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틈새시장 공략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과거 MP3와 PMP의 양대산맥, 아이리버와 코원. 스마트폰 출시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두 회사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 예상과는 달리 두 회사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숨만 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아이템으로 각각 업계 1위와 2위를 지키고 있다.

아이리버는 ‘고급 오디오’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휴대용 칫솔 살균기와 충전식 손난로를 팔면서 연명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과거 참신한 디자인과 획기적인 제품으로 세계 MP3시장을 호령했던 모습을 기억하는 소비자들은 이러한 아이리버의 모습에 감회가 남달라 보인다.

◆ 신데렐라 스토리

30일 IT업계에 따르면 아이리버는 고품질 음원 재생기 ‘아스텔앤컨’ 시리즈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300만원에 달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물론 일본, 유럽 등에서 매니아층이 형성되고 있다.

“옛날엔 진짜 잘나갔었는데.” 아이리버 직원들이 과거 세계시장을 제패하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다. 최근 몇 년간의 암흑기와 대비돼 과거의 영광이 더욱 빛나 보이는 모양새다. 아이리버는 정말 잘나갔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찬란하게 빛이 났었다.

▲ 아이리버 칫솔살균기 ‘BLANK'.

삼성전자 비메모리반도체부문 임원이었던 양덕준 전 대표는 1999년 레인콤(현 아이리버)을 설립했다. 자본금 3억원, 직원 7명으로 시작한 레인콤은 이듬해 다양한 코덱(파일형식)을 재생할 수 있는 콤팩트디스크(CD)플레이어 ‘iMP-100’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당시 아이리버 연구진의 기술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이리버는 2001년 세계 MP3-CD플레이어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창업 당시 100억원 미만이었던 매출액은 2003년 2000억원대, 2004년 4500억원대로 뛰었다. 영업이익률은 15%에 육박했다. MP3파일과 CD를 동시에 재생할 수 있는 MP3플레이어(MP3P)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아이리버가 내놓은 MP3P ‘프리즘’은 삼각형 모양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히트를 쳤다. 후속작인 크래프트 역시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아이리버는 미국 진출 6개월 만에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아이리버는 2004년 국내 MP3P 시장 75%, 세계 시장 25%를 차지했다. 아이리버가 소니의 워크맨 신화를 이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에 팽배했다.

애플의 공습과 내부 분열에 ‘몰락’
오랜 노하우를 통한 신 사업 개척

하지만 아이리버의 찬란한 모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애플이 2003년 막강한 가성비를 내세운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음악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이리버는 빠른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 업친 데 덥친 격으로 아이리버의 창업자이자 창립 이후 출시한 제품 중 대다수의 초기 컨셉을 만든 양 전 대표는 2008년 퇴사해 독자 회사를 차렸고 핵심 엔지니어들은 에이트리라는 전자사전 제조 회사를 설립해 아이리버와 결별을 선언했다.

리더와 기술력이 한 번에 빠져나가면서 아이리버는 풍비박산났다. 실제로 아이리버는 2004년 650억원 흑자에서 1년 만에 111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2006년에는 적자 규모가 540억원에 이르렀다. 5000억원을 바라보던 아이리버의 매출액은 2013년 540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전자사전부터 PMP와 내비게이션, 전자책 단말기, 스마트폰, 게임기 등을 출시했지만, 전자사전을 제외하고는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다. ‘블랭크(BLANK)’라는 브랜드명으로 칫솔살균기까지 내놨을 때는 ‘아이리버가 어쩌다 이렇게 됐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 아이리버 고음질 음악재생기 ‘AK240'.

부진의 늪에 빠진 아이리버의 적자 행진을 끊은 것은 고음질 플레이어(Hi-Fi Audio)였다. 소득 수준이 늘어나고 소비자 취향이 까다로워지면서 고급 음질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점에 착안한 것. 새 제품에는 아이리버 대신 ‘아스텔앤컨’이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명을 붙였다. 아스텔앤컨은 해외 박람회에서 디자인상·기술상을 휩쓸었고, 해외 음악전문지와 커뮤니티에서 극찬을 받았다. 아이리버는 후속 제품을 속속 선보였고, 아스텔앤컨은 지난해 전체 매출의 54%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아스텔앤컨의 활약 덕분에 아이리버는 지난해 영업이익 15억원으로 6년 만에 흑자 전환해 성공했다. 올해 1분기에는 매출액 128억원, 영업이익 1억원을 기록했다.

▲ 코원 차량용 블랙박스 '오토캡슐'.

PMP시장 강자 코원은 1996년 음장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인 거원시스템으로 출발했다. 거원시스템에서 출시한 제트오디오는 전세계에서 인정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MP3업계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이후 인터넷강의 활성화와 학생들 사이에서 손쉽게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기기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사명을 코원시스템으로 바꿨다. 동시에 PMP사업까지 진출했다. 코원의 PMP는 이러한 환경에 힘입어 불티나게 팔렸다. 특히 MP3제조업으로 시작한 회사인 만큼 음질면에서 탁월했기 때문에 확실한 차별성도 갖췄다. 하지만 PMP 대부분의 기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PMP사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코원은 PMP생산을 줄이면서 사업을 좀더 다각화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특히 차량용 블랙박스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으며 과거의 명성을 이어가게 됐다.

◆ 아직 한 발 남았다

아이리버는 아스텔앤컨의 성공을 바탕으로 대주주였던 SK텔레콤에 인수됐다. SK텔레콤은 아이리버를 인수하면서 자금 투자와 함께 스마트폰 액세서리와 같은 신사업 개척을 위해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아이리버 관계자는 “올해 A&K 사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늘리고, SK텔레콤과 협업 등을 통한 신규 사업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 흑자기조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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