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맥주가 잘해서? 국산맥주가 못해서…

[파이낸셜투데이=이신영 기자] 무더운 여름철 맥주시장은 호황기를 맞는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국내주류업계가 저도수·과일 첨가 소주를 두고 날선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과 달리 국산맥주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빈틈은 수입맥주로 채워지고 있다. 국산맥주가 매너리즘에 빠진 탓이다.

◆국산맥주 점유율↓

수입맥주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2010년 시장 점유율 13%에 불과하던 수입맥주는 2012년 25%, 지난해 30%를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몇 년 지나지 않아 국내 맥주시장은 수입맥주가 점령할 것으로 보인다.

▲ 하이트 맥주.

홈플러스가 올해 마트의 수입맥주 판매점유율(5월 28일 기준)을 집계한 결과 40.2%로 나타났다. 2010년 13%에 비해 5년 만에 세 배가량으로 늘었다. 국산맥주 점유율은 59.8%로 처음으로 50%대로 낮아졌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해 상위 10위권에 든 수입맥주 브랜드는 일제히 점유율을 올렸으나 국산 맥주는 롯데아사히주류의 클라우드를 제외하고 점유율이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수입맥주 점유율 증가 추이를 고려하면 내년쯤 국산맥주 점유율을 추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수입맥주의 급성장은 국산맥주의 성장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산맥주에 대해 소비자들은 “탄산만 강하고 맛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기관에서 수입맥주와 국내맥주를 두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대부분의 조사에서 국산맥주는 하위권에 랭크됐다.

국산맥주의 맛에 대한 논쟁은 지난 2012년 영국의 한 주간지 기자가 ‘한국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기고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기자는 “카스와 하이트는 탄산 때문에 목 넘김은 좋지만 미각을 자극하지 못한다”고 평했다. 기

▲ 카스 맥주.

사는 국내 소비자들의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고 국산맥주가 ‘맛이 제품마다 차이가 없고 선택폭이 다양하지 않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가격경쟁력에서도 국산맥주는 수입맥주에 맥을 추지 못한다. 수년전만해도 훨씬 높은 가격을 자랑하던 수입맥주는 FTA의 영향으로 국산맥주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는 연일 수입맥주 할인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1캔에 3000~4000원 선인 500㎖ 제품 4~5캔을 1만원에 판매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1캔에 2600원 정도인 카스와 하이트, 3000원이 넘는 클라우드 등 국산 맥주보다 저렴하다.

대형 냉장고 역시 수입맥주로 채워졌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맥주의 종류는 총 500여종. 이중 국산맥주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롯데아사히주류가 제조하는 20여종에 불과하다.

국내 시장에서 소규모업체들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강력한 진입장벽도 국산맥주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대기업에 유리한 주세제도로 이해 소규모 업체들의 시장진출이 어렵다. 소비자가 다양한 국산맥주를 접할 수 없는 이유다. 외국의 경우 다양한 중·소맥주제조업체들이 대형업체 공생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호가든·버드와이저의 고향은 광주광역시
점유율 추월 눈앞, 변화가 필요한 때

국내 맥주시장은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 그리고 후발주자 롯데아사히주류가 삼등분해왔다. 그간 3사는 맥주 자체의 향과 다양화와 같은 경쟁력을 갖추는데는 소홀히 하고 광고나 영업마케팅으로 승부를 펼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산맥주 맛에 질려버린 소비자들은 수입맥주로 눈길을 돌렸다.

수입맥주의 추격이 거세지자 국산맥주업체들은 대응에 나섰다. 탄산음료처럼 톡 쏘는 라거 맥주만을 생산해오던 관행을 벗어나서 에일 맥주를 출시했다. 오비맥주는 에일스톤을, 하이트진로는 퀸즈에일을 출시했다.

▲ 칭타오 맥주.

하지만 오비맥주의 야심작 에일스톤도 출시 1년 만에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이트진로의 퀸즈에일의 판매량도 다른 수입 에일맥주에 비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이러니한 것은 국산맥주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맥주업계의 타격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가 수입맥주를 직접 수입하거나 라이센스를 구매한 후 생산 또는 계열사를 통한 간접 수입을 통해 수입맥주를 판매하기 때문이다. 수입맥주 판매량 상위권을 차지하는 기린 이치방과 프리미엄 몰트, 아사히 등 인기 일본 수입맥주는 국내 맥주 3사 오비맥주와 하이트 진로, 롯데아사히주류가 수입하고 있다.

▲ 호가든 맥주.

벨기에의 대표맥주 호가든과, 미국맥주 버드와이저도 마찬가지다. 두 제품의 원산지는 한국, 그중에서도 전라도 광주다. 생산자는 오비맥주. 오비맥주는 벨기에, 미국 맥주 제조사와 국내에서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에서 제조된 맥주는 수입산 고가 맥주로 둔갑하기도 한다. 라벨 디자인 자체가 수입된 것과 같으며 가격 또한 수입산과 비교해 그다지 차이가 없다. 고객 입장에서는 라벨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확인이 힘들다. 작은 글씨의 제품표시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외국어다. 소비자들이 오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입맥주인척

이와 관련 오비맥주 관계자는 “호가든 제품의 외국어 일색 디자인 때문에 수입품인 것처럼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지만 벨기에 본사 정책에 따라야 해 우리 마음대로 디자인을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