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퍼주고, 뒷통수 얻어 맞고”

[파이낸셜투데이=김용진 기자]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 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과 KDB산업은행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미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하지만, 언제부턴가 부실한 기업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호흡기 역할만 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의 경제도 무너진다”라는 마인드로 무책임한 지원을 통해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2조원을 긴급 투입키로 하면서, 손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대우조선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에 유상증자 1조원, 신규 대출 1조원 등 모두 2조원을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대우조선 최대 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의 부실을 우려해 산업은행에 단독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은 2분기에 3조1000억원 규모의 영업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할 예정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에 지원할 2조원은 결국 세금에서 충당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결국 국민의 부담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불안한 조선기업

최근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한 대우조선의 국내 은행 신용공여액은 21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 12조5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산업은행이 4조1000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대우조선은 농협은행과 하나은행, 외환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IBK기업은행 등 거의 모든 은행에서 막대한 대출을 받았다. 이런 와중에 산업은행의 2조원 지원 비용은 사실상 국민의 세금에서 충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혈세낭비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책은행들의 부실 대출은 오늘내일의 일이 아니다. 특히 과거 자금을 지원했던 조선기업들이 경영난과 불황에 휘청거리면서, 국책은행은 막대한 금전적인 손실을 입었다. 국가기간산업이란 이유로 자금을 지원해 왔지만, 손해는 물론 수조원대 추가 자금 지원까지 불가피해졌다. 국책은행들의 손실은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점에서 부실관리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졌다. 이미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해양과 SPP조선과 대선조선 등을 관리 중이고, 산업은행 역시 대우조선해양 외에 STX조선해양, 대한조선 등의 최대주주이자 최대 채권자다. 이 회사들은 대부분 경영난에 허덕이는 상황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수출입은행의 지난해 기준 총 여신 106조원 가운데 선박(조선·해운)부문의 비중은 20조원으로 18.9%에 달하고, 산업은행은 17조3000억원으로 7.9% 수준이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5월 성동조선해양에 단독으로 3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국회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당시 성동조선해양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채권단에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채권단 중 무역보험공사와 우리은행은 부실을 이유로 자금지원을 거부했다. 결국 성동조선해양은 법정관리 위기에 처했고, 수출입은행은 향후 발생하는 손실을 단독으로 책임지겠다는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이 성종조선해양에 공급한 대출금은 총 1조1000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출입은행의 퇴직임원들이 성동조선해양에 재취업한 이후 여신이 급증했다. 2010년 자율협약 체결 당시 근무했던 수출입은행 임원들이 퇴직이후 성동조선해양의 법무실장과 감사, 사외이사 등으로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성동조선해양에 대한 수출입은행의 전폭적인 자금지원이 유착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생겼다. 금융 전문가들은 “최근 유가급락 등 불리한 시장 환경으로 조선사들의 사업안정성과 수익창출력이 저하되면서 조선사들의 부실우려가 커 수출입은행의 조선·해운업에 대한 지원을 자제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유착관계 의혹

산업은행은 부실한 리스크관리로 STX그룹로부터 뒷통수를 맞았다. 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이었던 STX그룹은 2조3264억원의 분식회계를 하고 허위장부를 근거로 9000억원의 대출을 받기도 했다. 산업은행은 STX그룹의 분식회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선뜻 대출해줬다. 금융감독원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거액의 대출 심사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은 자체 부실 여신 감사에서 여신 승인신청서 작성 및 대출 약정서 작성 업무 태만과 근저당권 설정 업무를 수행하는 법무법인 선정 과정에서 소홀한 점이 적발됐다. 결국 산업은행은 2013년 STX그룹 부실을 떠안으면서, 1조4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경남기업으로 인해 국책은행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경남기업은 지난 4월 11일 자본전액 잠식설에 대한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자본 완전잠식 상태임을 공시했다. 이후 제출한 감사보고서 상에서도 ‘감사의견거절 및 자본 전액잠식’임이 확인됐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절차를 진행했다. 경남기업의 은행권 총 여신규모는 1조원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수출입은행이 대출채권 2172억원과 3000억여원의 이행보증을 합쳐 약 52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산업은행은 611억원으로 신한은행(1740억원)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여신을 부담했다. 경남기업의 상장폐지로 수출입은행의 손실은 201억원, 산업은행은 127억원이었다.

