을 받는다.

여기에 추가 규정을 둬 연금소득에 대해서는 절반을 제외토록 했고, 동거인의 소득도 빼도록 했다. 연금소득만 1000만원인 연로회원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는 얘기다.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은 “연금을 받는 분 중에 생활이 아주 어려운 80대 300~400명만 남아있다”며 “그 부분을 오해하는데 그분들의 연금 수령이 끝나면 일체 국회의원 연금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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