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의 ‘과거형 사죄’
아베 총리의 ‘과거형 사죄’
  • 이은성 기자
  • 승인 2015.08.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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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이은성 기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14일 ‘종전 70주년 담화(아베 담화)’에서 과거형에 간접화법으로 ‘사죄’ 등을 언급하는데 그쳤다. 이는 당초 사죄를 담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에서는 한 발 물러난 셈이다. 하지만 적극적이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기대했던 우리 국민들 기대에는 상당히 미흡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일관계가 신속하면서 폭넓게 개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담화에서 중국은 네 번을 언급했고 한국은 한 번만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담화를 통해 중국은 상대적으로 수용이 쉽도록 발언한 반면에 한국은 많이 참아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언급했다고 평가했다.

올해 들어 다소 개선기미를 보이던 양국관계는 별다른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고 나아가 한중일 3개국 정상회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베 총리는 이날 담화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전쟁에서 행동한 것에 반복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 왔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역대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으나 진정성이 엿보이진 않았다.

아베 담화에는 직접화법은 아니지만 무라야마 담화 4대 키워드(식민지 지배, 침략, 사죄, 반성)가 모두 담겨 있다. 다만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 입장에선 중국과 일본이 움직이면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전략적 사고가 담긴 담화라고 본다”며 “그렇다고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정적 대응 중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3일 중국에서 열리는 항일 전승기념절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했을 때 일본을 향한 불만 표출은 명확히 할 수 있지만 한국이 역사문제로 한미일 공조에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을 굳힐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봉 선임연구원은 “박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하면 방미를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입장을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며 “감정적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보협력 파트너로서 한국의 이미지가 제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담화로 한국과 중국 등 동북아정세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될지도 관심이 쏠린다. 올해 9월 이후 진행될 것으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어서다.

한중일 정상회담은 지난 3월부터 본격화했다. 한국이 당시 3국 외교장관회의에서 의견 조율에 나선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5일과 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을 만나 “올해 중 빠른 시일 내에 한중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긴밀히 대화하고 조율하자”고 재확인까지 했다.

봉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외교적으로 참는다면 한국의 중심 아젠다인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의 힘이 훨씬 높아진다”며 “그렇다면 한국의 외교적 승리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아베 총리 담화수위가 기존의 강경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는 다각도로 압박한 외교와 일본 내에서 지지율 하락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외교부의 수장인 윤 장관은 공식·비공식적으로 담화 발표 전에 아베 총리를 압박했다. 지난 6일 기시다 일본 외무상과 회동에선 “앞으로 한일관계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전후 70주년 일본 총리 담화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이어 12일엔 “아베총리 담화는 양국관계 개선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가 한 발 물러난 이면에는 일본 내에서 지지율 하락도 한몫했다. 지난달 16일 안보관련 법안이 여당 단독으로 국회에 통과한 이후 야담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이어졌다. 아베 담화 자문기구인 ‘21세기 구상간담회’ 보고서에 ‘사죄’라는 표현이 사라지면서 파문은 더욱 확산됐다.

일본 NHK가 지난 7~9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약에 사과를 담는 것이 좋겠느냐’는 질문에 42%가 ‘담아야 한다’고 답했다.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는 응답자는 15%에 그쳤다. 그러면서 아베 내각 지지율도 함께 조사했는데, ‘지지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지난달보다 4% 포인트 하락한 37%를 기록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3%포인트 상승한 46%에 달했다.

아베 총리 입장에서 부정적인 여론조사가 신경에 거슬렸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지난 12일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山口)시에 열린 강연에 참석해 내달 예정된 자민당 차기 총재 선거에 출마할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현재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아베 총리의 단독 출마가 예상되는 가운데 지지율 하락이 지속되면 새로운 도전자의 출마로 2018년까지 총리를 하려는 야망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듯하다.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은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을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 그가 앞으로 2018년까지 권력을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외교 차원에서 한중일 정상회담과 위안부 문제 등은 분리해서 투트랙(Two track)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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