▲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국책은행들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에게도 무리한 지원을 강행해 피해를 봤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중견 가전업체인 모뉴엘의 대출 사기에 속아 담보 없이 1135억원을 빌려줬다. 수출입은행은 단순한 대출 사기 수법인 ‘돌려막기’에 속았다. 모뉴엘은 하지도 않은 수출을 했다며 서류를 거짓으로 꾸며, 거액의 대출을 받은 뒤 또 다른 대출을 갚는 방식으로 대출금을 계속 늘렸다. 모뉴엘은 1조원대 매출로 성공신화를 쓴 중견기업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 모든 매출 실적은 대부분 돌려막기식 회전거래를 통한 가짜였고, 이를 근거로 7년 동안 무려 3조4000억 원에 달하는 사기 대출을 받았다. 모뉴엘은 대출을 쉽게 받으려고 수출입은행의 수출 장려 정책을 악용했다. 결국 모뉴엘이 갚지 못한 5500억원이 고스란히 국고에서 보상될 처지에 놓였다.

◆돌려막기에 속아

또 다른 중견기업인 우양HC에게도 당했다. 정부로부터 작지만 강하다고 인정받아 ‘히든챔피언’에 선정된 플랜트 설비업체인 우양HC가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다 지난 5월 최종 부도처리 됐다. 더욱이 지난해 모뉴엘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강소기업에 대한 철저한 전수조사를 통해 이런 일을 방지하겠다고 말한 직후라 충격은 더욱 컸다.

우양HC는 발행 전자어음 126억9550원에 대한 결제를 이행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 됐다고 지난 5월 4일 공시했다. 지난해 수출입은행은 우양HC씨에 247억원, 산업은행은 174억원의 운전자금 대출을 설정해줬다. 하지만 국책은행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와 임원이 회사 자금 138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고발당하면서 ‘히든챔피언’에 선정한 당국도 난처한 입장이 됐다.

부실기업 외면 못해, 막대한 손실
남들이 안하면 나라도…‘단독지원’
돌려받지 못한 돈 ‘국민혈세 낭비’
국책은행 감시·감독 강화해야…

금융 전문가들은 “국책은행들은 당국의 감시를 덜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 한다”며 “국책은행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은 금융위원회, 수출입은행은 기획재정부의 산하 기관이다. 금감원이 두 부처의 위탁을 받아 검사를 실시할 수는 있지만, 시중은행에 비해 검사권은 제한돼 있다. 금감원은 시중은행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수시로 검사를 실시할 수 있지만 국책은행의 경우 검사의 목적과 범위를 사전에 금융위에 보고해야 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국책은행의 공적자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부실기업 뒤처리에 사용되는 점도 문제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국책은행의 공적자금을 받아 근근이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자금 회수 가능성도 없는 부실기업에게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고 있는 상황은 결국 세금낭비와 국책은행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국책은행들이 부실 정책금융에 동원되면서 성장기업의 발굴과 지원이라는 본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남기업과 STX그룹 등 대기업들이 경영난에 휘청거릴 때마다 국책은행들이 동원돼 각종 지원성 자금 투입이 이뤄져 왔다. 혁신적인 벤처기업이나 창조적 기업에 돈을 써야하는 국책은행이 비리와 부실경영에 처한 대기업들의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뒤늦게 채찍질

국책은행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산업은행은 지난 21일 산업은행은 삼정회계법인을 투입해 대우조선에 대한 실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책은행들이 대주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막대한 세금을 쏟아 붓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은행은 주요 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 농협과 공동으로 경영 관리단을 파견해 실사 진행과 경영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대우조선 국내 본사 외에도 루마니아 망갈리아 조선소와 북미의 풍력 부문 자회사 드윈드 등도 실사할 예정이다. 또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충분한 대책을 제시하고, 경영이 어려워진 회사에 대해 매각과 조직 슬림화 및 재정비, 비용절감 방안 실행, 부실 자회사 정리 등을 신속하게 이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금감원은 수출입은행에 대해 5년 만에 종합검사를 벌이기로 했다. 금감원는 오는 9월 모뉴엘 사기 대출사건과 성동조선·대우조선해양 등에 대한 대출 부실로 건전성이 크게 악화된 수출입은행의 여신 심사제도 및 리스크 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해 면밀히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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